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불행하다고? 꼭 행복해야하나?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나를 더 불행하게 만들진 않았나

by 김평화

잘난 사람 많고 많지/ 누군 어디를 놀러 갔다지/ 좋아요는 안 눌렀어/ 나만 이런 것 같아서/ 저기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 속엔...Lonely lonely so lonely/ 원래 이리도 힘든가요/ no way no way/ 이 피드 속엔/ 나완 다른 세상 뿐인데 -DEAN의 노래 'instagram' 가사 중-



내 인생만 '유독' 고달프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대입에 실패했을 때, 취업에 실패했을 때, 결혼하는 줄만 알았던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 지난해 회사에 사표를 낼 때 그랬다. 친구들은 잘만 가는 대학을, 회사를, 시집을 왜 나만 못 가나 싶었다. 남들은 다 순탄한 인생이 왜 나한테만 이렇게 가혹한가 싶었다.


고3 때 정말 열심히 했는데 왜 수능점수는 모의고사 점수보다 한참 미치지 못하는지, 학점도 토익도 죽어라 했는데 왜 회사는 나를 뽑아주지 않는지, '스물아홉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익같다(그 어릴 적엔 참말로 그런 줄 알았다)'는데 썩을 놈은 왜 하필 스물아홉에 나를 뻥 차 버리는지, 왜 나만 회사생활이 이렇게 힘든지."전생에 '독립군 밀고'까진 아니었어도 완장 차고 '일본 앞잡이' 노릇한 정도의 업보는 있나보다"라고 자조 섞인 농담도 했다.


되돌아보면 기대했던 점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수시전형 추가합격자'로 수능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보다 좋은 대학에 진행했고, 역시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졸업 전에 취업을 했으며, 서른이 넘어도 연애가 원천 봉쇄되진 않았으며 생각보다 이직이나 전직, 여러 가지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에는 나의 상황을 모두 '실패'나 '불행'으로 규정하며 스스로가 신체적, 감정적 어려움으로 고통을 겪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딱 한 발만 물러서 보니 근거 없이 실체 없이 만들어 놓았던 '행복의 기준'이라는 족쇄로 스스로를 옥죈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됐다. 설령 그 기준을 모두 충족했다고 해도 그 자체가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대학에만 진학하게 되면 인생의 모든 고민이 사라지는 줄 알았지만, 취업이라는 미시적인 진로를 포함해 인생관이라는 거대한 행로를 향한 고민은 진행 중이다. 취준생 때는 취업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줄 알았지만, 직장인이 된 뒤에도 "왜 일을 하는가"라는 노동자의 정체성부터 "나는 왜 사는가"라는 실존적인 고민까지 고민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결혼과 출산, 육아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가 감정적으로 힘들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 같은 강박관념을 지닌 채 살아간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자주 감정적으로 불행하다... 행복하기를,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그 결과는 우리 몫이 아닐 때가 훨씬 많은 것이 인생이다 - 정신과전문의 양창순의 책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중-


회사와 주치의의 만류로 사직 대신 휴직을 했다. 그리곤 만난 친구들에게 그동안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후 돌아오는 그들의 일상사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아픔을 지니고 견뎌간다'는 진리를 새삼 알게 됐다.


지방의 한 명문고를 졸업한 뒤 이른바 일류대에 진학한 친구는 강남의 한 친구 집에 놀러 가서 '계층의 차이'를 체감한 뒤 한동안 정서적으로 방황을 했다고 털어놨다. 오랜 연인의 범죄전과 사실을 들은 뒤 우울장애 치료를 받은 친구, 수차례 유산을 한 친구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나처럼 "힘들어 죽겠다" 광고하지 않고, 묵묵히 아픔을 삭였다. 그러면서 나름의 작은 행복을 찾고 있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어떻게 되어야 행복하다'가 아니라 '어떻게 되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인 것 같다. 어쩌면 졸업한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에 10년 넘게 우정을 이어올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내 기준의) 대입과 취업 실패를 통해 '노력해도 실패할 수 있다'는, 그래서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위로를 할 수 있는 인간이 된 것 같다. 스물아홉, 떠밀리듯 결혼했다면 지금쯤 후회했을지도 모른다(물론 행복하게 살았을 수도 있지만)


'행복'이라는 단어보작은 것이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느끼는 '만족', 살면서 불행하지는 않다고 느끼는 '안도', 가끔 느끼는 '충만함'... 이런 것들로 충분한 것 같다. 언젠가는 다시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 다시 사로잡힐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하면 언젠간 갖고 싶은 '행복의 시간'이 쉬이 올 수 없다는 걸 안다. 먼 미래의 '행복'보다는 현재의 '만족'을 위해 더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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