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평화 Feb 07. 2018

시간거지에서 시간부자로2

조금 늦어도 괜찮다. 너도 나도.

조금만 덜 꾸물댔더라면

수면시간 6시간 이하, 근로시간 12시간 이상, 주 6일 이상 근무. 휴직 전 나의 근로강도였다. 항상 시간에 쫓겼다. 일할때도 쉴때도. 1분 1초가 아쉬운 '시간거지'이다보니 항상 시간에 인색했다. 남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약속시간이나 마감기한을 넘기는 모습을 보면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당연이 내가 약속시간을 어기거나 마감기한을 넘기는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상대의 사정이 어떻건, 내 사정이 어떻건. 특히 내가 약속시간이나 마감기한을 넘길것 같거나 넘기면 스스로 총알을 쏴댔다.


대개는 약속시간에 늦기위해 노력했지만, 100% 정시에 도착할 순 없다. 당시 상황상 출발을 늦게하거나 도로사정 등으로 약속시간에 늦을 기미가 보이면 전방위로 탓하기가 이어졌다.

'5분만 일찍 일어났다면', '출발할때 조금만 덜 꾸물댔더라면' 등 자책은 기본. '오늘따라 지하철은 왜 정시에 도착하지 않아서', '출구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왜 저렇게 느릿느릿한지' 등 상황에 탓을 하기도 부지기수였다.


업무기한을 넘기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더 컷다. 주어진 일은 필요한 시간에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스스로를 지배하던 시절이다. '커피 한 잔 덜 마실껄', '카톡 한 번 덜 볼껄'은 기본, '그 선배는 왜 하필 오늘 아파서' 같은 몹쓸 생각도 많이 했다. 대개는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 하게 움직일 껄'로 귀결됐지만.


번아웃을 경험한 뒤 어렵게 문을 연 신경정신과에서 의사가 말했다. "'못하겠습니다', '힘듭니다'를 말하지 못해서 병이 나신 겁니다"

되돌아 보면 내게 주어졌던 업무 중 상당수는 회사가 요구했던 기한 내 처리 하기 어려운 업무이거나, 업무시간이 끝나고 나서부터 시작해 늦은밤까지 처리해야 하는 과제들이었다. 의사의 말을 듣고나서야 스스로를 혹사시켰던 나 자신에게 처음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휴직을 한 뒤 부쩍 스스로에게 '괜찮다'는 말을 많이 한다. 보통 약속시간에 넉넉히 도착하도록 출발하지만 교통사고나 지하철 지연 등 피치못할 사정이 생겨서 약속시간에 늦을 경우 상황을 설명한다.

약속시간에 늦다는 이유로 불쾌해 하는 사람들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과거 나는 불쾌해 하기도 했는데, 주변 사람들은 인품이 훌륭한 분들 뿐이다. 감사하다.)


스스로에게도 말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괜찮다' 시간이 많아진 뒤 생긴 여유인지, 휴직을 하면서 이전에 있던 시간제약의 압박이 없어졌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약속시간에 조금 늦어도, 무엇인가를 목표기한 보다 조금 늦게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건 분명히 알게됐다. 과거에도 그랬을지 모른다. 세상 사람 모두가 아는 것을 나만 몰랐을지도.


자신을 가엾게 여길 줄 모르는 가엾은 인간보다 더 가엾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한동일 신부님이 자신이 서강대에서 진행했던 '초급·중급 라틴어' 수업의 내용을 정리하여 엮은 책 '라틴어 수업'(2017)에서 하신 말씀이다. 이 구절을 보고 펑펑 울었다.

스스로를 닥달했던, 자책한다는 사실조차 인지조차 못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가여워서. 제멋대로의 잣대로 남을 예단하고 평가했던, 어리석었던 내가 또 가여워서 울었다.


이제 조금 늦어도 괜찮다. 너도 나도. 조금 늦는다고 하늘이 무너지진 않는다. 하늘이 무너진다고 해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으니까. 시간에 좀 더 관대해 지는 것, 나 자신에게도, 네게도 관대해 진 것이 시간거지에서 시간부자가 된 뒤 경험한 변화다. 물리적인 시간으로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너도, 조금 늦으면 어떤가. 세상이 뒤집히지도 않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아프니 네 아픔이 보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