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통의 편지

네가 알지 못하는 너

“여러분, 저희는 하나여중 선생님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여러분이 이제 곧 중학교 지원을 할 텐데요, 여러 학교 정보를 잘 알아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나여중을 소개하려고 왔습니다. 우리 학교는 학교폭력이 없는 학교로 유명해요. 개교한 지는 5년 정도 되었고요, 모든 시설이 아주 좋고 쾌적합니다. 한음초등학교 6학년 친구들 중에서 하나여중을 한 번 고려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아주 좋은 언니들과 학교생활을 하고 있고, 여러분이 오면 더 재밌는 학교가 될 것 같습니다.”

중학교 선택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은율이네 초등학교 친구들은 동네에 가까운 남녀공학 중학교가 있어서 많은 친구가 그 학교로 지원했다. 지금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5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있는 남녀공학이었다. 다만 너무 많은 아이들이 지원하는 바람에 학생 수도 많고, 공부에 대한 경쟁도 아주 치열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일까? 최근 몇 년간 새로 학교들이 생겨났고,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해 각 초등학교를 직접 찾아다니며 학교 소개를 했다. 은율이도 이런 학교 소개를 들으니 당연히 가까운 학교에 갈 거라 생각했던 마음이 흔들렸고,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엄마는 다시 노트북을 켜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엄마, 바빠? 엄마한테 하나 상의하고 싶은데 가능해?”
“아우, 어쩌지? 엄마가 오늘 꼭 써서 마무리해야 되는 글이 있거든. 이거 마무리하고 은율이랑 이야기해도 될까?”

엄마는 글쓰기 취미가 있었다. 지금은 취미지만, 엄마는 퇴직을 하면 본격적으로 더 많은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퇴근하고 밥하고 빨래도 돌리고 하면 엄청 피곤할 텐데도 시간 날 때마다 글을 쓰려고 애를 썼다. 피곤해 보이면서도 또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여행기, 자서전, 다른 사람의 자서전, 직장 생활 이야기, 동화 등 다양한 글을 쓰는 새로운 삶을 살아 보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생계를 위해 매일 아침 일하러 가고 해가 지면 돌아오지만, 언젠가 엄마는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말했다. 자주 말했다. 누구보다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와 한 몸처럼 공감을 잘하는 은율이는, 엄마가 글을 쓸 때는 배려하고 기다렸다.

“그래. 엄마, 그럼 나 할 일 하고 있을게.”


엄마의 시간도 존중할 필요가 있으니까 평소처럼 씻고 숙제하고 드라마도 보고 음악도 들었다. 어느덧 은율이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결국 잠잘 시간이 다 되어서 엄마가 베개를 들고 은율이 방으로 왔다.

“은율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엄마가 오늘은 글이 잘 안 써져서 오래 붙들고 있다 보니까 벌써 잘 시간이 되었네. 그래서 오늘 엄마가 은율이 옆에서 자면서 이야기 들어줄게.”
“그래. 엄마, 이제 내 얘기를 들어 봐. 나한텐 친구를 사귀는 게 조금 어렵잖아. 엄마도 알지? 그래서 이미 알고 있는 친구들이 많이 가는 중학교를 가는 것이 편할 것 같긴 한데, 우리 학교에 찾아오신 하나여중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 학교가 좀 매력적인 것 같아서 고민이 되네.”
“그렇구나. 은율이 고민 많이 되겠다. 엄마도 어느 학교 가고 어떤 꿈을 가질지 학교 다니는 내내 고민됐던 것 같아. 그 학교는 어떤 점이 끌렸어?”
“응. 나는 그 학교가 학교폭력도 없고 좀 작은 학교라고 해서 좋았어. 또 여자아이들만 있는 학교는 어떤 분위기일지도 궁금해. 나는 우리 반 남자아이들이 성가실 때가 많이 있거든. 여자친구들끼리만 공부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학교 시설이 좋다는 것도 괜찮아 보이고.”
“그렇구나. 좋은 점이 많은 학교네. 우리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까 편안하게 생각 좀 해 볼까? 엄마도 주변 엄마들한테 좀 물어볼게. 그런데 은율이, 새로운 학교 가면 아는 친구 없어도 괜찮겠어? 이 동네 친구들은 그 학교는 많이 선택하지 않을 것 같은데.”
“바로 그 점에서 고민이 되는 거야. 그런데 한편으로 나도 좀 더 씩씩하고 용감한 사람이 되고 싶어.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좀 잘하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고. 새로운 학교에 가서 변화된 모습으로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시작을 할까 하는 마음. 사실 우리 반 친구들은 내가 조금만 목소리를 크게 하고, 안 하던 것을 해 보려고 하면 ‘오, 최은율 네가 웬일이냐?’ 하면서 놀리기도 하고 나를 과거에 가두는 것 같을 때가 있어.”
“그래. 은율이 엄청 고민되겠네. 엄마가 같이 기도해 줄게. 좋은 선택을 하도록.”


