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된 을의 자리에 익숙해지지 않는 방법
책을 판매하는 거래처가 많을수록 책이 팔릴 기회도 많아지니, 최대한 많은 거래처를 만드는 게 좋겠지만 두 번째 책이 나오기 전까지 대형 서점 중에는 두 군데하고만 거래를 했다. 어떤 출판사 대표님은 “한 군데라도 더 팔아야지.”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시도를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한 대형 서점과는 계약을 맺으려고 메일을 보냈는데 일방적으로 60%라는 공급률을 통보했다(정가가 10,000원인 책을 60%에 공급하면 서점에서 4,000원을
떼고 출판사에 6,000원을 준다는 뜻이다).
‘공급률이라는 것을 왜 마치 자기네가 정하면 끝인 것처럼 구는 걸까?’ 물론 내가 순진하게 그 이유를 정말 몰랐던 것은 아니다. 작은 출판사 입장에서 대형 서점은 갑이다. 판매의 상당한 부분이 대형 서점에 쏠려 있기 때문에 거래를 안 하면 손해인 것은 분명 출판사다. 서점은 내 책이 아니어도 팔 책이 한가득 있으니까.
하지만 저렇게 노골적으로 협상의 여지조차 보이지 않는 태도를 보니 회사의 ‘방침’이 어떤 것인지 이해가 갔다. 나는 그곳과 거래를 하지 않기로 했다. 어느 날, 출판 커뮤니티에 나와 비슷한 대우를 당한 한 출판사가 그곳과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글을 올렸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느니 ‘을이니 어쩔 수 없으니까 서러우면 잘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갑과 을’은 서류에 그렇게 쓰여 있다고 해서 갑과 을이 되는 건 아니다. 규모가 크든 작든 동등하게 협상하고자 하는 상대로서 서로를 대한다면 작다고 해도 갑질을 당한다는 기분은 느끼지 않아도 될 텐데, 안타깝게도 출판을 하면서 그런 기분을 느끼는 순간이 꽤 있었다. 출판사에 소속되어 일할 때도 그랬다. 오프라인 매장에 가서 책이 잘 진열되어 있는지, 담당 분야 서점원에게 독자들의 반응이나 의견을 구하기도 했는데 냉랭하거나 비웃기까지 하는 서점원을 만나면 내 책도 아니고 그저 편집자인데도 마치 강매를 하러 나온 호객꾼이 된 듯한 수치심을 느꼈다. 서점원들도 업무와 감정노동에 시달리기에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입맛이 너무나 썼다.
나만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나중에 다른 1인 출판사 대표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서점 미팅을 마치고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고 해서 위로를 받기도 했다.
다른 서점과는 이런 일이 있었다. 5월 초에 계약 신청을 하고 메일을 받았는데 담당자 메일로 다시 신청을 하라기에 다시 메일을 보냈는데 다른 담당자에게서 공급률은 60%(매절로 50부를 가져갈 경우에는 55%)라는 답변이 왔다. 공급률 조정이 가능한지 문의를 하니 기계가 보낸 것인지 전에 보냈던 메일이 그대로 다시 왔다. 그래서 다시 공급률 조정 문의를 하니 공급률이 고정되어 있다면서 공급률을 조정해야 하는 사유가 있느냐고 물어 왔다.
공급률을 ‘특별히’ 다르게 계약하려면 내부 별도 보고 및 품의를 진행해야 해서 시일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말이 뒤따랐다. 뭔가 내가 엄청 어렵고 힘든 일을 요청한다는 뉘앙스가 느껴져서 어쩔까 고민했지만 나름대로 다른 서점 공급률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적어 보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그 메일에 대한 답장은 오지 않았고 다시 한번 메일을 보냈더니 또 다른 담당자가 처음 보내 줬던 기계적인 계약 안내 글을 보냈다. 그때 체념을 했던 것인지, 한 군데라도 거래처를 늘리라는 조언에 넘어갔던 것인지 그냥 계약서를 보냈다. 그런데 한 달 뒤에 담당자가 바뀌었다며 신청서를 다시 작성하라는 연락이 왔다.
대체 이 회사는 담당자가 몇 번을 바뀌는 것인지 의아했으나 다시 계약서를 작성해 보냈다. 그리고 중간에 내가 간인을 빠뜨리는 등의 실수가 있어서 두 번 더 등기를 보냈다. 물론 등기료는 다 내가 부담했다. 그러다가 중간에 책 주문이 하나 들어와서 출고도 했지만 계약은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러고 약 20일 뒤에 사명이 변경되었다며 계약서를 다시 작성해 달라는 거 아닌가.
