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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둑이라고?

아니, 안 괜찮아. 너무 무서웠어.

by 꽃님

내가 왜 쪽발이야?


주먹을 불끈 쥐고 똑바로 서서 씩씩 거리며 6학년 준성 오빠를 올려다봤다. 눈에 눈물이 차올라 금방이라도 떨어져 흐를 참이었다. 하지만 있는 힘을 다해 꾹 참아본다. 바들바들 엷게 떠는 몸이 야속하기만 하다. 이 순간 담담하게 아무렇지 않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쪽발이니까, 쪽발이라고 하는 거야."


매섭게 노려보며 뱉어내는 준성 오빠의 말이 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그게 뭔데?"


쪽발이가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6학년 오빠들이 날 대하는 태도를 보면 나쁜 말인 것은 분명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보다 3살이나 많은 오빠한테 대드는 일은 실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귀엽다고 예쁘다고 챙겨주고 같이 놀이도 해주었던 오빠들이 지금은 적이 되어 내 앞에 서 있다.


며칠 전 5학년 진우 오빠가 나와 은혜를 불렀다. 오빠는 우리에게 줄 선물이 있다고 했다. 평소 우린 친하게 지냈기에 선물을 준다는 말에 흔쾌히 따라나섰다. 우리가 간 곳은 뒷산이었다. 높지 않은 뒷산은 우리가 자주 가서 놀았던 곳이었다. 아카시아꽃도 따 먹고 소꿉놀이도 하며 놀았던 곳이라 아무 의심 없이 갔다. 그곳엔 진우 오빠 말고도 다른 한 명이 와 있었다. 진우 오빠가 우릴 보며 예쁜 금목걸이와 금반지를 보여줬다. 가느다란 금반지를 내 손가락에 끼워주며


"예쁘다."


하며 웃더니 은혜한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오빠, 근데 이거 진짜 우리 주는 거야?"


난 이런 걸 우리가 진짜 가져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응, 주는 거야.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돼."


"응? 어떤 부탁?"


나와 은혜는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반지와 목걸이는 예뻤다.

그때 진우 오빠가 음흉한 표정을 짓더니 은혜의 허리를 당겨 안으며 은혜 입술에 자기 입술을 맞추려고 했다. 은혜는 깜짝 놀라며 저항했고 난 순간의 괴력을 발산해 진우 오빠한테서 은혜를 잡아당겨 떼어냈다. 그러곤 내 손가락에 있던 반지를 빼서 오빠한테 던졌더니


"뭐 하는 거야?"


하고 소리쳤고 은혜 목에 있던 목걸이마저 잡아당겨 빼서 던져버렸다. 화가 난 진우 오빠가


"잡아!"


하며 다른 오빠한테 소리치자 험상궂은 표정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난 은혜 손목을 잡고 숨도 쉬지 않고 뒷산 가파른 길을 내달려 내려왔다. 뛰는 건지 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우린 죽기 살기로 달렸다.


우리 집으로 뛰어들어와 문을 잠근 후에야 가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할 뻔했는지 알게 되었다. 배신감이 쳐 올랐다. 우리에게 몹쓸 짓을 하려고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놀랐는지 은혜가 울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울지 마. 우리 아무 일 없었잖아. 정말 다행이야."


나와 은혜는 악의 소굴에서 탈출한 것만 같아 안도의 한숨을 쉬며 서로를 위로했다.



"네가 진우 엄마 목걸이랑 반지 훔쳤다며?"


금시초문이다. 진우 엄마 목걸이와 반지라면 혹시 우리에게 나쁜 짓을 하려던 날 보여줬던 그 목걸이와 반지일까? 또 내가 훔쳤다는 말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이지?


"네가 진우네 집에서 놀다가 진우가 엄마 목걸이랑 반지를 보여주며 놀았는데 네가 집으로 간 후 목걸이와 반지가 없어져서 엄마한테 크게 혼났대."


사실이 아니다. 밖에서 친하게 노는 정도였고 내가 혼자 진우 오빠집에 가서 놀 정도로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진우 오빤 왜 거짓말을 한 걸까? 자기 뜻을 따르지 않은 복수였나? 아님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방해한 응징일까.


"난 도둑질하는 놈하곤 상대 안 해. 애들은 널 여기서 못 놀게 하겠다고 했어. 나도 그렇고."


"난... 억.. 울... 해."


힘들게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 안 그랬어. 훔치지 않았어.'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너무 기가 차고 어이없어서 말문이 막혀 버렸다.


"다신 여기 오지 마. 이번엔 그냥 두지만 다음엔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준성이 오빠는 단호하고 매정하게 뒤돌아섰다.


