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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Feb 19. 2018

삶이 없으면 꿈도 없다...돈벌이가 돼버린 꿈에 대하여

"네가 꿈을 위해 선택한 일", "돈 벌려고 시작했냐"...이젠 지친다

꼭 가고 싶습니다

징병검사장에서 눈이 나쁜데도 시력검사판을 외우고 "꼭 가고 싶습니다"라고 열정적으로 외치던 청년이 있다. 15년 전 이런 청년의 모습을 담은 한 광고가 큰 히트를 쳤었다. 나 역시 수십, 수백장의 자기소개서에 '열정'을 도배했고, 면접장에서 "꼭 가고 싶습니다"를 외쳤다.


'마음의 감기'를 걸리게한 곳이였지만, 휴직을 하기 전까지 다닌 직장도 입사 전엔 꼭 가고 싶은 회사였다. 1년 남짓 다녔던 첫 회사를 나온 뒤 이곳에 둥지를 틀었을때, 전 회사 입사동기들은 '꿈을 찾아서 갔다'며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근무시간은 더 길어지고, 월급은 크게 줄었지만, 꿈꿔왔던 업무여서인지 처음에는 정말 힘든줄 몰랐다.


입사 후 4년을 거쳐온 두 부서는 출근시간이 새벽 6시였다. 퇴근 시간은 '업무가 끝나면'. 회식은 물론 업계 관계자들과 술자리도 잦았다. 이 모든 것이 끝나야 업무종료였다. 통상 퇴근 시간은 자정 전후. 일산에서 강남으로 출퇴근을 할때였는데  '집에 발자국만 찍고 온다'는 표현이 맞았다.


잊을만 하면 장염이 걸려서 점심시간에 밥을 거르고 수액을 맞았다. 잦은 술자리로 역류성 식도염도 자주 걸렸다. 수면부족으로 상시적인 두통과 멍함이 이어졌다. 그래도 그저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따금 '힘들다'는 푸념에 친구들은 "그래도 너는 하고 싶은 일을 하잖아"라고 말했다. 상사들은 "하고 싶은 일 하려고 들어온 것 아니냐" 되물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회사에 들어왔으니 이 정도 힘듦은 내가 견뎌야' 장시간, 저임금 노동은 꿈을 위해 내가 감수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힘들 때마다 졸업직후 입사했다 사표를 쓰고 나온 회사 입사동기들의 말을 되뇌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구나. 부럽다" 어쩌면 고됨을 견디기 위한 주문이었는지 모른다.

돈 벌려고 이 일 시작했냐

입사 4~5년차 정도 됐을까. 연말맞이 송년회로 오랜만에 대학친구들이 모였다. 대부분이 대학교직원이나 금융회사 직원, 대기업 직원이었다. 어느 조직에 있든 각자의 고민이 있었고, 또 개인 나름의 어려움도 있었다. 밤이 깊도록 수다를 풀어냈나보다.


송년회가 끝나고 헤어질때 쯤 그냥...좀 맥이 빠졌다. 친구들보다 근로시간은 월등히 길지만, 월급은 이상하게 월등히 적었다. 야근 수당은 사실상 없고, (회사에서 밤샘 근무를 할때만 수당이 나왔다) 주말 재택 근무는 사실상 무임금 노동이었다.


야근수당과 주말수당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 상사들로부터 "옛날에는", "프로정신이 부족하다", "돈 벌려고 이 일을 시작했냐"는 등의 훈계를 들어야했다. 처음에는 '내가 프로의식이 부족하다'고 자책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꿈을 위해 언제까지 삶을 포기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선택의 기준이 월급이었다면 당연히(?) 회사에 입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입사 9년차, 연봉이 첫 회사(금융사)에서 받았던 초봉에도 이르지 못한다.


하지만 그곳엔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꿈이 있었다. 처음에는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꿈(과거에는 원했지만 지금도 내가 이 일을 원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꾸던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어지는 '열정 없는 너는 유죄'라는 판결에, 실은 지쳤다. 어제 오늘 갑자기 든 생각은 아니다.


별보고 출근, 달보고 퇴근, 주6일 이상 근무, 하루 6시간 이하 수면. 미로 안에 있걸까? 출구는 있나? 뫼비우스의 띠 위에 있다면 어떻게 하지? 그렇게 꿈은 다달이 나가는 각종 보험료와 연금, 공과금, 관리비 등등을 내기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의식주. 중요하다. 밥벌이가 가능해야 꿈이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다만 나의 꿈이, '열정'을 빌미로, '호구' 취급을 견디게 만드는건 아닌지 슬프다. 누군가 꿈을 갖고 있다는 것이 '그를 아무렇게나 다뤄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닌데.

"사랑을 시작할 땐 그 사랑이 변하지 않을 거라 믿지만, 막상 사랑의 열정이 식는 순간 우리는 고통 속에서 체념하며 사랑도 변한다는 걸 인지한다. 이렇듯 사랑은 우리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공기' 같은 것이지만 그 공기는 머물지 않고 흘러가기 마련이다" - 영화 '봄 날은 간다'(2001, 허진호) 시놉시스-


꿈이 밥벌이로 변해버린 것이 열정이 식어서인지 강산을 10번 가까이 바꾸는 동안 내내 이어진 냉기 때문인지 알수 없다. 이 역시 체념하고 인지해야하는 것인지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야하는 것인지 나는 알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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