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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번과 함께 잘 살아요

뜻밖의 위로

어머니: ”여보세요. “

며느리: ”어머니, 저예요. 며칠 전화 안 받으셔서 걱정했어요. 날 갑자기 추워졌는데 어쩌고 계세요? “

어머니: “아가, 전화했냐? 걱정 없다. 전기장판 위에 이불 폭 쓰고 있으면 괜찮아. 직장 갔다 왔고? 저녁은 먹었는가?”. (남편은 8남매의 8번이고, 그녀는 막내며느리인데 어머니는 그녀를 ‘아가‘라 부르신다.)

며느리: “네. 이제 집에 와서 밥 먹고 앉았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

어머니: (그저 안부를 물었을 뿐인데 갑자기 우신다.) ”아가, 내가 죽어야 할까 봐. 나이가 많으니까 아무도 찾지도 않고, 전화해도 잘 안 받고, 친구들도 다 죽어버리고 이렇게 쓸쓸하게 살다가 죽어버려야 하나보다. 아이고, 아이고”. (계속 우시면서)”내가 가족회의를 소집할까나? 모두 다 모이라고 해서 엄마한테 잘하라고 할까? “ (나이가 들면 별 것도 아닌 것에 더 서운해진다고 한다)

며느리: (자주 설움이 북받쳐오면 우시니 며느리는 어떤 날은 따뜻하게 위로를 하고, 어떤 날은 냉정한 조언을 한다. 오늘은 조언을 해야 할 날인 것 같다고 즉흥적으로 감각적으로 판단한다. ) “어머니, 제 말 들어 보세요. 울지 마시고 들어 보세요. “

(며느리 계속)

“어머니, 형님들 나이가 몇 살이에요? (1~6번까지의 딸들을 말한다) 모두 나이가 60이 넘고 70이 넘은 딸도 있죠? (어머니는 아흔이 넘으셨다.) 다들 손주도 있죠? 그런 어른들을 맨날 걱정하는 것은 다 쓸데없는 일이에요. 그리고 다들 각자 가정 꾸리고 손주까지 돌보고 살려니 얼마나 바쁘겠어요? 제 말이 맞죠?”

어머니: “우리 아가 말이 맞긴 하다.”

며느리: ”저도 그래요. 오늘도 전주, 광주 출장 다녀오느라 새벽 6시 반에 나갔다 집에 오니 밤 8시가 되었어요. 먹고살기가 쉽지가 않아요. 어머니 제 나이에 어땠어요? 8남매 벌어 먹이느라 힘드셨죠? 그러니 다들 사느라 바빠서 어머니한테 연락 더 자주 못 드린 거예요. 근데 어머니 8번 아들과 며느리 연락 자주 드리죠? 자녀가 많아도 지금 어머니한테 가까이 사는 자녀들하고 잘 지내면 되는 거예요. 8번 하고 잘 지내요. 어머니. 우리 잘 지내요.”

어머니: “고맙다 고마워. 그럼 우리 언제 볼까나? 구정 되어야 보나? ”

며느리: “아뇨. 구정 너무 멀어요. 그전에 들를게요.”

어머니: “그래 엄마가 맛난 거 사 줄테니 오너라. 같이 가서 국밥 사 먹자.”

며느리:“네, 그럼 쉬세요 “


어머니는 눈물을 그쳤다. 며느리는 스스로 말하고도 어머니가 금방 털고 씩씩해지신 것이 신기했다.


우울과 슬픔의 구덩이에 빠질 때 손을 잡아 희망으로 이끄는 대화가 오늘은 통했다.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도록 우리 곁에 함께 해요

8번과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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