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코미디언 에세이 시리즈를 만들다
중학교 시절 우리 반에는 온몸을 써 가며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주변에는 항상 아이들이 북적댔고 나를 포함해 모두가 그 아이의 몸짓과 입담에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친구를 무척 부러워했다.
나도 웃기고 싶다!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인간에게는 분명 의식주에 대한 욕구만큼이나 개그에 대한 욕구도 커다란 것이 분명했다. 머릿속으로 친구들을 웃길 타이밍을 재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려보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머릿속에서 벼르고 벼르다가 내뱉은 말 한 마디로 친구들의 목청이 훤히 열리도록 웃음 폭탄을 터뜨렸을 때의 쾌감이란, 신기한 에너지가 발밑에서부터 정수리 위까지 솟구치는 듯 짜릿했다. 내가 사람들의 반응을 이끄는 주도권을 쥔 느낌이었다.
분명 어린시절에는 유머라는 덕목이 내가 추구하는 최상위 가치였건만 고등학교, 대학교를 지나면서 '아름다움'이라는 덕목이 맹추격을 해왔다. 사회에서는 내 정체성 중에 하나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라고 종용했다. 그 방법에는 기분 나쁜 것도 있었고('화장 좀 하지?' '너도 여잔데 꾸미고 좀 다녀라') 유혹적인 것도 있었고('쭉쭉빵빵 몸매로 비키니를 입어보자!' '성형, 제2의 인생 시작!') 재밌는 것도 있었다('패션으로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자', '화장과 패션을 통해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재미').
사람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신경 쓰던 시기였던 대학생 때는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에 잠식되어 많은 시간과 돈을 겉모습을 꾸미는 데 투자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유머에 대한 욕망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고 오래된 친구, 친한 사람 앞에서는 유머를 방출하지만 낯선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쉽사리 유머의 빗장을 풀지 못했다. (주변을 보면 이런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정말 재밌는 사람인데 친해지지 않으면 그 진가를 알아챌 수 없는, 샤이 코미디언이라고 해야 할까?)
마음속에서는 분명 웃기고 싶다는 욕망이 여전히 숨쉬고 있었지만 대외적으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더 맞는? 더 경제적인?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되어갔다. 어디를 가도 '웃긴 여자'보다는 '예쁜 여자'에게 기회의 문이 훨씬 넓었다. (심지어 직업이 코미디언일지라도 그런 것 같다.)
물론 예쁜 걸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예쁘고 보기 좋은 것, 너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고 할머니도 좋아하고 할아버지도 좋아하고...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 사회가 바라는 '미의 기준'은 대체 누구의 기준일까 하고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얼굴보다는 하나라도 단점을 찾아서 억지로 뜯어 고쳐야 한다고, 본판이 예쁘장해도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고, 상처가 있으면 가려야 한다고, 새로운 미용 기술과 패션 아이템을 시도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단점을 지적하고 고치려고 하는 뒤틀려 있는 미에 대한 추구에 숨이 막혀 왔다. (실제로 이런 미의 기준을 채우려면 무한대의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그로 인해 잃어버린 기회비용은 너드 걸 저마다의 개성이다.)
대체, 누가, 왜 이런 억지스러운 미의 기준을 만드는 것일까? 대체 언제부터 누구나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게 된걸까?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내가 폄하한다고 당장 내일부터 미의 가치가 땅으로 떨어질리도 없지만. 내 생각에 미의 기준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아침식사 때 어느 젊은 숙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수지는 그 숙녀가 대단히 예쁘다고 말했다. 엄마는 아니라고, 그 숙녀는 자신의 대단히 선량한 품성에 걸맞는 착한 얼굴을 하고는 있지만, 예쁜 얼굴이라고 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자 수지가 말했다.
"그렇지만 엄마, 만약 어떤 사람이,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즐거운 얼굴과 착한 생김새라면, 그 사람은 예쁜 거예요."
