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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리 Jul 09. 2020

책 한 권 만들어 파는 데 필요한 돈

한... 천만 원쯤?

책 한 권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이에 대한 답은 어떤 책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많이 만드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편집자로 있을 때는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얼마가 필요한지 알지 못했다. 제작을 담당하는 부장님이 원가 계산하는 법을 알려 주었지만 내 돈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그런지 돌아서면 까먹었다. 직접 돈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 오니 책을 만드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들지 관련 책과 인터넷 정보를 통해 파악했다. 

<미란다처럼> 정도의 단행본을 만드는 데 대략적으로 어느 정도 비용이 들어갈까? (2014년쯤 정리한 내용이므로 시기별로 재료비나 인건비의 인상을 감안해야 한다.)


책의 사양 영미권 번역서 / 신국판 무선제본 본문 1도 / 320쪽 / 1,500부


선인세 2,500,000원

저작 중개료 250,000원

번역 비용 3,500,000원

편집 비용 2,500,000원

디자인 비용 1,500,000원

종이 비용 1,500,000원

인쇄 비용 1,500,000원


* 저작 중개료는 에이전시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여기서는 평균적인 금액으로 적었다.

번역, 편집, 디자인 또한 만드는 책의 사양과 업무 범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참고용으로만

봐 주기 바란다.


총 13,250,000원의 제작비가 필요하다, 만약 여기에서 선인세가 더 높아지거나 일러스트가 추가되거나 북디자인의 제작 사양에 변수(본문 컬러, 하드커버, 후가공, 띠지 추가 등)가 생기면 비용이 더 높아진다.


여기서 질문. 서점에서 정가 15,000원인 책이 팔리면 출판사에 얼마가 들어올까? 출판사에서 서점에 책을 공급할 때는 정가의 몇 퍼센트에 유통할지를 정하게 되는데, 이것을 공급률이라고 한다. 대형 서점에 공급할 때의 공급률은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60~70%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 15,000원짜리 책을 공급률 65%에 공급하고 이 책이 팔렸다면 서점에서 출판사로 15,000원의 65%인 9,750원을 보내준다는 뜻이다. 만약 한꺼번에 1,500부가 다 팔린다면 출판사로 들어오는 책값은 내가 출판을 하려는 방향과는 정반대였다. 내가 만만들려는 책은 다수의 독자는 관심 없을 게 뻔하고 아주 소수의 독자들만이 기꺼이 구매할 책이었다. 초판 1,500부를 파는 데 적어도 2년 이상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책을 출간한 후에도 매월 유통 및 마케팅 비용, 물류 비용, 사무실 월세가 나가기 때문에 기존 출판사들은 끊임없이 신간을 내서 여러 종의 수익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출판사 대표들이 쓴 글을 보면 항상 ‘출판 시작 전에 10종의 책을 기획하라’는 조언이 빠지지 않았다.


“12권의 평균 제작비가 약 1천만 원씩 총 1억 2천만 원. 해외 출판물 저작권 사용료와 국내 저자 계약금 5천만 원, 거기에 창업 멤버인 직원 두 사람의 인건비를 포함하면 1년 동안 필요한 경비는 2억 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출판사는 책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팔기도 하지 않나. 첫 번째 책을 팔아서 두 번째 책을 만들고, 두 번째 책을 팔아서 세 번째 책을 만들고…. 이렇게 ‘판매액→제작 금액’의 재생산 구조를 만들려면 ‘피 말리는’ 노력이 필요했다.”

–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처음에 출간한 책의 수입으로 바로 다음 책을 만들고 또 다시 새 책을 출간하는 식으로, 기존 중소규모 출판사는 책의  종수를 쌓아서 백 리스트(back list)**를 만들어 제작비와 책 판매 수익금의 균형을 맞추며 출판사를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1년 안에 10종 정도 출간하는 사이클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1년 안에 10종을 낼 정도로 속도를 내려면 집필, 번역, 편집, 디자인 등의 업무를 외주 작업자나 직원을 두고 맡겨야 가능하다. 내 상황으로 돌아와 보자면, 출판에 쓸 수 있는 돈은 퇴직금 600만 원. 선인세와 저작 중개료, 순수 제작비를 충당하면 딱 맞는 금액이었다. 누가 봐도 기존 출판사의 운영 방식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렇다면 완전히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일단 이 책 하나를 만들며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출판에 올인하지 말고 다른 일을 병행하고, 리스크는 최소로, 직접 할 수 있는 것은 직접 하자.’ 이렇게 해서 다음처럼 아주 자기중심적인 출판 규칙을 세우게 되었다.




