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통'을 열고 후원단체를 정리하며

끝내 한 곳은 정리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by 김평화

마통(마이너스통장)을 열었다. 일을 손에서 놓은지 두달만이다. 몇년 전 전세집 보증금을 올려주는데 적금만기 날짜와 어긋나는 통에 마통을 뚫었었다. 당시 잠시 사용하고 장롱 속 깊은 곳에서 긴 겨울잠을 자고 있던 마통이 봄을 맞아 기지개를 켰다. 논지 두달만에 마통이 보고 싶었다.


일을 하는 동안은 '일하는 것에 비해 너무 적게 받는다'는 생각은 했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관리비와 가스비, 전기료, 통신비, 대중교통비, 보험료, 연금 등을 내고나면 큰 돈을 쥐진 못했지만, 크게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어서 쓸돈이 부족하다고 느낀적은 없었던것 같다. (소비욕구까지 가기엔 수면욕구도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지만)


수중에 있는 돈을 전세집 보증금 등으로 다 밀어넣다보니 매달 받는 월급으로 매달 생활비를 충당하는 수준, 사용 가능한 목돈이 많지 않다보니, 두달만에 마통의 존재가 머리를 스쳤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쓰는 돈에 비해 이자는 위험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렇게 마통의 늪에 빠지는 건가' 걱정됐지만...일정한 액수를 정해서 생활비 일부를 충당하는 것으로 스스로와 약속했다.


저지르고 보면 휴직도, 마통 사용도 천지개벽할 일이 아닌데, 무엇이 그렇게 걱정되어서 죽을 것 같은 몸을 질질 끌고 일터로 갔는지 조금 허탈한 생각도 들었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도 오늘 몸이 좀 아파서 출근을 안 했으면 좋겠다', '큰 사고는 아니고 살짝 교통사고가 나서 출근 안하면 안 되나'라는 위험한 상상을 했던 지난해가 떠올라 피식 웃음도 났다. 마통, 별거 아니네~

마통을 사용하기 전 한달에 정기적으로 사용하는 지출내역을 뽑아봤다. (무려 일을 쉬고 두달만에...참 대책없다) 정기적으로 사용하는 돈 중 당장 아낄 수 있는 것은 제법 지출을 줄였다. 습관처럼 타던 택시는 휴직 직후 끊었고(?), 하루에 2~3잔씩 사 마시던 커피 역시 텀블러에 커피를 넣어다니는 것으로 대체했다. 지방에 갈일이 있을땐 KTX대신 무궁화를 이용한지도 꽤 오래되고, 휴대폰 요금제 등 줄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줄였다.


'괜찮다' 스스로를 다독여도 지갑이 비다 못해 당장 빚이 쌓여가니...긴축재정의 마지막을 손댈 수 밖에 없었다. 후원기관정리. 핑계같지만, 오래 후원해온 기관들 중 후원금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손에 잡히지 않는 큰 기관들은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런 기관들부터 후원을 일단 중단했다.


"사정이 있어서 후원을 그만 했으면 하는데요" 후원중단을 위한 신상을 바로 확인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에둘러 이유를 묻는 기관도 있었다. "제가 일을 쉬게 되어서 후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되네요" 고민 끝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는데...다른 뜻은 없었겠지만, 어쩌면 더 열심히 활동하기 위한 피드백을 받고 싶었던 이유겠지만, 설명을 해야하는 상황이 좀...불편했다. 물론 전화의 끝은 "지금까지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였지만.


제일 많은 금액을 후원하지만(그래봐야 다른 후원단체에 매달 1만원씩 밖에 안 했다) 제3세계 어린친구에게 직접 후원하는 W단체의 후원은 끊을수가 없었다. 물론 내가 후원하지 않으면 다른 후원자를 1:1로 맺어줄수도 있겠지만...혹시 그 매칭이 늦어지면, 내 후원이 끊기는 그 기간이 이 친구에게 어떨지 아득했다.


일을 하며 보람을 느낀적은 있지만, 월급을 받는 행위 자체로 보람을 느낀적은 없는데, 가끔 이 친구의 사진이나 이 친구가 그린 그림 등이 집으로 배달될때면 "내가 이 아이가 성인이 될때까진 돈을 벌어서 후원해줘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쉼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모르지만 일단 이 후원은 계속하기로 했다.


마통을 뚫을때는 마음의 큰 동요가 없었는데, 후원기관을 정리하면서 왠지 서글퍼졌다. 맛있는 것 사먹고 싶을때 사먹고, 가족들의 생일에는 한턱 낼 수 있는, 내가 응원하는 기관들에 소소한 금액이라도 후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돈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라는데 돈이 없는 것은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불편하게 만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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