성직자 토머스 K. 비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건 아주 훌륭한 판별이며 수지의 견해가 맞다고 말해 주었다.
- 마크 트웨인의 유쾌하게 사는 법, 161-162p
<미란다처럼>을 만들 때 영국 코미디언 '미란다 하트'를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미란다 하트’ 관련 기사 대신 '미란다 커'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국내 인지도가 거의 없는 미란다 하트의 글이 많지 않다는 것은 놀랍지 않았지만 국내에서 활동하는 시기가 아니었던 미란다 커의 기사가 거의 매일 업데이트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다. 그때가 5년 전인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2019년 4월)도 미란다 커를 검색하면 불과 12시간 전, 14시간 전, 2일 전 새로운 기사가 올라와 있다.
나는 미란다 커보다 미란다 하트가 좋다. 예쁜 것만큼이나 웃긴 것도 매력적인 가치라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예쁜 여자에 대한 콘텐츠는 넘쳐나니까 나는 웃긴 여자에 대한 콘텐츠를 만든다. 세상에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기울어진 저울 중 하나를 조금이나마 수평으로 맞출 수 있을까 싶어서다.
예전에 한 여자 연예인이 섹시한 연기를 할 때 야동을 참고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섹시’에 대한 상상력이 얼마나 한정적인지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시트콤 <미란다>에서는 미란다가 이런 말을 한다.
나 같은 여자도 섹시할 수 있어. 아직 세상 사람들은 부정하고 있지만,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다들 곧 깨닫게 될 거야.
미란다는 기존에 반복되어 온 섹시한 여성의 모습을 답습하는 대신 그 틀을 확장시키는 시도를 했고, 나는 그 시도가 꽤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드는 책의 주인공, 웃기는 여자들에 대해 생각한다. 21세기에 웃기는 여자를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들. 거의 모든 분야의 사회 영역에서 남성 위주의 문화가 우세하다. 코미디의 세계도 마찬가지인데, 엔터테인먼트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여자는 못 웃긴다'는 말이 자주 인용될 정도로 여성 코미디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헐리우드 방송계 내부에서의 서열 문화나 성차별 등도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매우 심각하다. (최근에서야 미투 운동이 거세지면서 조금씩 폭로되고 있는 현실이다.)
사람들은 여성 코미디언에게 ‘여자라서 안 웃기다’며 여성성을 포기해야 직업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모와 몸매에 대한 평가를 한시도 빠뜨리지 않는다.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대중의 눈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서 웃음을 만들기 위해 아슬아슬한 길을 걷는 것이 바로 여성 코미디언이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여성 코미디언들의 글에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그 정체성 때문에 주류 세계에 부딪혔던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 것이다.
코믹 릴리프 시리즈의 첫 캐치프레이즈는 '웃기는 여자가 세상을 뒤집는다'였다. 밥상 엎듯이 확 뒤집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니 내가 좋아하는 여성들의 유머는 아주 잠깐씩 모자이크 타일 뒤집히듯이 세상을 뒤집어 놓는다. 그 반짝하고 빛나는 유머의 순간이 너무나 좋았다.
'여자는 안 웃긴다'는 편견을 뒤집을 때, 더 나아가 '네가 웃기다고 생각하든 말든 신경 안 써. 판단은 내가 해!'라고 외치며 세상에 한 방 먹일 때, 훌러덩 옷을 벗어재끼며 여성의 몸이 성적 대상이 아니라 웃기는 주체로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 눈치 보지 않고 말달리기를 하며 '입고 싶은 옷을 입으라'고 단호하게 내뱉을 때 지루했던 삶이 반짝 밝아졌다. 예쁜 롤모델, 멋진 롤모델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소녀들에게 '웃기는 여성 롤모델'을 접할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의 내가 바랐듯이.
