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도 많고 예술도 많고
내가 찾아간 유럽의 첫 장소는 샤롤 드 골 공항이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있다는 프랑스답게 공항에서 일하는 분들의 인종도 다양했다. 내가 도착한 날짜는 1월 27일이었는데 그때는 한창 아시아 쪽에서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공항 입국 심사대와 더 심해질 인종차별의 걱정을 안고 입국 심사대로 갔으나 내 걱정과는 달리 1분도 안돼 내 여권에 시원하게 도장을 쾅 찍어주는 프랑스 공항 직원이었다.
9kg짜리 배낭을 어깨에 메고 9kg짜리 캐리어를 찾았으니 이젠 숙소 체크인을 해야 한다. 고속 열차인 RER C 선을 타면 된다고 애어비앤비 호스트가 말해 줬지만 RER C선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비행을 마치고 온 내 다리와 발은 퉁퉁 부어있었다. 그래서 찾기 쉬웠던 르버스를 타고 에펠탑 정류장에 내렸다. 공항 주변은 그다지 파리라는 느낌이 잘 들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항을 점점 벗어나니 주황빛 불빛과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창문에 가까이 다가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처음 보는 에펠탑과 개선문의 모습. 단지 사람 사는 아파트 건물마저도 다 예뻐 보였다. 친구와 우와를 연발하며 그렇게 비 오는 날 밤에, 우리는 파리에 도착했다.
르버스가 내려준 에펠탑 정류장은 숙소와 거리가 좀 있었다. 걸어서 30분이었나? 소매치기가 많다는 유럽, 특히 파리에서 나는 겁도 없이 손에 휴대폰을 든 채 지도를 켜서 숙소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달그닥 거리는 캐리어 바퀴들과 고르지 못한 도로, 나를 땅 속으로 파묻을 것 같은 배낭의 무게를 견디고 드디어 15구의 숙소 건물 앞에 도착했다. 호스트가 보내준 체크인 방법은 1). 입구 비밀번호를 누르고 2). 포스트박스 안에서 비밀번호가 걸린 열쇠 상자에서 열쇠를 꺼낸 뒤 3).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올라가서 4). 2번째 문을 열면 된다고 했다. 이렇게 글로 다시 써보니 처음 그때의 서툴던 기억이 생생히 생각난다.
도착한 첫날 나와 친구는 말 그대로 뻗었다. 짐을 풀고 부은 몸을 이끌고 정말 억지로 씻었다. 그리고 바로 잠에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일주일간 쓸 수 있는 교통카드인 나비고를 산 후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에 가서 사람들 속에 섞여 우리도 추억을 남겼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왜 그랬나 싶은 멍청한 일이 있었는데 나와 친구는 계획을 세울 때 파리에서 뮤지엄 패스를 쓰자고 했었지만 인천공항에서 유심을 갈아 끼우고 친구의 유심에 약간 문제가 있어 그걸 해결하느라 뮤지엄 패스를 깜빡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미술관이면 미술관, 박물관이면 박물관마다 또다시 입장료를 내고 긴 줄을 서서 들어간 것이다. 5만 원을 날려버린 멍청 비용이 발생했지만 여행의 설렘으로 그것은 기분 좋게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첫 번째로 간 곳은 피카소 미술관이었다. 피카소가 유명해질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 나라가 프랑스여서 일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을 내고서 구경을 마쳤다.
그리고 배가 고파져 맛있다는 식당을 찾아갔는데 그날따라 문이 닫혀 있었다. 알고 보니 준비 시간이었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근처의 수제 햄버거 집으로 갔다. Benedict라는 집이었는데 멋진 플레이팅과 맛으로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유럽에서의 첫 식당이고 코로나로 심해진 인종차별 때문에 내 음식에 장난하는 건 아니겠지 하며 내심 걱정했었는데 막상 음식을 받아보니 걱정은 커녕 맛도 좋고 양이 많아 남길 지경이었다.
여행의 묘미는 또 쇼핑 아니겠는가. 나는 파리의 아크네 스튜디오를 생각하며 한국에서부터 출발했다. 파리의 겨울은 낮엔 경량 패딩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밤이 되면 찬바람이 목을 타고 옷 속으로 들어와 나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나는 그 날로 바로 목도리를 사서 유럽 여행 내내 따뜻하게 잘 두르고 다녔다. 특히 머리카락이 긴 나에게는 바람이 많이 불 때 머리카락을 정리할 수 있는 일석 이조의 역할을 했다.
숙소에 들어와서는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무거웠던 주머니를 비운 후 또다시 짐 정리와 씻기, 그 날 찍었던 사진 정리가 남아있다. 피곤하지만 행복한 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