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진짜 끝!
작년 2월 볼더링을 하다가 아드레날린 과다로 탑 지점에서 점프하면서 팔다리를 부러뜨린 전설의 중년여자, 팔꿈치는 꽤 큰 부상(견열골절)을 입었고 발목은 (팔이 너무 아파서 부러진지도 몰랐음) 금이 좀 갔는데, 둘 다 못과 핀을 박아 고정하는 수술로 치료했다. 지난한 재활을 거쳐 회복은 성공적이었지만 발목의 핀은 1년 후에 제거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벌써 1년이 된 것이다.
회사 일로 압박이 심한 상태여서 내심 사흘간의 입원과 수술을 무슨 휴식처럼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무슨 학교에 불 나길 바라는 수험생 같은 유치한 생각인가 싶긴 하지만. 하여간 날짜에 맞춰 입원했다. 1년 전 사지 중 이지를 움직일 수 없는 중상 환자로 입원했던 때와는 딴판으로 병원 사정에 완전 빠삭한 베테랑 나일롱 환자는 입원하자마자 지시받은 피와 소변 검사, 씨티 촬영을 후다닥 마치고 침대에서 빈둥빈둥 시간을 보냈다. 맛없는 병원밥도 먹고 어영부영 회사 메일도 좀 보고 그러고 있다 보니 간호사가 와서 항생제 알레르기 검사를 했다. 그 사이에 천한 몸에 피부가 예민해져서 소독한 알코올 솜 문지른 자리에 붉게 발적이 올라와서 두 번 했어! 제기랄!! (팔에 항생제 반응을 보는 쪼맨한 주사 상당히 아픔;;)
수액을 맞기 전에는 진짜 보험금 타내려 입원한 나일롱 환자처럼 여유가 넘쳤는데(입원하면서 운동량 부족할 것 같아서 이동할 때는 계단 탔다) 수술할 발에다가 사인펜으로 표시도 해놓고 본격적인 환자가 된 것은 역시 저녁 후 링거를 맞기 시작했을 시점. 팔목 아래쪽으로 꽤 게이지가 큰 바늘을 꽂았는데 통증도 좀 세고 아주 조금만 움직여도 피가 역류하는 통에 초긴장한 상태로 밤을 보내야 했다. 수면제도 먹고 이번엔 보호자 집에 보내고 잠을 청했다. 자정부터 금식이라는 말을 들으니 그때부터 목 마르고 배고픈 거 알지?
약은 입면에는 도움이 되지만 중간에 깨는 건 도와주지 못하는 편이다. 새벽에 눈을 떠서 꽤 지루하게 시간을 보냈다. 집에 보냈던 남편은 수술 시간 한 시간 전에야 왔다. 이번에는 상지와 하지 한꺼번에 했던 작년과는 달리 척추 마취로 하반신만 마취한다고 했다. 전신마취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다섯 번이나 겪어서(투머치하군) 익숙한데 이렇게 일부분만 마취하는 건 생전 처음이라 좀 긴장해서 설마 깨운 상태로 수술하시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재워준다고 한다. (소리가 듣기 힘들 거라고) 나한테 제왕절개 할 때 경막외 마취 하지 않았냐고 물으셨는데 선생님, 제가 애 낳을 때 제왕절개는요... 전신마취 했어요....
예정된 시간에 맞춰 이동을 위한 남자 간호사가 도착해서 나를 이동용 침상에 태웠다. 1년 전과 또 딴판인 걸 느끼는 게 그땐 거동이 안 돼서 나를 들어서 옮겨주셨거든. 근데 이번엔 나보고 옮겨 타라고 하더라고;; 말똥말똥 천장을 보며 누워 있다가 이동 사인이 왔다. 그는 나를 3층의 수술실로 재빠르게 옮겨주었다.
수술실 안에서도 너무너무나 맨정신이고 또렷한 상태였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수술실은 춥다. 거의 맨몸뚱이인 채로 무방비하게 수술대에 누워 있기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겠다. 링거를 바꿔 끼우고 수술대에 팔을 묶고 손가락 끝에 심박 측정기를 끼우고, 이번에는 척추 주사가 먼져였다. 최대한 몸을 둥글게 구부리라고(대장 내시경 때 기분임) 한 후에 허리에 주사를 박았다. 주사는 생각보다 안 아프고(잘 못 느낌) 주사액이 들어갈 때 하반신이 따뜻해지는 게 느껴진다. 신기함;; 잠시 후에 차가운 소독솜을 몸의 이곳저곳에 대면서 닿는 건 느껴지지만 차갑지는 않지요? 하고 확인을 하는데 진짜 그렇다. 닿는 건 알겠는데 안 차가움. 아까보다 더 신기! 이제는 나를 재워주기 위한 주사를 하기 전에 말하더라. 중간에 깨면 얘기해달래. 네??
