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덕분에 성공한 재미있는 가게
“여러분, 올해도 어김없이 아나바다 장터가 열릴 거예요. 2주 뒤 금요일이니까 지금부터 집에 있는 물건 중에서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쓸 물건이 있는지 주말에 샅샅이 찾아보는 거예요. 알겠지?”
“네!”
선생님의 말씀에 스물여섯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화답했다.
“그러면 우리 물건을 같이 모아 팔 모둠을 어떻게 나눌까?” 선생님이 아이들의 의견을 물었다.
“선생님, 우리 올해는 각자 원하는 친구들끼리 자유롭게 구성해요.” 목소리가 큰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자, 다른 친구들도 “좋아요! 맞아요!” 하며 맞장구를 쳤다.
선생님도 너무 쉽게 아이들의 의견을 수용했다. “그러자. 그럼 원하는 사람끼리 가게를 구성하고, 가게 이름도 정하고, 어떤 물건을 대표 상품으로 팔지 의논해 봐. 다음 주 월요일까지 결정해서 제출하는 것으로 할게.”
“네, 좋아요!” 이런 대세 의견에 따라 순식간에 모든 것이 정해졌다.
은율이는 ‘나는 누구랑 같이 하지? 누가 날 좀 선택해 주면 좋겠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친구들에게는 “나랑 같이 하자.”라든가 “나도 같이 해도 될까?”라든가 하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월요일이 되자 언제 다들 서로 의논을 했는지 친구들이 삼삼오오 선생님께 가게별 계획을 제출했다.
은하수 인형가게— 은수와 하정이는 집에 있는 인형들을 모두 가져와 팔 거라고 했다.
아무거나 팔아요 — 김율, 정호윤, 박세영, 최한별, 이찬 남자아이 다섯 명은 그냥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각자 내키는 것을 가져와서 다이소처럼 잡동사니로 팔기로 했단다.
동화마을 서점 — 여자아이들 네 명이 집에 있는 동화책을 가져와 팔기로 했다.
평소 꽤 친하다고 생각했던 상미와 인아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종이를 들고 앞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 은율이는 너무 당황했다.
‘지금이라도 상미한테 나도 끼워 달라고 할까?’ 망설이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선생님이 전체 명단 같은 것을 들고 쭉 보시더니 세 명의 이름을 불렀다.
“최은율, 김의찬, 이요한. 세 명이 아직 명단에 없네. 너희 셋이 같이 하기로 했니?”
“아니요.” 김의찬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사실대로 말했다. “아직 가게를 못 정했고, 다른 친구들이 다 각자 가게를 정했어요.”
은율이의 목덜미와 귀가 빨개졌다. 남겨진 김의찬, 이요한과 친하지도 않았거니와 남자아이 둘과 여자아이 혼자 남겨졌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정작 친구들은 별로 남의 일에 관심이 없고 서로 떠들며 장난치고 있었다. 선생님도 “그래, 좋아. 그럼 너희 셋도 상의해서 가게 이름과 상품을 정해서 내일 아침까지 제출하렴.”
수업이 다시 시작됐지만 은율이는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난 왜 이렇게 소극적일까? 내가 먼저 친구들한테 같이 가게를 하자고 해도 되는데 왜 난 그런 리더십도 없을까?’ 하며 못난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수업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급식을 어떻게 먹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김의찬, 이요한도 소극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교실문을 나서는 의찬이와 요한이를 은율이가 불렀다.
“의찬아, 이요한, 우리 어떻게 해? 뭔가 의논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썩 진지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내일 아침에 정하자. 집에 가서 물건 좀 찾아볼게.”
김의찬이 이렇게 말하고는 그냥 가버렸다. 이요한도 머리를 긁적이다가 씩 웃고는 가버렸다. 하는 수 없이 은율이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들어갔는데 어쩐 일인지 은호 오빠가 집에 있었다.
“오빠가 웬일로 나보다 먼저 집에 왔어?”
은호는 핸드폰을 보느라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대답했다.
“나 오늘부터 시험 기간이야. 오빠한테 관심 좀 가져라.”
평소 같았으면 “오빠나 나한테 관심 좀 가져라.” 하고 한마디 쏘아붙였겠지만,
“그래, 알겠어.” 하고 은율이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리고 오빠 옆에 있는 의자를 빼서 앉으며 말했다.