며칠 후, 학교에서 선생님이 6학년 2학기 마지막 이벤트를 준비하셨다.
이벤트의 이름은 〈친구에게 추억 만들어 주기〉였다.

한 사람이 두 명씩 정해서 편지를 써 서로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는 행사였다. 전달 방법은 사물함에 몰래 넣어 놓기였다. 은율이는 이벤트 이야기를 듣자마자 걱정이 되었다. 편지를 하나도 받지 못할까 봐서였다. 반대로 편지를 주고 싶은 두 명의 친구를 고르는 것은 힘들었다. 은율이는 6학년 4반이 너무 좋았고, 초등학교 생활 중 가장 많은 친구들과 자연스레 말도 해서 마음속에 친구로 찜해 둔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래도 그 친구들 중에서 심사숙고 끝에 두 명을 결정했다.


한 명은 은율이와 같은 아이돌을 좋아해 매일 메신저로 아이돌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베스트 프렌드 호은이, 다른 한 명은 은율이와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은율이를 리드해 주는 인아였다. 둘에게 정성스럽게 편지를 썼다.


드디어 편지를 전달하는 날이 되었다.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한 은율이가 두 친구의 사물함을 열어 편지를 놓았다. 혹시나 하고 자신의 사물함을 열어 보았지만 아직 편지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일찍 오긴 했어. 아직 편지가 도착할 리가 없지.’

조금 실망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와서 앉았다. 점심을 먹고 사물함을 열어 보았으나 역시 편지가 없었다.
‘나 아무래도 편지 하나도 못 받을 것 같네. 어쩌지?’

불길한 예감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오후 수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은 생각이 많아서 그런가, 은율이는 뒤척이다 늦게 잠이 들었고, 기억나지 않는 많은 꿈을 꾸느라 몹시 피곤한 아침을 맞았다.
“최은율, 왜 이렇게 안 일어나? 학교 늦겠다. 엄마도 벌써 출근했어.”
사실 잠결에 엄마가 은율이 볼에 뽀뽀를 하며 “은율아, 엄마 회사 간다. 하루 잘 보내.” 하고 말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아빠가 와서 몇 번을 깨운 후 일어났다. 그래서 평소보다 늦게 8시 38분에 교실에 들어갔다. 40분까지 도착해야 하는데 가까스로 지각을 면했다.


헐레벌떡 교실로 들어간 은율이가 가방을 내려놓고 필통을 꺼내 책상에 올린 후, 교과서를 꺼내려고 뒤로 돌아 사물함을 향해 걸어갔다. 사물함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은율이 사물함에 네 통의 편지가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 쓸데없는 걱정으로 잠을 설친 지난밤이 억울했다. 하지만 이내 숨길 수 없는 기쁨에 얼굴이 환한 미소로 바뀌었다. 은율이는 친구들이 못 알아채도록 편지를 손으로 감싸 책 사이에 넣고 자리로 와 앉았다. 너무 궁금했지만 친구들 앞에서 읽을 수가 없었다. 방과 후 편지를 제대로 읽고 싶은 기다림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온 은율이가 침대 위에 베개를 놓고 그 위에 배를 대고 엎드려 누웠다. 알록달록 무늬, 곰돌이 무늬, 줄무늬, 다양하기도 한 편지봉투를 하나씩 열어 편지를 읽었다. 두 통은 예상대로 마음이 통했던 호은이와 인아의 편지였고, 다른 두 통의 편지는 가깝지 않다고 생각했던 단비와 세미의 편지였다.


“은율아, 너 그거 알아? 너는 다른 사람들 얘기를 참 잘 들어줘. 그리고 너한테 이야기를 하면 공감도 잘해 주고. 그래서 너한테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편해져.”


“은율아, 너는 스타일이 너무 좋아. 너는 다리가 길고 얼굴이 계란형이라서 운동복과 후드티셔츠만 입는데도 스타일이 좋아. 네가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어떤 모습일지 정말 궁금해. 우리 중학교 가서도 계속 친구 하자.”


