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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Sep 07. 2024

고객이 최우선, 와인 사업

사업이 어렵다는 것을 굳이 말로 더할 필요는 없다. 재화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경험해 본 이는 다 안다. 와인 업계는 더욱 그러하다. 와인의 종착지는 고객의 손인데, 고객에게 마지막 전달될 때 어떤 과정을 거치느냐가 그 이후에 지속 가능한 매출을 가져오는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와인 시장이 어려운 보릿고개를 지나고 있기에 현재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모든 주체들(수입사, 숍, 업장 등)은 현재 매출을 어떻게 끌어올리고 재고를 어떻게 잘 처리하며, 고객을 잘 끌어들이느냐에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고객과 와인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그사이의 접착제를 얼마나 잘 붙여주느냐에 따라서 고객이 쉽게 떨어질 수도 있고,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는 순간접착제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접착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업장의 판매 담당자 혹은 주인들이 될 것이다. 나는 이 관점에서 주변에 많이 볼 수 있는 직영/체인형 와인숍들의 문제점에 대해서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 볼까 한다. 최근에는 업장 중에서 일부 영업이 부진한 곳을 정리한다는 소식들도 전해지고 있는데 ‘시장이 정말로 나빠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 하는 약간의 의구심에서 글을 써본다.


와인은 경기 소비재(경기에 따라서 고객이 기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이기에 일반적으로 고객들은 나만의 것, 나만의 독특함, 나만의 비밀이 있기를 희망한다. 덧붙여 나만이 아는 가격이 있기를 원하고 나만의 비법을 자랑할 수 있으되 남들이 쉽게 따라 하기 힘든 것이기를 원한다.(해외 직구를 어렵지만 능숙하게 해내는 일부 애호가들의 심리가 아마도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조금 생각해 본다.) 이 기준을 현재 직영/체인형 와인숍에 적용한다면 그대로 작동할 것 같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에게 화제가 된 와인이 하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분명 체인형 와인숍은 구매력(바잉 파워)을 내세워 해당 와인 수입사에 대량의 물품 납품을 제안하거나 협의할 것이다. 이 와인이 처음에는 희소가치가 있었으나 체인 전체 혹은 중요한 숍에 대량으로 배포되면 희소가치가 사라진다. 이때 와인이 유통되는 각 사람의 마음을 살짝 들여다보자.


숍 판매 담당자의 마음


이 때 숍에 있는 판매 담당자들의 심리는 어떠할까? 그 와인을 적극적으로 팔아야 하는 의무감을 느끼게 될까? 아마도 다음의 생각을 가질 것이다.


“저 와인은 우리 회사의 와인이 아닐 뿐만 아니라 고객들이 알아서 찾아 사가기에 굳이 적극적으로 판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가격은 고객들이 더 잘 알기에 이 가격이 싸다면 사갈 것이고, 아니면 안사갈 것이다. 재고는 본사에서 알아서 관리할 것이므로 나는 물어보는 고객에게 답변하고 물건을 찾아주는 역할만 하면 될 것이다.”


중앙 관리 담당자의 마음


다음으로 상부에서 와인 세일 관련 지침을 내려준다고 생각해보자. 몇몇 와인에 대한 가격표를 달리 붙여두기는 하겠으나, 판매 담당자의 권한이 크지 않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는 활동성이 제한된다. 수입사와 협의 해서 충분한 물량을 공급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매출이 오르는 것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도 들 것이다. 아울러 중앙 관리 담당자는 이에 대해서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세일을 하는데 모두 공정하게 해야 문제가 생기지 않고, 특정 숍이 싸게 팔면 당연히 정가제 원칙이 무너지므로 체인 운영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각 점의 판매 담당자들에게 가격 조정 권한을 주거나 고객 명단 관리 업무를 맡길 경우 불법적인 물량 유통이 생길 가능성도 있고, 담당자는 자신의 영업을 하여 충분히 고객 명단을 만들어 퇴사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각 숍별 가격이 다르다는 것이 알려지게 될 경우 전체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것이다.”


소비자의 마음


이런 환경이 계속 되다 보면 소비자로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데 맨 처음 이야기한 주제로 넘어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세일가가 아니라 그냥 정가 같다. 분명 이 가격에서 더 내려가는 경우가 생길 것이야. 그리고 누군가는 이 가격보다 더 싸게 살 것 같은데, 주변에 물어봐야지. 굳이 내가 저기 가서 살 이유가 없잖아. 다음 모임에는 저것 말고 남들이 잘 모르는 와인을 갖고 나가야지, 이미 다 파는 와인 내가 모임에 갖고 나가봤자 누가 날 주목해주겠어? 혹시라도 같은 거 사오면 그날은 끝장 아닐까? 나에게 살짝 연락온 것도 아니고 전체 고객들에게 세일 리스트 뿌린 것 같은데 이익이 없을 것 같아. 그냥 조용히 내가 아는 사람들이나 다른 숍 담당자나 사장님에게 부탁해 봐야지.”


숍의 판매 담당자에게 자유로운 권한을 줄수록 체인의 브랜드(상표)로서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각자의 영업에 매달려 본사에는 영항을 주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권한을 제한하자니 관리성은 개선되는데 소비자들은 경직된 숍 담당자들의 대응에 실망하여 전체적인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셈이다.


요즘은 외부에 다니면서 와인을 들고 가기 힘들어 어지간하면 근처 와인숍에 들러 한 병씩 사는 경우가 많다. 숍을 많이 가보면 그 숍의 특성을 금방 이해할 수 있는데, 판매 담당자 혹은 숍 주인의 전문성이나 고객 응대가 판매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얼마전에 모 체인형 숍에 가서 와인을 고르는데 편의점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누구도 말을 걸거나 적극적인 설명을 하려 하지 않았다. 물론 가장 기본적인 화이트 하나를 고를 뿐이었다. 반면 판교 모 백화점의 숍을 갔을 때에는 판매 담당자들이 매우 적극적이었다. 묻는 질문에 매우 전문성을 갖고 답변했으며 경험이 적은 판매 담당자도 맛의 스타일을 설명하는데 열심이었다. 당연히 그 날 쓸 적절한 가격의 와인을 잘 골랐고 저녁에 모인 이들도 그 와인에 대해서 좋은 생각을 가졌다. 당연히 다음에 나의 구매 발걸음이 어디로 갈 것인지는 명확하다.


나는 지금 와인 업계의 침체가 소비자의 성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도 있으나, 판매 과정에서 유연성이 많이 줄어들고 경직되어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와인이야 말로 매장에서 고객들이 물으며 담당자들이 적극적으로 응대해줄 때 더 많은 판매가 일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유튜브나 여러 동호회 등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경로가 충분한 것은 사실이나, 최종적으로 와인은 고객과의 긴밀한 접점이 필요하다는 것이 변함 없는 내 생각이다.


모쪼록 와인 업계가 지금과 같은 어려움을 빨리 극복하고 많은 고객들이 와인을 많이 소비해주기를 기원한다. 앞으로 여전히 나도 그에 일조하기 위해 조용히 숍들을 돌면서 와인을 구매할 것이다.


(가급적 글 안에서 우리말로 쉽게 풀어쓸 수 있는 말은 우리 말로 쓰고자 노력합니다. 앞으로도 우리말로 더 좋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글에 적용하겠습니다. 다만 보편적 단어 ‘와인’, ‘숍’, ‘세일’ 등 단어, 우리말로 바꾸었을 때 의미가 바뀌는 경우(가맹점, 체인)는 지금과 같이 외래어로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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