이때쯤 인내심이 바닥난 나는 기분이 무척 상했다. 자꾸만 나가는 등기료가 엄청나게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사유인 사명 변경은 서점 측의 사정이라고 판단해 가까운 편의점에서 착불로 서류를 보냈다. 그런데 바로 전화가 오더니 뭔가 또 잘못 보냈다면서 택배 말고 등기로 보내 달라는 말을 했다. 왜 등기로 보내야 하는지 이유를 물었지만 답은 없었고, 그 순간 나는 계약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미 출고된 책 한 부에 대한 책값을 받으려면 계약을 완료해야 한다기에 다 귀찮아진 나는 책값을 받지 않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기분이 후련하다기보다 찜찜했는데 더 찜찜한 선물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보냈던 계약서가 보냈던 그대로, 하지만 굉장히 구겨진 채로 착불로 돌아온 것이다. 서류를 받아 들고 한동안 뇌가 정지한 듯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지난 시간 동안 수없이 보냈던 잘못된 계약서가 다시 돌아온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메모장을 켰다.
지난 계약 과정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내가 왜 이 서류를 받아야 하는지 묻기 위한 글을 썼다. 처음에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서 욕이 더 많이 튀어나왔다. 며칠 동안 다듬고 다듬어서 장문의 메일을 보냈다. 그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사실 3개월에 걸친 계약 과정도 당사가 책이 한 권뿐인 신규 출판사라서 그런 것인지 원래 거래 과정이 그런 것인지 의문이 들었으나 저는 최대한 서로를 배려하는 쪽으로 거래를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계약서를 3번 보내면서 등기료를 부담한 내역을 보시면 충분히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계약서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서 대금을 지급하는 것도 지급할 의지가 있다면 회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번거로우실 것 같아 서로 최대한 배려하여 깔끔하게 거래를 완료하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토요일에 받은 착불 계약서는 귀사에서 실수를 하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약소한 출판사라고 해도 거래처 대 거래처로서 예의를 갖춰 주셨으면 합니다. 부디 유종의 미를 보여 주시길 바라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메일을 보낸 후 담당자에게서 사과 전화가 왔다.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으니 참 신기하다. 그때는 그냥 사과를 받았다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만난 모든 서점원들이 다 그렇지는 않았다. 초짜 1인 출판사 대표인 나의 이야기를 성의 있게 귀기울여 들어 주기도 하고 작은 규모의 출판사에 맞는 마케팅 방향을 조언해 주기도 했고 매장 관리 때문에 바쁠 텐데도 웃는 얼굴로 대응해 준 서점원도 있었다.
아마도 기업의 일방적인 운영 방향과 과중한 업무 때문에 영혼 없는 표정으로 미팅을 하는 직원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서점의 운영 방향이 출판사의 광고를 유도하고 많이 팔리는 책을 더 많이 노출해야 한다면 회사의 압박을 거스를 수 있는 직원이 얼마나 있을까. 내 책의 공급률을 60%로 고정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니까. 매일 쏟아지는 책들을 살펴보는 서점 MD들의 업무량이 매우 과중하다는 것도 잘
안다. 분명 그들도 퇴근하면 생기 넘치고 따뜻한 사람일 거라 의심치 않는다. 그저 서로를 함께 출판 시장을 키워 가는 동료나 파트너가 아니라 착취하는 것처럼 만드는 비합리적인 구조가 싫을 뿐이다. 왜 우리는 서로의 이익을 어떻게든 빼앗아야 되는 프레임에 갇혀 버렸을까? 우리 모두 좋은 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많이 판매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쌓이고 쌓여 굳어진 불공정한 관례를 답습하지 않겠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느껴지는 거래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직접 책을 만드는 이유는 ‘내 방식대로’ 책을 만들고 팔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만드는 것만큼이나 ‘파는 방식’도 내게는 중요했다.
겨우 책 한 권 낸 출판사가 버둥거려 봤자겠지만 계속 이 관행을 따른다면 부조리한 구조는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도 큰 기업의 시스템 속에 있었다면 어쩔 수 없이 사장이 하라는 대로 따랐겠지만 구멍가게여도 사장은 나였고 모든 것이 나의 결정이니까 시도쯤은 해 볼 수 있다.
책이 한 권밖에 안 나가는 날에는 다른 곳과도 거래를 틀 걸 그랬나 미련이 남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패기 넘칠 때 아니면 언제 시도해 보겠는가. 너무 사정이 나빠지면 나도 편법이라도 동원해 돈을 벌고 싶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뭐, 지금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으니 일단은 계란으로 바위를 쳐 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