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마음이 아파서 치료를 받고 있어"

가족에게 우울증 치료사실을 알려야 할까

by 김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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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낫아기때를 제외하고 서른해 넘게 살아오면서 하루동안 5시간 이상을 연속해서 운 날을 꼽자면 이틀 정도 일것 같다.


하루는 대학생이 된 뒤 1년 이상 만났던 첫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던 날이었다. 2012년 부활절, 부활미사에 참여한 뒤 데이트를 하는 것으로 철석같이 믿고 달려간 선유도에서 "그만하자"는 말을 들었다. 그 뒤 4시간 동안 울면서 매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그를 합정역까지 쫓아가며 울었고, 그 뒤로 집으로 돌아올때까지 계속 울었다.


다른 하루는 지난해 봄. 입사 후 5번째 부서배치를 받은 뒤, 좀 더 정확히는 9년동안 격무부서에서 일한 뒤 마지막으로 가장 바쁜 부서로 인사발령을 받은 뒤, 전임 팀장으로부터 "옮긴 부서 힘들지? 조금만 힘내라"는 위로전화를 받은 직후였다. 팀장과 통화를 하며 2시간을 울었다. 이후 "이렇게 바쁜데 무슨 '반차'를 쓰겠다는 거냐"는 현 팀장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면담에서 2시간, '이러다가 정말 내가 미칠 수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생전 처음 찾아간 신경정신과에서 2시간을 울었다.


당시 의사에게 "중증도 이상의 스트레스 반응과 우울 증상을 보이고 있으니 업무 경감이 필요하다"는 소견서와 함께 진단과 치료를 권유받았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에 대한 근거없는 편견('우울증은 나약한 사람들이 걸리는 것이다' 등)을 갖고 있던 나는 회사에 소견서를 제출하지도, 향후 진단을 받지도, 치료를 받지도 않았다. 이후 과로로 인한 2번의 응급실행과 2번의 쇼크 증상(눈물이 장시간 멈추지 않는 등)을 겪고나서야 휴직 후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휴직의 이유를 묻는 지인들에게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주치의로부터 "소화가 되지 않으면 소화제를 먹어야지 '소화를 잘 시켜야지'라는 의지만으로 소화가 되진 않는다. 우울증도 약물 등을 통해 치료를 해야 하는 질병 중 하나이지 의지로 바뀌는 질병이 아니다"라는 설명을 들은 뒤에는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아플때는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며 '우울증 치료 전도사'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모님께 치료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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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가깝지만, 내가 현재 내 상황에 대해 전혀 설명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 바로 부모님이다. 실은 최소 반년, 길게는 1년의 휴직을 하게 됐다는 '통보'에도 부모님은 "잘했다"고 말씀하셨을뿐, 특별한 이유를 묻지 않으셨다. 아마도 그동안 여러차례 과로에 따른 체력적 어려움과 스트레스에 대한 피로를 토로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때마다 부모님은 "힘들면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도 된다. 산 입에 거미줄 치겠냐"고 다독여 주셨다. 이번에도 너무나 당연하게(?) "그만큼 일했으면 쉬어도 된다. 쉬어보고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고,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봐도 괜찮다"고 하셨다. 이런 부모님께 우울증 진단 등을 받아 회사로부터 휴직을 허가받았다는 설명을 굳이(?)하고 싶지 않았다.


'선의의 침묵(?)'을 계속 이어갈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은 치료과정의 불편함에서였다. 대부분의 질병치료가 그러하듯 나 역시 통원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는데, 부모님 몰래(?) 정기적으로 처방약을 챙겨먹기가 쉽지 않았다. 애로사항을 토로하자 주치의는 하루 3번 먹는 약을 취침 전 1번 먹는 약으로 조절해줬지만, 부모님께서 잠드 신줄 알고 방에서 몰래 약을 먹다 갑자기 방문 앞의 인기척에 크게 놀란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후 주치의에게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 하는지', '몸 상태가 괜찮아진 것 같은데 약을 그만 먹으면 안 되는지' 등을 물었다. 주치의는 당분간은 약물치료를 계속해야 한다며 '반드시 약을 챙겨 먹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되도록 챙겨먹자'고 생각하라며 다독였다. "부모님께 치료사실을 말씀드리고 약을 챙겨먹는 것이 나을까요?" 내가 되물었다.


아직도 아픈걸 '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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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챙겨드시는게 너무 불편하신가요?" 주치의가 재차 물었다. "약 자체가 불편한건 아니예요. 다만 약을 챙겨먹으면서 혹시나 부모님께서 제가 우울증 치료를 받고있다는 사실을 아시게 됐을때 충격받으시고 걱정하시지 않을까, 그 부분이 걱정돼요. 저조차 그랬는데...부모님도 우울증에 대한 선입견이 있으실텐데, 치료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셨을때...저 때문에 부모님이 마음 아파하시는걸 보고싶지 않아요"


주치의가 몇 초 간 침묵 후 입을 뗐다. "혹시, 아직도 아픈걸 '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으신 건 아니신가요? 처음에 본인이 아픈 것을 '본인의 나약함' 등으로 생각하며 자책했던 것처럼, 부모님께서 이런 부분에서 충격을 받고 힘들어 하시지 않을까, 이런 걱정을 하고 계신건 아닌가요?


원하지 않는다면 치료 사실을 일부러 말씀드릴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어쩌면 부모님께서 아신다고해도 환자분이 지금 걱정하시는것만큼 힘들어하지 않으실 수도 있어요. 자녀가 아프면 부모님께서는 당연히 걱정하시죠. 하지만 이내 죽을 끓여주시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시며 열을 내리려고 노력하는 등 병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시죠"


얼굴로 온 몸에 돌던 피가 쏠리는 기분을 느꼈다. 숨기고 있던 속내를 들킨것처럼. '우울증은 감기같은 질병 중 하나이고, 나는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해왔지만, 오랜기간 가져왔던 우울증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아직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요동치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남들보다 뭔가 더 문제가 있어서 우울증이 걸렸고, 빨리 이 병이 낫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마음. 이런 마음을 한켠에 꽁꽁 숨겨놨다가 다 들통난 기분.


"혹시 처음에 좀 놀라실 수 있겠지만, 추스르고 '어떻게 하면 우리 딸이 빨리 나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실지도 몰라요. 부모님께 치료사실을 일부러 말씀드릴 필요는 없어요. 다만 제가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건 '내가 문제가 있어서 우울증에 걸린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다시 잘 설명하고 다독여주세요. '내 잘못이 아니'라고" 치료 초반을 제외하곤 상담치료를 하며 운 적이 없는데, 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릴 뻔했다.


엄마, 내가 옛날에 아파서 치료를 받았는데 지금은 다 나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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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가 마음이 아파서 치료를 받고 있어" 휴직 두 달째, 아직 부모님께 이 말을 하지 못했다. 언제 이 말을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상담실을 나오며 부모님께 이 말을 하는 장면을 상상해봤다. 상상하는 것 만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직은 자신이 없다. 담담하게 "나 아파서 치료받고 있다"는 말을 할 자신이. 아직도 나는 아파서 치료받는 내 모습이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가 보다.


시간이 지난 뒤 "엄마, 내가 옛날에 아파서 치료를 받았는데 지금은 다 나았어"라고 말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우리 딸 너무 힘들었겠네. 엄마가 몰라서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며 안아 줄 때도 빙그레 웃으며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입을 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그 장면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 목메어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아직은 괜찮지 않은가 보다. 내 마음을, 마음처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날이 괜찮아지는 그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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