“오빠, 나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뭐야. 귀찮은데…” 오빠가 여전히 성의 없게 말했지만 은율이는 참았다.
“나 학교에서 아나바다 해야 해서 뭔가 팔아야 하는데, 뭘 팔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가 정해야지. 장난감 방에 가서 찾아봐.”
장난감 방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빠 방에 연결된 베란다에 엄마가 버리지 않은 장난감 상자들이 여러 개 있었다.
은율이가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물었다.
“알겠어. 오빠, 근데 아나바다 우리 가게에 나만 여자애고 남자애 두 명이랑 같이 해야 하는데 이상하지 않아? 난 좀 창피하거든.”
이럴 때는 은호의 시원시원한 성격이 도움이 되었다. 은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은율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최은율, 너 세상은 혼자 사는 거다. 친구가 많고 인기가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아쉬울 건 없어. 어차피 인생은 씩씩하게 혼자 사는 거야. 오늘 놀 친구가 있으면 신나게 놀고, 내일 또 놀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랑 놀면 되는 거야.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개나 줘라.”
사실 은호는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좀 있었다. 친구들에게 먼저 요청하고, 거절당하면 그만이었다. 아마 자존감이 높아서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태도에 영향을 덜 받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은율이는 입을 앞으로 내밀고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나는 오빠랑 다르잖아. 난 알다시피 왕소심이잖아.”
시무룩한 은율이를 보더니 오빠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장난감 방으로 가며 말했다.
“최은율, 나 좀 따라와 봐.”
“왜? 뭔데?”
은율이가 순순히 따라나섰다.
오빠는 상자를 뒤지며 혼잣말했다.
“어디 갔지? 나 진짜 많은데… 너무 아까워서 잘 두었는데.”
은율이가 물었다.
“뭔데? 뭘 찾는데? 말을 똑바로 해야 같이 찾든가 말든가 하지?”
“응, 포켓몬 카드 (Pokémon Card). 내가 한때 엄청 샀잖아. 너 이거 가지고 가서 팔아. 그럼 장사 대박 날 거다.”
“진짜? 그거 나한테 다 준다고? 오빠가 엄청 아끼는 거잖아.”
“내가 이제 대학 가려고 공부하기로 마음먹으니까 다 시시해졌어. 내가 왜 그렇게 그걸 많이 사서 모았나 몰라.”
은율이는 아직 물건을 찾지도 못했는데 고마운 마음이 앞서 말했다.
“오빠가 있으니까 이럴 땐 좋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은호가 말했다.
“당연하지. 너 오빠가 있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알아? 카드뿐만이 아니야. 오빠가 공부를 먼저 해 보니까 시행착오를 겪었지. 나중에 네가 중학생, 고등학생 되면 내가 노하우도 전수해 줄 수 있지. 그걸 줄 때가 너밖에 더 있겠냐?”
‘뭐야, 저 오빠가 왜 저래? 나한테 관심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은율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포켓몬 카드 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포기하려는 순간 퇴근하고 들어온 엄마가 방에 들어와 물었다.
“너희 거기서 뭐 해? 거기 먼지도 많은데.”
오빠가 말했다.
“엄마, 혹시 내 포켓몬 카드 봤어? 은율이가 아나바다 한다고 해서 내가 큰맘 먹고 그거 주려 했거든. 근데 안 보이네.”
엄마가 갑자기 구부려 앉아 침대 밑에 손을 깊숙이 넣더니 상자를 꺼냈다.
“은호, 네가 이거 은율이 모르게 숨겨 놓는다고 여기 두었잖아. 그새 잊어버린 거야?”
“내가 왜 그랬지?” 은호가 멋쩍은 듯 웃으며 상자를 받아 은율이에게 건넸다.
은율이가 상자를 열고 소리쳤다.
“대박! 이렇게 많았어? 오빠, 한 오십만 원은 쓴 거 아니야?”
카드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스무 장씩 고무줄로 가지런히 묶어놓았는데, 열 묶음이 넘어 보였다.
“그 정도는 아니고 한 이삼십만 원은 썼을지도 몰라. 중간에 내가 맘에 안 드는 건 버린 것도 있거든.”