“은율아, 나는 네가 성실해서 좋아. 우리 둘 다 수학을 아주 잘하지는 못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서로 모르는 거 물어보면서 도움을 줬잖아. 나는 은율이랑 공부할 때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부끄럽지가 않았어. 우리 중학교 때도 공부 열심히 해서 각자 이루고 싶은 꿈 꼭 이루자.”


“은율아, 너와 함께 같은 아이돌을 좋아하고 그런 느낌, 생각, 최신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 중학교 가서도 같은 학교 가면 좋겠지만, 혹시 그러지 않더라도 우리 계속 연락하면서 지내자.”


은율이는 학교생활에 늘 아쉬움이 많았는데, 졸업을 앞두고 6학년 마무리로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너무 좋았다. 마음이 따뜻하게 벅차오르는 것 같았다. 은율이는 체크카드를 챙겨 아파트 단지 상가로 갔다. 상가에는 문구나 과자 등 어린이들을 위한 모든 물건을 파는 ‘요고조고 마켓’이라는 상점이 있었다. 상점에 들어간 은율이는 한참을 고민하다 예쁜 선물 상자 하나를 샀다. 그 상자에 친구들한테 받은 편지를 넣었다. 그리고 은율이가 자기에게 편지를 한 장 더 썼다.


“은율아,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좋은 면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친구들이 너에게 하는 칭찬이 어색하고 부끄러울지 모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좀 더 자신감을 갖고 멋지게 생활하자. 나중에 중학교 졸업할 때, 고등학교 졸업할 때 이 편지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미래에 만나자. 최은율, 너를 응원한다. 열세 살의 최은율로부터”

은율이는 상자를 닫았다. 오빠처럼 침대 아래에 소중한 물건을 숨겨 놓았다. 상자를 침대 아래 깊숙이 넣었다.


저녁에 엄마에게 은율이가 말했다.
“엄마, 나 어떤 학교 갈지 정했어.”
“그래? 어느 학교 갈 거야?”
“나 새로운 학교에 가 보려고. 나 두려운 마음이 있지만 기대감도 있어. 그리고 나, 안 해 본 것도 더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어. 새로운 학교 가서 또 새로운 친구들 많이 사귀고 새로운 도전을 해 볼 생각이야. 엄마, 나 할 수 있겠지?”
“당근이지. 은율이, 너 1학년 때에 비해서 지금 얼마나 많이 성장했는지 알아? 키와 몸만 자란 게 아니야. 너의 원래 모습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마음도 단단해지고 정말 많이 달라졌어. 우리 은율이 씩씩하고 용감해.”
“그건 맞는 것 같아.”
은율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졸업식 아침이 밝았다. 엄마, 아빠, 외할머니가 함께했다. 오빠는 학교에 가서 오지 못했다. 은율이는 졸업장을 받았고, 선생님이 주신 ‘우정상’도 받았다. 소리 없이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냈다고 주신 상이었다.

엄마가 준비해 온 작은 꽃다발과 졸업장과 우정상장을 들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이제 엄마, 아빠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려고 하는데 친구들이 우르르 달려와 은율이에게 말했다.

“은율아, 같이 졸업 사진 찍자. 그리고 우리 끝나고 노래방 갈 건데 너도 같이 갈래?”
“노래방?”

이런 초대를 받기는 처음이었다.
엄마를 바라보며 ‘엄마, 나 가도 될까?’ 하는 눈빛을 보냈다. 엄마는 초능력자인가 보다.
엄마는 은율이 대신 친구들에게 “물론이지. 은율이 갈 수 있어.” 하고 답했다. 그리고는 은율이에게 “얼른 맛있는 거 먹고 친구들과 함께 재밌게 놀다 와.” 하고 말했다.

식당으로 이동한 은율이와 가족은 돼지갈비를 먹으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고마워, 엄마. 엄마도 나 초등학교 6학년 될 때까지 돌봐 주고 필요한 거 다 채워 주느라 너무 고생 많았어.”
“은율이도 6년 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갈비는 정말 꿀맛이었다.


맛있게 먹고 은율이는 친구들과 다시 학교 앞에서 만나 노래방에 갔다. 세상 처음으로 친구들 앞에서 아이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평소 혼자 거울 앞에서 연습해 둔 실력 덕분에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너 이런 면이 있었어? 너의 변화는 끝이 어디야?”
친구들이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ㅎㅎㅎ”

열세 살 은율이의 인생의 한 챕터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새롭게 시작될 다음 챕터 속의 은율이는 어떤 소녀로 우리 앞에 설까?



그날을 기대하며 〈보드 위의 소녀〉를 덮습니다.
그동안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