책덕의 자기중심적 출판 규칙


1. 직접, 혼자 한다

번역, 편집, 디자인을 직접 하면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물론 보이지 않는 나의 노동력이 눈 시퍼렇게 뜨고 존재하겠지만). 이렇게 하면 앞서 정리한 제작비 13,250,000원에서 7,500,000원을 아낄 수 있다.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면에서도 혼자 할 때의 장점이 두드러진다. 잘 맞는 파트너를 구하고 여러 의견을 협의하는 과정에 드는 시간과 비용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부분은 뒤집어 보면 다양한 의견을 듣고 다각도에서 바라볼 수 없다는 단점도 분명하다.

다행히 나는 타고난(?) 멀티플레이어인지라(‘산만하게 일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설명일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수록 더 능률이 오르는 편이다. 게다가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일을 좋아하고 깊이 파고들지는 못해도 빠르게 배우고 응용을 잘한다는 장점이 있어서 출판에 필요한 기술들이 큰 장벽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인디자인, 포토샵, 일러스트, 전자책 제작  출판에 필요한 일을 배우며 알아 가는 과정은 힘들다기보다 즐겁게 느껴졌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디자인이나 생소한 세무 회계 업무가 걱정되었지만 어느 정도 수준까지 할 수 있는지 시도해 보고 정 어려우면 전문가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일단은 직접 해 보기. 작업 과정을 알면 누군가에게 일을 맡길 때도 수월하게 소통할 수 있을 테니까. 1인 출판사로서 나의 강점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다.


2. 책으로 돈 벌 생각 하지 않기

출판사를 차린다면서 어쩌면 어이없는 발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책을 팔아서 큰 수익을 얻을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목표는 계약 기간 내에 초판 1,500부를 소진하는 것이었다. 많이 팔릴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의 존재를 안다면 기쁘게 구매할 독자들이 존재할 것이다. 나만큼 미란다를 좋아하고 궁금해할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전달하는 거다. 

책으로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을 다하고 싶지 않은 책은 만들지 않는다. 실제로 아주 가끔 책덕으로 기획서가 들어왔는데 좋은 책들이었지만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아 거절했었다. 혼자서 출판의 전 과정을 책임지며 일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내가 매료된 콘텐츠가 아니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책이 많이 팔리진 않더라도 꾸준히 조금씩 팔릴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수익이 들어오는 채널을 다각화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외주 편집 일을 맡아서 고정적인 지출과 생활비를 충당하느라 조금 힘들었지만 점차 출판을 하면서 숙련된 기술을 바탕으로 전자책을 제작하거나 글을 기고하거나 강의를 하는 등 다양한 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각 수익금은 소액이었지만 여러 채널에서 돈이 들어오니 그럭저럭 목숨을 연명할(?) 수준은

되었다.

그리고 블로그를 만들어 꾸준히 글을 쓰기로 했다. 책 만드는 이야기, 미란다 이야기, 편집 이야기 등등. 직접 출판하는 일을 중단하게 되더라도 글을 쓰고 기술을 익힌 것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궁지에 몰리면 그동안 익힌 잡기술로 취업이라도 할 수 있겠지. 이쯤이면 눈치챘겠지만 ‘출판사를 차렸다’기보다는 ‘출판하는 외주 노동자’가 처음에 정한 나의 정체성이었다. 다른 말로는 ‘출판하는 프리랜서’가 있다.


3. 아무 데나 팔지 않는다

팔 수 있는 곳이라면 무조건 책을 유통하고 파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판매하는 채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일도 많아진다는 뜻이다. 혼자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수 있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괜한 잡무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했다.

대형 서점과도 거래 조건이 맞는 곳에만 유통을 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전국의 지역 서점에 책을 뿌려 주는 도매상과는 거래를 하지 않기로 했다. 도매상 유통과 관련된 이야기는 뒤에서 나오겠지만 오래된 어음 관행 때문에 문제가 많고 반품률을 최대한 줄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지역 곳곳에서 분투하고 있는 서점 중 책덕의 책을 판매하고 싶어하는 곳이 있다면 직거래를 하기로 했다. 이런 서점들은 책덕의 독자층이 자주 가는 장소이기도 했다. 한 권을 팔더라도 서점 한구석에 의미 없이 꽂혀 먼지만 쌓이기보다는 살아 있는 책으로 대해 주는 서점으로 향할 수 있기를 바랐다.

상업 출판을 하면서 너무 순진한 생각일지 몰라도 나 하나쯤은 그런 방식을 시도해 봐도 되겠지. 이 모든 일은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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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 창업 함부로 하지 마라’ 한겨레 칼럼에서 발췌.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6990.html)


** 백 리스트란 연간 1,000부 이상 팔리는 책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판매량은 크지 않지만 오랫동안 꾸준하게 팔리는 책들을 가리킨다. 참고: <미디어 기업을 넘어 콘텐츠 기업으로>(성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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