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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창한오후 Nov 23. 2016

세 번 죽을 뻔한 이야기

묘하다. 13살, 23살, 43살 때라니

새벽잠에서  깨면 깊은 번뇌와 고민으로 괴로워했다.

지금까지는  잘 버티어 왔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무서움의 엄습..

미래는  과연 있는 것일까?

내일이 끝이 될지도  모르는데 너무 먼 미래를 걱정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진짜  죽을뻔했던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어 졌다. 




첫 번째.

13살 초등학교 6학년 무더웠던 한 여름.

어른없던 친구 집에서 서너 명이 놀다가.. 

밑에는 서랍 이었던 아주 작은 이불농으로 숨어들었다.

집주인 친구는 찾는 척 하다 장난으로 농문을 잠근 뒤 밖으로 나가버렸다.

삼복 더위 + 좁은 공간은 숨 쉬기 매우 힘들다.

소리치고 문을 차도 누구 하나 방에 오는 사람은 없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지 모르겠다. 

전신에 땀이 가득했고, 정신은 점점 혼미해진다.

왜그랬을까? 갑자기 

엄마 얼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더 빠른 속도로 형, 누나.. 당시 애기였던 조카 얼굴까지..

죽기 전에는 영화처럼 필름이 지나간다는 표현이 있는데 

정말 그랬다.

희미하게 의식을 잃던 중 멀리 현관에 기척이 들려왔다.

그리고 기적처럼 농문이 열렸다. 뜨거운 열기가 빠진다. 

그렇게 1미터 높이에서 바닥에 머리부터 떨어졌다.

한숨지나 살았다는 생각에 울음이 터졌다.

친구들은 뒷산에 가재 잡으러 다녀왔다고 했다.

대략 한 시간 반.

조금 더 늦었더라면 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였을게 분명한 상황이었어.



두 번째

1995년 추웠던 전방의 3월. 상병 시절..

가장 가까운 선임과 지속된 불화를 겪고 있었다.

24시간 함께 생활하는 사람. 

나는 빠져나갈 구멍 없이 속칭 밀착 갈굼을 당하는 불운한 처지다.

이때 잊지 못할 일들이 벌어진다. 

야외 훈련기간으로 텐트에서 생활 하던 중이다.

산속 깊은 외딴 곳. 상황실로 사용하던 24인용 대형 천막.

선임은 유성 매직으로 넓은 전지에 내일아침 장교가 발표할 차트 쓰는 업무를 지시했다.

나는 악필이다.

죽어라 노력으로 조금 좋아진 상태긴 했지만 글씨 쓰기는 재능이 전혀 없는 걸 그도 안다. 

일부러 골탕 먹이는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

야전 텐트는 난방없이 매우 춥다. 

가죽장갑 낀 채 쓰는 매직 글씨는 더욱 둔했고

이미 손목마저 얼은 상태라 글씨는 팔 전체를 움직이며 그리듯 써야만 했다.

칙칙한 텐트, 흔들리는 조명. 

혼자 새벽까지 이어지는 야간작업은 누적된 피곤함과 반죽되어 그야말로 비몽사몽과 사투였지.

1M 자를 대고 표까지 그리는 7장 작업은 결국 엉터리로 마무리 되었다.

다음날 아침.

작성된 차트는 내가 봐도 망작이다. 선임은 나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깨지는 건 일상다반사라 무섭진 않았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예하 대대 나의 후임병까지 모두 소집해 그들 앞에서 공개 망신을 준 것이다.

그들은 전부 나보다 후임들이니 자존감은 철저히 부서졌다. 

깊은 좌절은 정신적 붕괴가 찾아왔다. 

갈군 선임이 싫다기보다 스스로 미워서 살 가치를 상실한 거지.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차라리 결정되니 마음이 편하다. 

'죽는게 무섭지 않았다.

남아있던 약간에 걱정도 홀연한 연기처럼 바람에 흩어 사라졌다. 

나는 어린 아이가 되어 낮선이에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나를 잡은 손은 아마도 저승사자였던 듯. 

자살을 할 공간은 쉽게 찾아냈다. 

그 곳은 멀지 않았고,  바로 뒤 한적한 장교숙소로 쓰는 천막이다.

죽는 사람이 왜 유서를 쓰는지 그 마음을 나는 안다. 

남을 가족에게 작별 인사는 본능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적막했다. 

의식을 치르듯 전투화 끈을 텐트 위 나무 가로기둥에 묶었다.

유서를 쓰려니 또 한 번의 인생 필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순식간에 모든 기억이 지나간다.

소리 없이 눈물이 나오고 있었고.. 가족 얼굴과 내가 살아온 과정들...  

당시 유서를 뭐라고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를 탓하거나 그러진 않았던것만 같다.

그러나

이상한 이유로 살 길이 다시 주어지는데

그것은 갱지와 수성펜의 조합이다. 

글을 대고 쓰는 야전침대에 말랑함은

격렬한 마음으로 쓰기에 갱지가 쉽게 찢어졌다.  

구겨 던지고 두 번째 장이 또 찢어지고,

자살은 울컥했을 때 죽어야 한다. 

세 번 넘게 찢는 갱지에서 느껴진 카타르시스가 마음을 식게 해준 것 같다.