"나, 아냐. 안 그랬어. 진우 오빠 집에 가지도 않았어."


있는 힘을 다해 말을 했다. 하지만 모기만 한 소리에 준성 오빠는 듣지 못했다. 점점 멀어지는 준성 오빠의 뒷모습에 애가 타서 발만 동동 구르고 크게 소리 내며 울기만 했다. 도둑이란 낙인이 찍힌 채.


10살 인생에 가장 큰 시련을 겪고 있다. 내가 겪은 일을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었다. 아니 말하지 못했다. 들어줄 어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난 공터에 가지 않았다. 준성 오빠가 한 말이 무섭기도 했고 내가 도둑이라는 소문이 아이들 사이에 다 퍼졌을 거란 생각에 그곳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꾸 짜증이 나고 갑자기 눈물이 흐르다가 화가 나서 양배추인형을 집어던지거나 소리를 질렀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금목걸이와 금반지를 훔치지도 않았는데 내가 훔친 것처럼 최면이 걸렸다.

난 너무 억울하다.


공터에 준성 오빠와 진우 오빠, 다른 오빠들 네다섯 명이 말뚝박기 놀이를 하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은혜와 여자 아이들 서너 명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다. 진우 오빠가 술래라 벽에 서 있고 두 명이 진우 오빠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숙이고 말등 모양을 만들었다. 준성 오빠가 뛰어가 등에 올라타 앉고 다른 오빠도 뒤따라 뛰어가 올라탔다. 막 가위바위보를 하던 찰나 나는 그대로 돌진해서 진우 오빠 머리채를 잡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으악! 뭐야. 이거 안 놔!"


말등에 앉았던 오빠들은 다 쓰러졌고 진우 오빤 내 손을 잡아 빼려고 안간힘을 썼다.


"빨리 말해! 나 아니라고. 말해. 내가 안 그랬다고 말해!"


오빠들이 달려들어 내손을 진우 오빠 머리에서 떼어놓으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난 더 손을 꽉 쥐고 머리카락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그 바람에 진우 오빠는 더 고통스러워했다.


"아, 아, 아파! 이거 놓으란 말이야."


"빨리 말해. 오빠가 나랑 은혜한테 한 짓, 빨리 말해. 안 그러면 나 절대 이 손 안 놀 거야!"


"아, 아. 아프단 말이야. 너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진우 오빠가 일어나려고 하면 난 머리카락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오빠가 목걸이, 반지 우리한테 주면서 은혜한테 억지로 뽀뽀하려고 했지?"


"아, 아... 니.. 내가.. 언제."


"그래서 내가 반지도 은혜가 했던 목걸이도 오빠한테 던지고 도망쳤잖아."


있는 힘껏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아! 아., 그래. 그래, 맞아. 그랬어. 그니깐 이거 빨리 놔!"


웅성대던 주변이 조용해졌다.


"오빠 엄마 목걸이랑 반지 내가 훔친 거 아니라고 큰 소리로 말해! 빨리!"


"아, 아, 아파! 그 그래, 내. 내가 거짓말했어. 네가 안 훔쳤어. 됐지? 그니깐 이거 놔."


"잘못했다고. 나랑 은혜한테 사과해!"


"미, 미안해. 은혜야. 정말 미안해. 아악."


그제야 난 손을 놓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우 오빠도 일어나 머리를 한번 만지더니 집으로 뛰어갔다. 손에 땀이 흥건했고 진우 오빠 머리카락이 한 움큼 달라붙어 있었다. 놀라서 달려와 처음부터 지켜봤던 은혜가 내 등을 어루만지며


"괜찮아?"


하며 물었다. 아니, 안 괜찮아. 너무 무서웠어.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진우 오빠 엄마가 따지러 왔다가 나와 은혜의 일을 듣게 된 엄마한테 오히려 호되게 당하고 가셨다. 엄마는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있으면 꼭 엄마한테 말해야 돼.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면 안 돼. 알았지?"


하셨다.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하면 오빠가 사실대로 말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지금 떠올려 보면 무모했지만 용감했다는 생각이 든다. 험한 일을 당할 뻔한 것도 도둑으로 몰린 것도 10살 여자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시련이었다. 화병이 무엇인지 모를 나이에 화병 같은 경험을 했다. 폭력은 나쁜 것이지만 내가 아니란 걸 증명해 보였다. 다른 방법도 있었겠지만 그땐 그게 최선이라 여겼나 보다.

그날 이후 난 엄마와 약속했다. 절대로 사람을 때리지 않겠다. 그 약속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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