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엄마가 잘못했다. 미안해.
지난 휴가 때 ‘아들의 뇌’라는 책도 읽었건만 … 그때는 좀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 이론과 실제는 다른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때인가 “노크를 하고 들어오세요”라는 통보 및 요청을 처음으로 받았다. 그 이후 아이의 방문이 닫힌 날이 더 많아지기 시작할 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 하고 우리 집에도 사춘기의 서막이 울림을 직감했다. 그렇게 시작된 사춘기는 중학교 내내 지속되었고 책이 알려준 것 이상의 다양한 모습으로 예고편 없는 영화처럼 나의 삶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 인내와 좌절을 시간 끝에 이제는 ’ 학업과의 싸움 및 진로의 결정‘이라는 새로운 시대, ’ 고등학생 엄마‘라는 새로운 시대로 건너가려 한다.
이제는 내 인생에 다시없을 아들과의 사춘기 (아들이 하나라… 딸의 사춘기는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터라…)를 아름답게 추억하며 기억의 저편으로 넣어두려고 한다.
잊지 못할 몇 가지 에피소드를 나누면서 말이다.
사춘기의 특징 중 하나는 인지적 변화라고 한다.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가 가능해지고, 철학적이거나 이상적인 주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이 남의 자식을 대할 때는 좋은 말로 느껴진다. 그렇지 맞는 말이지.. 그러나 내가 배 아파 낳은 아들이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가질 때 그것이 내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어느 날 내게 …“엄마 사과하세요” … 그랬다.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이건 무슨 소리?
“엄마가 나쁜 말 하지 말고 감정적으로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는데 나에게 지금 왜 소리를 질렀어요? 제가 잘못을 했지만 엄마가 저에게 좋은 말로 타이를 수도 있는데 왜 소리를 질러요? 엄마가 사과해 주면 좋겠어요.”
순간 썩 괜찮은 사람이고 싶은 나의 사회적인 자아와 엄마에게 말대꾸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권위적인 자아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어쩌지?‘
사회적인 자아가 내게 말했다. ‘그래. 아이 말이 맞잖아… 언행의 불일치가 있었구먼. 쿨하게 사과해 ‘
권위적인 자아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엄마가 아들에게 사과를 하는 법이 어디 있어? 그리고 앞으로 이런 사소한 것 사과하기 시작하면 얼마나 사과할 일이 많겠어.. 여기서 밀리면 안 돼!’
그런데 내가 낳아 나를 닮아 논리적이고 따지기를 잘하는 내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진짜 이건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아이들은 잘못하면 어른들이 잘못된 것을 가르쳐 주시는데 어른들이 잘못하면 어떻게 해요?”
사회적인 자아가 아들에게 대답했다. ”어른들이 크게 잘못해서 타인이나 사회에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 법에 의해 처벌을 받기도 하고 사적인 것이라면 하나님께 벌을 받기도 하거나 깨닫게 해 주시겠지? “
그렇게 엉뚱하고 논리적인 아들과 대화를 이어가다가 감정이 좀 누그러지고 생각이 정리되었다. 그렇지… 법의 심판이든 하나님의 심판이든… 나의 잘못으로 상처받은 타인이 내 앞에 있다면 사과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해야겠지.
그렇게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 아들이 좋아하는 ‘당근 농장’ 과일 음료를 한 잔 따라서 똑똑 노크를 하고 아들 방을 들어간 후 살며시 음료수를 내어 놓았다. 그리고 말했다. “아까 엄마가 소리 질러서 미안해. 앞으로는 흥분하지 말고 말할게. 그리고 생각해 보니 어른들도 잘못하면 아이에게 사과해야지.”
폭력은 안 된다고 해 놓고서 아이의 등짝을 때렸던 날, 식사 중이나 걸을 때 핸드폰을 보지 말라고 해 놓고서는 핸드폰을 봤던 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하라고 가르쳐 놓고 소파에 누워 이거 가져와 저거 가져와 시켰던 날에도 사과를 요청받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사과해야 할 때는 아낌없이 사과를 했다. 사회적인 자아의 쿨한 압승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내게 종종 말한다. “애들한테 사과 좀 그만하고 애초에 잘못을 하지를 말지 그래?”
ㅎㅎㅎㅎㅎㅎㅎ
어쩌겠는가? 나도 알지만 매일 실패하고 실수하는 것을… 그래도 내가 몸소 실천한 사과의 행동은 아들의 마음을 녹이고 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사과가 필요한 순간에 타인에게 사과를 할 줄 아는 용기를 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