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보다 더 떨리는 비싼 물가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부터 스위스는 궁금증과 두려움의 나라였다. 궁금증이란 사진으로만 봐왔던 그림같은 풍경에 대한 궁금증이었고 두려움은 멋진 풍경에 대한 값을 매기듯 비싼 물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돈을 아끼며 여행해야하는 처지인 터라 스위스에는 3박 4일을 일정으로 잡았고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하진 못했다. 그래서 스위스는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이기도 하다. (또 기회가 생긴다면 그 땐 여름에..)
스위스의 숙소는 인터라켄으로 잡았는데 역과의 거리가 걸어서 3분 밖에 안걸리고 나무로 된 집이어서 나무의 따뜻한 분위기가 주는 느낌이 좋았다. 숙소에서의 잊지 못할 경험이라면 전기포트에 석회 덩어리들이 붙어있던 것과 새벽에 무섭게 몰아치는 바람에 집이 흔들려서 잠결에 잠깐 깬 것 정도? 어떻게 바람에 집이 흔들릴 수 있냐고 물으신다면 겨울에 스위스 한번 가보시길. 그렇다고 우리가 쓰러질 듯한 숙소를 구한 것도 아니었다. 번듯한 숙소였는데 친구도 그날 새벽 집이 흔들리는 걸 느꼈고 주인도 어젯밤 바람이 셌는데 잘 잤냐고 물어보았다. 바람에 살짝 흔들려 깨긴 했지만 피곤과 푹신한 침대덕분에 항상 잠은 잘 잤었다.
그리고 전기포트의 석회는 컵라면을 먹기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모른채 하고 먹을 수 밖에. 그래도 컵라면은 맛있더라.
한국에서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해지던 터라 혹시 인종차별이 더 심해지진 않을까 항상 마음 한켠에 걱정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스위스는 내 걱정을 실현시켜 주었다. 지금 생각나는 것만해도 3번이니까, 한달 동안의 유럽여행에서 당한 인종차별의 절반은 전부 스위스에서였다. 첫날은 밤에 도착하고 Coop을 가려고 나간 길에 멀리서 보인 청년 2명이 우리보고 Corona! 하고 크게 외친적도 있었고, 두번 째 날엔 숙소 앞이 초등학교 였는데 아이들이 떼로 몰려와서 우리보고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자 인터뷰라면서 자기들끼리 웃으며 따라오던 기억이 난다. 세번 째는 루체른의 카펠교에서 였는데 인종차별로 흔한 '니하오' 를 실제로 한 남자 아이에게 듣게 되었다. 어린이들의 무지에서 나오는 인종차별은 별로 화는 나지 않지만 신경쓰이는 건 사실이다. 어쨌든 나와 친구는 그 날 일정을 실행하러 움직이러 가야만 했다.
특히 겨울의 스위스는 운이 중요한데 나는 그 운이 따라주지 못한 사람이었다. 마테호른을 꼭 보고싶다는 희망을 품고 수네가 전망대를 올랐지만 가시거리는 20m 정도도 되지 않았고 구름과 안개로 가득 찬 전망만 보일 뿐이었다. 블로그 후기에서 본 바로는 이 곳에 오면 바로 마테호른이 보인다던데... 친구와 나는 당황했고 우울한 기분을 품고 다시 내려가야 했다. 우리 말고도 몇몇 한국인들이 보였는데 한국인 빼고 다른 외국인들은 전부다 스키복에 스키나 보드를 손에 들고 있었고 머리엔 헬멧과 고글을 쓰고 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 기억은 미화되지 않고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스위스의 비싼 물가에 쫄아있는 우리는 한 번 쯤은 맛있는 것을 먹기로 하고 카펠교 주변에 있는 맛집이라는 곳에 찾아갔다. 보통 간단한 셀러드와 음료 한 잔, 또는 두 사람당 메인 요리 하나를 시켜 나눠먹고있는 모습들이 많았는데 나와 친구는 각자 먹고싶은 메인요리를 하나씩 시켜 배터지게 먹었다. 가격은 거의 10만원이 나왔지만 우리는 만족했고 남은 감자튀김까지 싸와서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어서 역으로 갔다.
알프스 산맥이 있는 스위스는 고도가 높은 산에도 산악 열차가 잘 되어있고 이동시에도 스위스패스를 이용해서 기차로 이동한 터라 힘들진 않았다. 그저 시간에 맞춰 플랫폼만 잘 구별하여 타면 되는 것이었다. 특히 뮤렌으로 가는 기차안에서의 풍경은 내가 본 설산중에 제일이었다.
인종차별과 떨리는 물가를 대신해 위로해 주는 듯한 풍경을 보면 용서가 되었고 감탄이 나왔다. 또한 친절하고 재밌는 사람도 만났다. 밖이 정말 춥다며 웃으며 간이 기차역 플랫폼으로 들어오신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누면서, 동양인들이 서양인들의 국적을 구분 못하듯, 서양인들도 동양인들의 국적을 구분 못해서 그렇다고 하는 얘기를 듣자 그들의 입장도 약간 이해가 가긴 했다. 베른에서 스키타러 오신 아주머니였는데 잠깐의 대화였지만 즐거웠고 우리의 남은 여행에 행운을 빌어주었다.
아, 다음에 스위스에 가면 패러글라이딩도 꼭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