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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떠난 여행

긴 연휴에 밥을 짓고 가족을 돌보는 엄마의 일상 묵상

몇 시쯤 됐을까? 한 9시, 10시쯤 되었을까? 블라인드로도 감출 수 없는 햇살이 얼굴에 닿아 눈을 겨우 떴을 때,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우리 딸의 오목조목한 눈코입이 들어왔다. 추석 연휴 내내 비가 오더니 아이의 얼굴에 드리운 따뜻한 햇살을 보니 오늘은 전혀 다른 날이 펼쳐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직 누워서 올려다보는 창 너머의 하늘은 높고, 하얗게 둥둥 떠 있는 구름이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다.


아이들과 어릴 적에 여행을 참 많이 갔었다. 대단한 여행은 아니어도 1박 2일, 2박 3일 차를 몰고 짧은 로드트립을 다니곤 했다. 명절에도 종종 여행을 가곤 했는데, 돌아보면 해가 뜨면 밖으로 나가 햇살을 받아야 하는 내 기질도 한몫을 했다. 아이들은 정작 너무 어릴 적에 갔던 여행지에 대한 기억은 없고, 작고 구체적인 순간들만 어렴풋이 간직하고 있더라. 장소는 기억을 못 해도 키즈카페에서 놀았던 기억, 도쿄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거기서 샀던 캐릭터 인형, 엄마와 함께 라멘을 먹었던 소소한 기억들 말이다. 아이들이 점점 크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꺼려하는 시기가 우리에게도 찾아왔고, 그래서 작년 여행을 마지막으로 당분간 여행에 대한 마음을 접기로 했다.


올해는 추석 연휴가 개천절, 한글날, 대체휴일까지 모두 포함해 열흘이다. 평소 빈둥빈둥거리며 쉬지 못하는 내 성향상 열흘 동안 집에만 있는 것은 좀 그러지 않은가, 비생산적이지 않은가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도 처음 삼일 정도는 정말 매 끼를 열심히 했다. 어머니도 명절을 맞아 오셔서 열과 성의를 다해 이것저것 해 먹었다. LA갈비와 육전, 잡채도 하고 만둣국도 끓이고 버터새우구이도 해 먹었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우리 집 풍습에 맞게 원하는 대로 먹고 즐겼다. 아흔이 넘으신 어머니는 실력은 부족해도 자신감 넘치는 작은 며느리의 명절 식사대접에 늘 후하셨다. 연신 핸드폰을 보며 겁도 없이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나의 거침없는 요리에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러니 나도 자유롭게, 민주적으로 가족의 의견을 수렴해 추석 음식을 정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신나게 먹고 며칠 놀았는데, 연휴 내내 내리는 비 때문일까, 하루하루 지나면서 기분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럴 때마다 낮잠 대신 책을 집어 들었다(명절이면 남편은 낮잠을 많이 자서 비교하기 위해서 적어본다). 작년부터 마음이 울적할 때 가만히 앉아 책을 몇 장 읽으면 마음이 조금 다스려지곤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마음이 편치 않아 같은 문장을 읽고 또 읽었지만,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뒤숭숭한 감정이 수그러들고 마음이 담담해졌다. 책을 읽는 것도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건 꽤 늦게 알게 된 뜻밖의 발견이었다.


사실 아이들이 명절 연휴를 시작하면서 부탁한 것이 몇 개 있었는데, 꽤 사소한 것이었다. 늘 시간을 쪼개 분주하게 사는 나에게 초등학생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이번 명절에는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 콘텐츠나 드라마를 나랑 같이 앉아서 봐줄 수 있어? 다른 일하면서 왔다 갔다 하지 말고 나랑 같이?” 그리고 말을 이었다. “다른 하나는 우리 어렸을 때처럼 한 방에 이불 다 깔고, 거실에서 다 같이 누워서 자면 안 될까?” 너무나 소박한 부탁에 두 말 않고 알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연휴 내내 밤마다 거실에 이불을 깔고 다 같이 뒹굴며 자정이 넘도록 드라마 몰아보기와 아이돌 영상을 보다가 잠들었다. 자다 보면 서로 다리 위에 다리를 얹기도 하고, 다른 사람 배에 팔을 올리기도 하며 뒤엉켜 있었다. 아침에 해가 중천에 뜨면 그제야 일어나 늦은 아침 식사를 했다. 어느 아침, 다 같이 밥을 먹다가 문득 깨달았다. 온 식구가 모두 모여 밥을 먹은 게 정말 오랜만이라는 것을. 두 아이가 말했다. “이렇게 여유 있는 시간 보내니까 너무 좋다.” 그 말을 듣던 내가 밥을 먹다 말고 숟가락을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 말했다.


“나 갑자기 깨달았는데, 우리 집으로 여행 온 거네. 우리 이렇게 넷이 한 공간에서 내내 붙어 있고, 같이 삼시 세끼 먹고 논 게 얼마 만이야?
우리 집으로 여행 왔구나.” 아이들이 맞장구쳤다. “맞네, 엄마. 그 말이 딱 맞네. 그렇게 생각하니까 기분이 엄청 좋네.”


몰랐는데 장소가 집일 뿐, 우리가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은 여행지에서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여행을 가는 이유는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서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에게 집중하고, 서로를 흠뻑 느끼기 위함이다. 우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추석 연휴 덕분에, 또 사춘기 아이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집 안에 함께 머물러 있었다. 매일 아침이면 각자의 장소로(학교로, 일터로) 흩어져 밤이 되어야 만나던 우리는 이번엔 집에 모여 온종일 부대끼며 놀고먹고 있었다. ‘집으로 여행을 왔다’는 말이 정말 맞았다. 어느덧 아이들이 점점 크면서, 넷이서 함께 밥 한 끼 먹기도 점점 힘들어졌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방과 후 학원을 들러 밤 열 시나 다 되어야 집에 돌아왔다. 몇 시간 얼굴도 보지 못했다. 그마저도 간단히 늦은 저녁 겸 간식을 먹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면, 그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공부하느라 지친 아이는 주말이 되면 친구들과 여가를 보냈다. 노래방도 가고, PC방도 가고, 학원 보강도 가고. 그런 아이가 저녁까지 먹고 들어오는 날에는 주말에도 밥 한 끼 함께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서로가 늘 아쉬운 우리 네 명이 한 공간에서 이렇게 오래 함께 있었다니. 왜 미처 깨닫지 못했을까? 뭘 그렇게 생산적이고 대단한 이벤트가 있는 연휴를 바랐을까? 내 마음에 남았던 아쉬움은 이제 해소되었다. ‘서로에게 집중하고 함께하기’라는 여행의 본질을 방구석 일상 속, 식탁의 교제 속에서 발견하면서 생각의 변화가 일어났고, 마음의 변화가 따라왔다. 그러니 남은 연휴는 한 톨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고 더 즐겁게 보내야겠다. 삼시 세끼, 아니 삼시 네 끼, 다섯 끼라도 먹고 싶은 거 다 해 주며, 하고 싶다는 것 같이 하면서 말이다. 이 명절 연휴가 끝나면 우리는 이 방구석 여행을 그리워하며 각자 또 치열한 일상을 살아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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