아마 내가 이런 화두를 처음 짊어진 것은 아주 어린 시절 여자라서 겪었던 세상과의 불화가 씨앗이 되었겠지만 이것을 구체적인 언어로 쓴 것은 대학교 교양 수업이었던 ‘육체와 영화 예술’을 들으면서 썼던 기말 과제 레포트였다. <미친년>이라는 인터뷰집을 집필한 이명희 교수님이 수업을 진행했는데 정말 미국 명문대는 이런 식으로 토론을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생생한 토론이 이루어지던 수업이었다. 글쓰기와 인문학 공부에 목이 말랐지만 지루하기만 한 전공 수업(멀티미디어 공학)에 메말라 가던 나에게 단비 같은 시간이었고 학교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수업료가 아깝지 않았다. “내 육체가 변하면 나의 정신도 변할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수업의 마지막 과제는 자신의 전공을 통해 바라본 ‘육체와 영화 예술’에 대해 쓰는 것이었다. 대학교 졸업반이라 힘든 시기였지만 이 레포트를 쓰는 동안만은 정말 생기 넘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는 다양함과 상상력이 키워드인 사회이다. 인간은 ‘상상하는 동물’로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자동차, 비행기, 고층 빌딩, 우주여행과 같은 21세기 문명을 이루었다. 하지만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은 자신을 이 땅 위에 서있게 하는 육체에는 많이 적용되지 못했다. 이것은 육체를 개조하는 상상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다양함을 인정하는 상상력을 뜻한다. 종교는 태어날 때부터 다양했던 것이 아니다. 새로운 종교가 생각나기도 하고 기존의 종교에서 갈라지기도 한다. 인간의 성 역시 처음에는 두 가지로 출발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성이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여성, 남성 같은 잣대로 인간을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하나의 존재, 존재마다 각각의 유일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 보편화되지 않을까. 육체와 정신으로부터 나온 자신만의 가치, 즉 각 개인이 섹스(sex)가 아닌 각각의 젠더(gender)로 존재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어본다.
글쓰기 훈련이 전무했던 이공계생이 쓴 어수룩한 글이었지만 시간이 지난 후 읽어보니 지금의 내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나에게는 중요한 키포인트가 된 레포트다. 이 레포트를 쓴 후 계속 이런 공부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내렸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이런 저런 알바 생활과와 취준생 시절을 거쳐 IT 전문서 출판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당시에는 ‘나는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며 문을 닫았지만 어쩌면 내 욕망의 꼬리가 길어서 아주 작은 문틈을 만들었나 보다. 미란다의 책을 보는 순간, 과거에 썼던 레포트의 메시지가 찰칵 하고 연결되었고 여성을 비롯한 기존 세계와 불화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유머라는 무기를 선사하는 책을 번역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목표를 세울 수 있었다. 그래서 코믹 릴리프의 두 번째 캐치프레이즈는 “유머는 여자의 무기”가 되었다.
여성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맞닥뜨리는 불합리의 순간들에 사용할 수 있는 언어에 대한 필요성은 예전부터 있어왔고 페미니스트들을 통해 조금씩 발전해왔다. 예전에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고르고 옮겨서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이라는 시집으로 펴낸 파시클 출판사의 박혜란 님의 북토크에 참여한 적이 있다. 공격의 언어가 아닌 전복의 언어, 상상과 재창조의 언어를 전하고 싶어서 시집을 만들었다는 말씀을 했는데 굉장히 공감이 갔다. 불합리한 상황을 전복시킬 수 있는 유머의 언어는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자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책을 만들면서 타인의 편견을 뒤집는 여성 코미디언들의 기술을 배우고 있다. 실없는 유머부터 날카로운 뼈가 숨어있는 유머까지, 다 같이 웃음을 터트릴 때 도무지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권력을 뒤집는 어마무시한 힘이 폭발하는 순간을 만날 수 있다. 어린 시절의 내가 어떤 이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모두를 웃게 만들며 힘을 거머줬던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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