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말소리가, 관심이, 사랑이 그리워지니 엄마의 전화가 생각난다
엄마는 영부인보다 바쁜 사람일지도 몰라
엄마는 바쁜 사람이다. 수영과 테니스, 요리강습, 농작물 재배학교, 각종 모임까지. 개봉 영화는 섭렵은 물론 각종 시사회까지. 하루도 허투루 보내는 법이 없다.
엄마는 자신을 찾는 사람들은 시간이 허락하는 한 꼭 만났다. 동생은 종종 "어쩌면 엄마는 영부인보다 바쁜 사람일지도 모른다"며 농을 쳤다. 엄마는 "바쁘게 살면 갱년기가 없다"며 받아쳤다.
별 보고 출근해 달보고 퇴근하고, 평일 주말 없이 일하던 시절에는 엄마를 보며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자식들은 다 커서 크게 신경 쓸 일이 없고, 남편도 아직 돈을 버니 생활비에 쪼들일 일도 없고. (세상에 내가 제일 힘든줄 알고 건방을 떨던 때다)
운동과 취미활동으로 꽉 찬 하루를 보내는 그런 삶(을 산다고 생각했었다)을 사는 엄마는 얼마나 편하고 행복할까. 쥐꼬리만 한 국민연금을 생각하면 노후자금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이니까.
그런 엄마의 연락에 대한 응답은 가장 마지막이었다. 즉시 응하는 법이 없었다. 엄마의 연락은 '밥은 챙겨 먹었니?', '오늘도 늦니?' 등의 내용이었고, 급하게 답해야 할 성질의 것들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회사에서 몸과 마음이 탈탈 털리고 집에 돌아와 통화를 할때면 엄마는 자신이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나 오늘 본 드라마, 예능, 영화, 엄마 친구 이야기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냈다. 피로로 찌든 날이면 '내가 왜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천하의 불효녀가) 변명을 하자면 당장 몇 달 전까지만 해도 10년 가까이 사람에 치이고 치이다 보니 업무를 할때가 아니면 사람 그림자, 사람 목소리, 사람의 'ㅅ(시옷)'도 보기 싫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쉬는 날엔 사람이 북적이는 곳은 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사람 목소리가 듣기 싫어 음악은 클래식만 듣던 시절이다. 엄마의 연락도, 그래서 가끔은(실은 종종) 피하고 싶었었다.
일을 쉬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사람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것. 가기 싫으면 사람들이 운집한 곳에 가지 않아도 되고, 만나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아도 되는,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 쉬는, 평범하지만 어쩌면(명백히) 특별한 그 일상이 내 것이라는 게 너무 좋았다.
그런데 참... 인간이 참 간사하다. 연락이 쏟아질 때는, 약속이 넘칠 때는, 사람이 꼴 도보기 싫었다. 헌데 일터를 떠나 연락이 점점 뜸해지고, 약속을 잡지 않으면 사람(소통할 수 있는 사람) 얼굴을 볼 기회도 생기지 못하다 보니, 이제 사람이 보고 싶다.
아무도 없는 자취방이 싫어 퇴근하면 사람 목소리가 나는 '홈쇼핑'을 켜둔다는 친구의 말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사람 목소리가, 사람과의 소통이 그리워지는 마음.
사람 소리가, 관심이, 사랑이 그리워지기 시작하자...불연듯 엄마가 생각났다. 별 보고 출근해 달보고 퇴근하는 자녀들, 외국에 장기간 머무는 남편.
긴 시간을 홀로 조용한 집에 머물러야 하는 엄마가 그렇게 분주했던 이유는, 어쩌면 고요 속에서 문뜩문뜩 고개를 드는 외로움을 견디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운동부터 영화, 각종 취미생활로 엄마가 하루를 꽉 채웠던건, 여유가 넘쳐서가 아니라 사람이 고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공허한 마음을 잊기엔 분주한 집안일 만으론 부족해서.
아무도 없는 고요한 집안에서 바람소리를 듣고 있자니 텅 빈 집에 혼자 있는 이들의 외로움을 알 것 같다. 나의 엄마, 누군가의 엄마로 묵묵히 집을 지키는 엄마의, 엄마들의 외로움을 왜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렇게 묵묵히 조용히 고요함을 견디는 엄마들이 있어서, 매일 아침이 저녁이 활력넘칠 수 있었다는 걸 왜 몰랐을까. 경험해 보지 않고는 한치도 다른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미숙한 인간. 나는 언제쯤 철이 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