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생활
장애인도 실패를 경험해야 잘 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무장애 여행도 그렇다.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기에 실패해도 길을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전주 여행에서 지친 기색 없이 오래된 시간을 탐험한다. 오랜 시간을 가꾸지 않았더라면 방치된 채 발길이 끊기거나 뜸했을 것 같다. 잊히지 않고 기억하는 건 시간만이 아니다. 그곳에 묻힌 추억을 꺼내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어야 한다. 오래된 미래가 그곳, 전주 경기전에서 빛나고 있다.
경기전은 전동성당과 태조로를 가운데 두고 마주하고 있다. 경기전 앞에는 ‘누구든 말에서 내려 말을 묶어 놓고 걸어 가라’는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이곳에 이르는 자는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은 출입을 금한다는 말이 적혀 있다. 경기전은 조선왕조의 상징인 태조어진을 봉안한 곳이어서 이 수문장의 위력은 대단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열린관광지’로 조성 후 접근성 높아져 조선왕조 500년 연 태조의 어진 봉안
말에서 내려 걸어가라고 하지만 휠마(wheel馬)를 탄 나는 내릴 수 없으니 바로 경기전 안으로 들어간다. 조선시대 걷지 못하는 장애인은 어찌 다녔을까? 권세와 돈 많은 집안 장애인은 가마를 타고 하인들이 모시고 다녔을까? 그럼 가난한 장애인은 집안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고 먹고, 싸고, 자고를 방안에서 다 해결했을까? 정, 바깥 구경이 하고 싶으면 기어서 다니거나 가족 중 누군가에게 업혀 다녔을 것 같다. 그것도 업힐 수 있는 장애는 가능했겠지만. 중증의 장애가 있으면 집안에 요강을 둔 채로 볼일을 해결하며 바깥세상을 그리워했을 것 같다. 세종대왕 때 복지정책은 가족 중 돌보야 할 장애인이나 노인이 있으면 세금도 감면해 주고 징집도 면해 줬다고 한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재물의 의미 강한 용어 ‘문화재’ 모두 지켜야 할 ‘국가유산’으로 변경
2024년 5월부터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명칭을 바꿨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이래 유지되어 온 문화재 체계를 국가유산 체계로 전환해 문화재란 명칭 대신 국가유산이란 명칭을 사용한다. 왜 굳이 용어를 바꿔야 했을까. 국가유산청 누리집의 설명을 참고하면 이렇다. 우선, 문화재를 보는 관점과 기준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란 명칭은 그동안 그 가치를 문화(文化)+재물 재(財), 즉 돈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생긴 명칭이다. 게다가 무형유산 전승자인 사람과 무형유산 전승자와 소나무도 사물로 취급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문화유산 가치를 돈으로 계산하는 건 우리 스스로도 부끄러운 일이고 누군가 금액을 정하는 것도 맞지 않다. 개인이 소장한 옛 물건들은 그 가치가 궁금하고 값으로 어느 정도 하는지 궁금하겠만, 국가유산은 우리 모두의 것이기에 값을 정할 수 없다. ‘국가유산’이란 명칭은 이런 관점에서 탄생한 것이다. 세계유산도 인류의 것이지 어느 국가나 개인의 것이 아니어서 국제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 이제 문화유산 답사가 아닌 국가유산 답사로 미래를 향해 가야 한다.
어진이 모셔진 정전 안으로는 휠체어 탄 관람객은 진입할 수 없다. 늘 그렇듯 정전 앞 가까이까지만 갈 수 있어 목을 쭉 빼고 보이는 데까지만 볼 수 있다. 이럴 땐 만화영화의 형사 가제트였으면 좋겠다. 원하는 대로 목이 길게 늘어나서 정전 안까지 샅샅이 볼 수 있게 말이다. 미래엔 신체적 손상이 있어도 가제트처럼 온몸이 마음대로 움직이고 쭉쭉 늘어나는 보조기기가 상용화되면 얼마 좋을까. 과학의 처음은 사람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지고 발전해 왔으니까.
정전 가운데 길은 왕의 길인 ‘어도’다. 어도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며 한참을 있었다. 한복을 입은 외국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복은 외국인이 입어도 그 자태가 얼마나 고운지, 한참을 넋을 놓고 쳐다볼 수밖에 없다. 한옥, 한복, 한식, 한글, 등 한국을 대표하는 다양한 콘텐츠는 세계인의 동경이 되고 있다. K-관광이 그들의 호기심과 지적 욕구를 끌어내는 여행의 레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안전하고 편리한 무장애 관광은 국내외 관광객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 무장애 관광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열린관광지 조성은 인식 개선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보관하고 있는 전주사고 접근성도 우수한 K-관광을 체험하다
정전에서 나와 경기전 뜰로 갔다. 경기전 뜰에는 부속 건물이 여러 개 있다. 그중에 눈에 띄는 건물은 ‘제기고’다. 제기고(祭器庫)는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여러 가지 그릇과 기구 등을 보관하는 장소다. 제사 때 사용하는 그릇은 일반 그릇과 달리 정갈하고 성스러운 물건이어서 별도의 건물에 보관해야 한다. 귀한 물건을 애지중지할 때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는 말이 있다. 제기도 신주단지처럼 보관하려면 습기에 노출되지 않게 지면과 분리해 마룻바닥을 만들어 건물을 따로 지었다고 한다.
경기전에서 잊지 말고 들려야 할 곳이 전주사고다. ‘실록각(實錄閣)’이란 현판이 붙어 있는 전주사고는 휠체어 이용인은 들어갈 수 없지만 비장애인이라면 내부도 둘러볼 수 있다. 조선시대 실록을 보관하던 4대 사고 중의 하나다.
조선왕조에서 실록을 편찬한 것은 1409년(태종 9년)부터다. 이후 조선왕조실록은 500년 이어진 기록문화의 정수다. 첫 실록 편찬 이후 조선에서는 태조, 정종, 태종의 3조 실록 각 두 부씩 등사해 한 부는 서울의 춘추관에, 다른 한 부는 충주사고에 봉안했다. 그러나 두 부만으로는 불안해 1445년(세종 27년)에 다시 2부를 등사해 전주사고와 성주사고에 각각 봉안했다. 임진왜란 때 춘추관, 충주사고, 청주사고의 실록은 소실되고 오로지 전주사고의 실록만 병화를 면했다고 한다. 전주사고에는 실록 784권과 514책, 47궤, 기타 전적이 64종 556책 15궤가 봉안돼 있었다. 이후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됐다가 1991년 복원됐다.
경기전에는 어진박물관도 있다. 어진박물관은 보수 공사 중이어서 패스했다. 경기전 대나무 숲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담장을 따라 대나무 숲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한복 입은 관광객은 대숲에서 인생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대숲에는 예종대왕 태실과 비가 있다. 왕가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그 태를 태항아리에 담아 석실에 묻었다.
경기전 곳곳은 휠체어 탄 여행객도 관람하기 좋다. 사람이 몰리는 곳은 다 이유가 있다. 관광자원을 잘 관리하고 모두가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구도 소외되는 이 없는 경기전 접근성은 이성계가 꿈꾸던 그런 나라가 아닐까.
<무장애 여행정보>
◆가는 길
전주역에서 전북 장애인콜택시 즉시콜 이용
전화 063-227-0002
◆접근 가능한 카페 및 식당
한옥마을 곳곳, 바로 옆 남부시장
◆접근 가능한 화장실
전동성당, 성당 앞 식당, 공예품전시관 등 곳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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