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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눈 시력 회복 사건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 때 찾아오는 선물


띡띡띡띡 철컥~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가 중문을 여는데 딸아이가 퇴근하는 엄마를 맞으러 나왔다.

"엄마, 나 좋은 소식 있어."

요즘 사춘기에 접어들어 까칠해진 딸아이가 자신의 방을 나와 엄마의 퇴근을 반겨주다니… 이건 요즘 우리 집에서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며칠 전 구강검진하러 동네 치과를 함께 갈 때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가까운 병원을 몇 군데 지정하여 구강검진을 받아오라고 한다.) 딸아이의 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았다가 확 뿌리치고 가버려서 보통 서운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큰아이의 사춘기로 한 번 단련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요즘 잘 견디려 한다. 두 번째 맞이하는 사춘기 엄마의 나날들.


다시 현관에서의 대화로 돌아와

"그래? 무슨 일인데? 우리 딸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내가 물었다.

"엄마, 나 오른쪽 눈 시력이 좋아져서 안경 렌즈를 바꿨어."

"정말? 얼마나 좋아졌어?"

옆에서 저녁식탁을 차리던 남편이 거든다.

"오른쪽 눈 시력이 0.7이나 되었대."


시력이 0.7인데 온 가족이 기뻐할 일인가 싶겠지만 우리에겐 사연이 있다.

아이가 다섯 살 영유아 검진에서 오른쪽 눈의 시력이 많이 나쁘다는 것을 처음 발견하게 되었다. 아마 그전에는 너무 어려서 의사 표현도 정확하지 않고 해서 영유아 검진을 해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섯 살 되어 시력 검사를 제대로 하게 되었는데 왼쪽 눈을 가리고 숫자를 읽으니 많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장난을 치는 줄 알고 "왜 그래? 아, 숫자 잘 읽잖아. 어서 잘 읽어 봐." 그랬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그동안 오른쪽 눈을 많이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하셨다. 양쪽 눈의 시력 차가 많이 났고, 아이는 왼쪽 눈이 잘 보이니까 아무렇지 않게 지내다가 자유롭게 의사 표현도 잘하게 되면서 우리는 오른쪽 눈의 현저히 낮은 시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나고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안경 쓰니 더 예쁘네. 더 똑똑해 보여, 우리 딸." 하고 말하며 장난도 쳤지만 당시에 엄마인 나는 "왜 이런 것도 몰랐을까?" 하며 자책을 했다. 그리고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그러나 내가 엄마라고 해도 딱히 해 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딸은 다섯 살 후반부터 안경을 쓰게 되었다. 집에서는 왼쪽 눈을 일부러 안대로 가리고 생활했다. 0.1 시력의 눈으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서 시신경을 자극하게 하는 치료였다. 설마 이렇게 해서 치료가 될까 생각했다. 실제로도 몇 주나 몇 달 만에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1~2년이 지나고 집에서 더 이상 왼쪽 눈을 가리던 안대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의사 선생님의 반가운 말을 들었다. 그리고 압축 렌즈가 들어간 안경을 쓰고 생활했다. 벌써 처음 아이가 안경을 쓰고 난 지 8년이나 되었으니 더 이상 시력에 대한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다. 속상함은 희석되어 이제는 괜찮았다.


그런데 먹고 자고 먹고 자는 일상을 사는 사이에 우리 아이 오른쪽 눈의 시력이 조금씩 개선되어 안경 벗고 0.7이 되었다. 이러한 작고도 큰 변화는 우리 가족에게 뜻밖의 선물이 되었다. 기대하지 않았고 내려놓은 후에 찾아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아이의 시력이 회복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기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위트 있는 하나님이 "너는 잊었지만, 나는 잊지 않고 일하고 있었단다."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기도 하다.


오랜만에 침대에 누워 남편과 아이의 시력의 변화가 계기가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나누게 되었다.


부부라고는 해도

각자의 분주한 삶을 사느라 한 이불을 덮고도

각자의 베개에 머리를 누이고

각자의 몸에 편한 방향으로 누워

각자의 핸드폰을 보거나 이내 곯아떨어져 자곤 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우리 둘에게 공통의 감정, 바로 감사함이 찾아왔기 때문에, 그 작고 소중한 마음을 나누게 되었던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
"어떻게 시력이 회복이 될 수가 있지?"
"우리 딸 처음 안경 쓰던 그날, 평소에도 많이 수줍은 우리 딸이 부끄러워하며 안경을 쓰고 어린이집을 가던 기억이 생생한데 말이야."
"안경 쓰기 싫어서 안 쓰다가 집에 들어올 때 현관 앞에서 써서 혼나기도 하고 그랬는데 말이야."
"아이들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렇지?"
"맞아. 우리 나중에 더 나이 들면 오늘도 소중하게 기억될 것 같아."


뭐 이렇게 별것도 아닌 일에 호들갑이냐고 누가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아주 작고 사소한 일상 속에서 의미를 발견해 가는 우리 부부가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그리고 기다림인지 망각인지 구분도 안 될 법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진보가 있는 그런 일들의 지루한 과정을 똑같이 성실히 살아내는 일이 바로 우리 어른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고, 그게 바로 삶인 것을 깨닫는 중인 것 같다. 아이의 시력이 좋아졌지만, 아직 내 삶에는 기도할 것도 많고, 노력해도 해결 안 되는 숙제도 많고, 그냥 견디며 기다려야 하는 것들이 남아 있다. 아니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어떤 것들은 해결되고, 다른 새로운 문제가 찾아오는 것 같다. 내 삶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내 남편도, 엄마도, 동료도 그렇고, 돌아보면 다 그렇다.


그러나 “시력 회복 사건”을 통해 우리 삶의 어떤 문제는, 내 노력이나 수고로 안 풀리는 그런 문제는, 과감하게, 잠시 잊고, 내려놓고, 일상을 그저 살아내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이렇게 또 매일매일 살아내다 보면 다시 뜻밖의 선물을 만날 것 같아 한 편 기대가 된다.


몇 년 후에 우리 딸의 시력이 더 좋아지면 어쩌지?
그럼 좋지 뭐.

또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선물을 받으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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