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만남이고, 만남은 행복...라떼를 마시면 구겨진 마음이 펴진다
일은 하지 않지만 몸은 여전히 분주하다. 동네스포츠센터와 동네 도서관에 출퇴근하기 때문이다.(간다고 무조건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진 않는다. 실은 멍 때리며 사람 구경하는 시간이 더 많다) 가끔은 친구나 선배를 만나기 위해 상경(서울행)도 해야 한다.
일은 하지 않아도 커피는 마셔야 한다. 일하던 시절 출근길과 점심 먹은 직후, 오후에 '각성용 카페인 주입용'으로 하루 2~3잔 커피 마시기가 습관이 됐기 때문이다. 일을 하지 않아도 밖에 있는 시간이 적지 않고, 커피는 마셔야 하는데 노는 처지라 사 먹을 돈은 없다. 그럼 '강제 에코녀'가 될 수밖에.
기상 직후 어깨가 빠지게 기지개를 켜곤 곧장 원두를 간다. 뜨거운 물로 속을 데운 텀블러 2개에 곧장 내린 커피를 담는다. 외출 준비 끝. 든든하던 가방이 가벼워지면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도서관에서, 이동하는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면 그 거대한 공간이 나만의 카페가 된다. 커피를 좋아한다는 걸 안 지인들이 하와이로 신행을 다녀오며, 베트남으로 출장을 다녀오며 한 봉지씩 선물로 준 원두도 두둑하니 여과지만 있으면 0원. 가성비 쩌는 행복.
개취지만 커피 향이 나지 않는 커피는 즐기지 않았다. 커피 선택권이 주어지면 당연히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였다. 원두가 마음에 들지 않는 커피전문점을 가면 커피 대신 허브차를 마셨다.
그리도 좋아하던 아메리카노였다. 커피를 고르라고 하면 아메리카노였다. 그런데 매일 직접 내린 아메리카노를 먹다 보니... 이상하게 다른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여러 종류의 커피를 고를 수 있었을 땐 항상 아메리카노를 골랐는데, 아메리카노만 마실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니 왠지 아메리카노가 물리기 시작한다. 선택권을 거세당했을 때 드는 슬픔이라고 해야 하나. 집에서는 드립 커피밖에 만들 수 없으니까.
그래서 누군가를 만날 때는 카페라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하루에 2~3잔의 아메리카노를 돈 주고 사 마실 여유는 없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라떼를 마시는 정도의 사치는 부려야지.
"매일 커피를 내려 텀블러에 들고 다녀서 아메리카노 밖에 못 마셨는데 밥 약속을 나와야 라떼를 마시네요. 감사해요. 라떼를 마시게 해주셔서ㅎ(만나주셔서)" "근처를 지나다가 생각나면 언제든 연락해요. 커피 한 잔 대접할 능력은 됩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만 마시는 라떼는 어느새 내게 만남의 대명사가 돼 버렸다. 만남은 치유고 행복이다. 이제는 라떼를 보는 것만으로, 고소한 우유 향을 맡는 것 만으로 구겨진 마음이 조금씩 펴지는 기분이 든다.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대신 소확행(小確幸)이 뜬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시간이, 에너지가, 일상이 없었던 내게 욜로는 그야말로 뜬구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일을 쉬며 비로소, 작은 일상을 갖게 되면서,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인 소확행은 알 것만 같다.
어렴풋이 손에 잡힐 것 같은 민들레 씨앗 같은. 세상과, 당신과 얼굴을 마주하고 라떼를 마시는 이 시간을, 이 행복을 오래오래 음미하고 싶다.
#욜로 #YOLO #소확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