순간 살고 싶어졌다. 

저승사자에 꼭 잡은 손이 힘없이 풀리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진다..

'그래 담을 넘어 탈영을 하자'

어디 헌병대 영창에 앉아있는 게 지금 지옥보다는 훨씬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대안을 배회했다. 그때만난 의무장교가 나중에 말하길 내 모습은 평소와 굉장히 다른 모습 이었다더라.

오전 10전 철조망을 넘었다.

때는 겨울산. 아래 훈련장에서 산 넘어가는 나를 누구라도 볼 수 있고 생각했다. 

앞만 보고 얼마 안 달려 잎이 무성한 사계절 정원수 숲 속에 몸을 숨겼다.

내가 이 부대원인데 이곳까지 오진 않을 것을 잘 안다.

어두워지면 난 이 산을 넘을 것이다. 그리고... ...

'아 엄마! 어떡해..'

 또다시 걱정이 밀려왔지만 밤샘 작업으로 밀려오는 잠을 막을 수 없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웅크린 채 겨울산에서 잠에 들었다.

오후 4시 반.

내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 부대는 생각보다 빨리 수색에 나섰다. 

멀리서 찾는 외침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산 넘어가야 되는데 아침부터 굶고 추운 곳에서 잠을 잔 몸은 굳어 있었다.

산을 넘어야 되는데 싶지만 몸이 일으켜지지 않는다.

얼마 뒤 가까운 후임에게 발각됐고 그렇게 허망하게 잡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다행인 것이다.

아침 자살용 끈 묶던 그 시간은 저승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텐데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은 것인가?

인생도 망칠 때가 아니었던 듯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세 번째.

2015년 여름 인천 계양역에서 여러명과 장거리 러닝을 시작했다.

함께 출발한 모임은 총거리 23km가 걸리는 여의나루를 목적지로 줄지어 달려간다.

이 얼마나 건강한 사람들인가. 

그들과 함께 하는 나는 활활 타오르는 에너지를 만끽하며 러닝을 하고 있었다. 

아직 다하지 않은 청춘을 즐기는 것이다.




<앞 카메라를 목에 건 빨간 운동화가 사건 당일에 나다>


사진 찍는 것을 즐거워하는 내 손에는 DSLR이 들려 있다.

나는 같이 달리는 회원들 멋진 모습을 다양한 각도로 찍고 있었다.

그때 어떤 생각이었는지 맨 앞으로 달려나가 뒤를 향하며 자전거 도로에 뒤로 뛰어내린다. 

회원들 비명소리가 들렸다.

"어어~ 어어 어어~"

0.1초 

바람같은 섬뜩한 살기가 스친다.

급히 얼굴을 돌리니 자전거 탄 상대방 얼굴이 바로 앞에 보이며.  

번쩍! 쾅!

목격한 지인 말에 따르면 난 하늘을 날았고, 죽을 수 있다고 생각 했단다.

그 분 말에 따르면 

사람 몸에 충격으로 쓰러졌을 때

몸이 쭉 펴지면 죽은 사람이고, 웅크리면 산 사람 이란다.

웅크림과 뻗음의 중간쯤? 지금도 난 나를 알수 없다.

그리곤, 갑자기 불꺼진 무대처럼 

고요함.

온기없이 고요하다.. 

암흑.. 암흑... 암흑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다른 차원. 느낌은 길지만 잠시 머물렀을게다.

시간과 공간이 멈춘 그곳에서 나는 나를 느끼지 못했다.

멀리서 살짝 구멍이 열린다고 느낄때 

모기소리보다 작은 말이 들려온다

"괜찮아?"

"00야 괜찮아?"      

"괜찮아?"

놀란 동료가 가까이서 큰 소리로 말하고 있었지만 소리는 아주 작았고, 

마치 천천히 볼륨을 높이듯 커지며 들려온다.

소리는 원래 컸지만 내 의식이 돌아오는 것이다.

괜찮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말이 나오지 않는다. 

숨도 쉬어지지 않는다.

통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곳부터 전신을 감싸 안고 퍼졌다.

그건 역설적이게도 아직 살아있다는 신호.

이어서 막힌 숨이 신음하듯 조금씩 열린다. 한참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쉴 수 있어진다.

갈비뼈가 석대 부러졌던 전치 8주의 큰 사고다.

사고는 너무 순식간이다   

<앗>// <쿵>// <<< 컴컴함 >>>


그 어두운 곳은 어디였을까?

혹시 저승은 아니었을까? 

너무 고요해서 싸한 그 느낌이 잊혀지지 않는다.



세 번 죽을뻔한 경험.

사람이 죽는 방법은 셀 수 없이 많다.

사고로 죽던, 늙어 죽던, 병들어 죽던..

가는 순간은 생각보다 고통스럽진 않을 거라는 게 세번에 결론이다.

나에게 네 번째가 온다면 어떤 방법일까!!!

전혀 궁금하지 않다.

그냥 모르고 살다가 꽥하고 끝..

이게 깔끔하겠지는 싶다. 

미리 알아봐야 뭐하겠는가!  -,.-;

다 쓰고 보니... 나이가 13, 23, 43살 때다..

이거 묘하네.

33살 땐 기억나지 않고, 흠.. 53살 때를 조심해야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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