은율이는 뛸 듯이 기뻤다.
다음 날 학교에 가서 핸드폰으로 찍어 온 포켓몬 카드 (Pokémon Card) 사진을 의찬이와 요한이에게 보여주자, 두 아이도 좋아하며 집에 있는 게임 관련 만화책이나 닌텐도 (Nintendo) 칩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셋은 만장일치로 재미있는 가게라는 이름을 정했다.
주말에는 각자 물건에 가격표를 붙이고 돗자리도 꺼내 닦으며 가게를 준비했다. 드디어 아나바다가 열렸다.
은율이네 반뿐만 아니라 6학년 다섯 개 반이 모두 강당에 돗자리를 펴고 물건을 늘어놓았다. 시끌벅적하니 제법 시장다웠다. 어떤 가게는 ‘1+1 판매’도 하고, 어떤 가게는 뽑기를 해서 선물도 주며 장사꾼다운 면모를 보였다.
재미있는 가게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게 앞에는 남자아이들이 줄을 잔뜩 섰다. 먼저 사겠다고 하는 아이들, 돈을 더 내겠다고 하는 아이들 덕분에 포켓몬 카드 (Pokémon Card), 만화책, 닌텐도 (Nintendo) 칩까지 일찌감치 동이 났다. 모든 물건을 팔아 5만 3천 원을 벌어들였다. 일찍 가게 문을 닫은 최은율, 김의찬, 이요한은 뒷짐을 지고 장터를 돌며 이거 저거 사고 구경하면서 여유를 한껏 누렸다.
다음 주 월요일, 아나바다 결산일이 되었다. 선생님은 6학년 전체에서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매출이 있었다고 하자 친구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이 수익금은 다른 나라에 있는 은율이 또래 아이들을 돕는 데 사용될 거라고도 하셨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선생님께서는 재미있는 이름의 상을 만들어 가게를 잘 운영한 팀들에게 주셨다. 모두 세 가지 상이 수여되었다.
가장 많은 물건과 수익을 낸 팀에게 ‘장사의 신(God)’ 상,
포스터와 손글씨 가랜드로 가게를 가장 멋지게 꾸민 팀에게 ‘눈길을 사로잡는 가게’ 상,
마지막으로 가장 빨리 물건을 솔드아웃한 팀에게 주는 ‘마케팅 달인’ 상.
‘마케팅 달인’ 상에 은율이네 재미있는 가게가 호명되자 셋은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덧붙이신 말을 듣고서야 이유를 알았다.
“얘들아, 모든 친구들이 멋진 모습을 보여줬는데, 선생님이 마케팅 달인 상을 재미있는 가게에 준 이유는 이 가게의 타깃 고객이 명확했기 때문이야. 마케팅은 장사를 할 때 어떤 제품을 누구에게 팔지를 정하는 중요한 전략인데, 이 팀은 게임과 만화를 좋아하는 남자아이들을 타깃으로 잡았기 때문에 상품 종류는 단순했지만 어느 가게보다 먼저 완판할 수 있었던 거야.”
은율이와 친구들이 상으로 과자 꾸러미를 하나씩 받아 자리에 앉자, 뒤에 있던 친구들이 놀리듯 말했다.
“너네 마케팅 전략까지 생각했어? 대단하네!”
의찬이가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너네가 내 타깃 고객이었다고.”
집으로 돌아온 은율이는 과자 꾸러미를 열어 식탁에 늘어놓았다.
은호 오빠가 좋아하는 감자칩이 있었다.
오빠 방을 열어 책상 위에 감자칩을 올려놓았다.
밤늦게 학원에서 돌아온 은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거 과자 뭐야? 엄마가 사다 놨어?”
엄마가 설거지를 하다 물을 끄고 대답했다.
“아니, 은율이. 은율이가 네 덕분에 오늘 상 받았대. 감자칩이 상품이래.”
은호가 거실에 있는 은율이도 들으라고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최은율, 잘 먹을게. 오빠 있으니까 좋지?”
과자 꾸러미에 있던 막대사탕을 쪽쪽 빨면서 은율이가 말했다.
“응, 좋아. 오빠가 있어서 좋아. 아주 가끔.”
오빠가 과자 봉지를 뜯고 와작와작 감자칩을 씹는 소리가 정답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