근데 진짜 완전히 끝나기 전에 깼다. 아무래도 수면 시간을 좀 칼같이 재는 듯. (수면마취한 수술에서 다 그랬음) 혹시 중간에 깬 건가 싶어서 다급하게 저 깼어요, 더 재워주세요. 하자 이제 다 끝났다면서 주사는 안 맞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뭔가 멍한 상태로 하반신을 바라보는데 핀을 제거한 왼 다리를 번쩍 들어올리는 것이 보였다. 근데 하나도 안 느껴지는 건 물론인데 더 이상한 감각이 뭐냐면, 내 다리는 원래 있던 위치에 있는 것 같은데 눈에 보이는 내 다리 위치는 번쩍 들려 있는 그런 거. 그니까 인식하고 있는 다리랑 보이는 다리 두 다리가 따로 있는 감각이;; 기묘하다.
다시 돌돌돌 실려서 바로 내 병실로 이동했다. 이상하게 잠이 깼는데 다시 잠이 오는 가운데 한 시간 동안은 자면 안 된다고 계속 남편이 날 깨웠다. 마취 깰 때 깨워야 하는 건 전신마취 때뿐인 줄 알았는데 척추 마취도 똑같더라고. 진짜 자고 싶었는데 ㅠ ㅠ 징그럽게 한 시간을 버텼다. 그 뒤로는 저릿저릿한 하반신의 마취가 풀리기를 기다리며 누워 있었다. 그... 내가 인식한 다리 위치랑 실제 다리 위치가 다른 현상이 그 뒤로 3시간 정도 지속됐다. 수술하지 않은 오른쪽 다리의 마취는 훨씬 빨리 풀려서 움직이고 위화감이 없는데 왼 다리는 한참 동안 너 거기 있니 나 여기 있다 상태로 유지되었다.
수술 부위는 두껍게 붕대를 감아놓았고 생각보다는 안 아팠다. 무통을 신청하지 않았는데 잘한 것 같았다. 조금 욱신거릴 때가 있었지만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다리만 이슈라면 그렇게 부자유스럽지 않을 정도로 마취 풀리고는 내 발로 화장실도 (다리를 질질 끌면서) 가고. 근데 입원 기간 내내 진짜 힘들었던 건 링거였다. 아주 조금만 움직여도 역류해버리니까 짜증이;;
밤에는 수면제를 먹지 말라고 하더라. 마취를 했었기 때문에 또 수면제를 먹는 건 권장하지 않는다고. 대신 진통제를 놔줬다. 그리고 생각보다 잘 자고 퇴원 날을 맞았다. 주치의가 비번이라 소독만 받고 퇴원했는데 소독하러 오신 간호사님이 작년에 처치실에서 뵀던 그분이라 내적 반가움 느낌. 깁슈를 신으라는 처방이 나왔는데 회복하고 나서 곧바로 그 징글징글한 물건을 병원에 내던지고 나왔기 때문에 없어서 새로 사야 했다. 그거 진짜 무겁고 불편한데 안 신으면 안 되냐고 애처럼 징징거리자 간호사님이 신제품이 훨씬 덜 무겁다면서 가서 찾아오심. 오, 신제품 진짜 한결 가볍습니다!
깁슈 신고 옷 갈아입고 내가 걸어서 원무과에서 계산도 하고 잘 퇴원했다.
연휴 후에 소독하러 외래 가야 하는데 경과는 놀랄 만큼 좋다. 오히려 깁슈 때문에 걷는 게 불편할 정도로 깁슈 해제하면 딛을 때 아픔도 거의 없음. 혹시 해서 예전에 버리지 않았던 목발 한 짝을 짚고 퇴원했는데 저거 다시 처박아놔도 되겠다.
인터넷 검색에 의하면 의사에 따라 핀 제거는 하라는 사람도 있고 문제 없으면 안 해도 된다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나 같은 경우 상지에 박은 대빵 큰 못은 평생 가지고 있으라고 하지만 하지의 이 핀은 제거하라고 했다. 핀 때문에 오히려 뼈가 약화되어 부실해질 위험이 있다고 한다. 그것도 완전히 노인인 경우에는 굳이 빼지 않는 듯하지만. 어쨌든 나는 이제 골절의 흔적을 발목에서는 빼냈다.
2주 후에는 실밥을 빼고 정상적인 모든 활동이 가능해진다. 일단 지금은 목욕탕이나 수영장 등을 갈 수 없는 상태라 살이 뒤룩뒤룩 찌는 중이다.
20일쯤 후에 해외 출장이 있어서 그때까지 보행에 문제가 있을까 걱정했는데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는 듯하다. 내년엔 입원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입원하면서 먹던 약을 지퍼백에 싹 정리해 가져가는 이 프로 환자는 한동안 입원계에서 은퇴를 원합니다.
골절 조심하십쇼.
골절 전의 운동 능력을 되찾기 위해서 진짜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절과 무관하게 퇴행성 질환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내가 한 일 중 참 잘한 일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