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콤플렉스와 싸우는 일생의 고백
어렸을 때에 나는 제법 똘똘한 여자애였지만 예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다.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일찌감치 아주 두꺼운 안경을 썼고, 코 밑에는 꽤나 시선을 모으는 점이 하나 있었다. 몸집은 왜소하고 키도 작았다. 중고등학생 시기를 지나면서도 나는 '인기 있는 여자애' 라인에는 들어가본 적이 없었다. 그때 그 용어를 쓰진 않았지만 오타쿠 기질이 다분했던 나는 학교에서 튀고 싶지만 튈 만한 데가 별로 없는 잠재 관종으로서 평범하게 지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첫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내 눈에는 너무너무 잘생긴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을 때의 희열은 말도 못한다. 어쩌면 깊은 내면에서 난 예쁘지 않은데 날 좋아해준다니! 하며 그애에게 감사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연애도 했다. 아주 추물은 아니라는 인정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안경을 벗고 렌즈를 꼈고 점을 뺐다. 내가 보기에도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 우리 과에는 탤런트 이영애를 닮은 아주 예쁜 아이가 있었다. 걔에 비하면 난 오징어 같았다. 1학년 봄에 첫사랑에게서 대차게 차인 후에 같은 과의 못생긴 친구랑 사귀었다. 그때 난 그 친구가 나를 예뻐서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린 굉장히 취향이 맞는 정말 친한 친구였고, 우정이 사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청춘영화 같은 생각을 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사랑이 되지 못하고 우정만 망가뜨린 채로 1달 연애 끝에 깨졌다.
그후로 나는 최대한 많은 소개팅을 하고 다녔다. 연애의 알콩달콩함을 즐기고 싶은 마음과, 연애에 대해 시니컬해진 마음이 내 내부에서 충돌하는 통에 소개팅은 일종의 게임 같았고 실험 비슷한 거였다. 중간중간 친구나 선배라는 이름으로 나타나 내게 호의를 베푼 남성들이 있었지만 나는 엄청 순수한 새럼으로서 그들이 내게 우정을 말하고 있으니 우정이겠지, 했을 뿐이다.
2학년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를 다시 시작했다. 남편은 (전술한) 우리 과에서 제일 예쁜 애와 나갔던 미팅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는 아부하는 느낌 없이 내가 그녀보다 예뻤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좀 감동했다.
아이러브스쿨인가 어쨌든 인터넷의 붐을 타고 국민학교 동창들을 만난 자리였던가, 거기서 난 기억도 못하는 동창이 내게 '성형수술을 했느냐'고 물었다. 점 뺀 것도 수술이면 수술이지;; 당황해서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기억 안 난다. 대충 예뻐졌다는 의미겠지 싶다.
졸업하고 회사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예쁘다는 의미의 말을 주변에서 듣기 시작했다. 내게는 매우 낯선 일이었다. 원래 진짜 예쁜 애들은 어려서부터 그런 말을 들어서 동요하지 않을 텐데 나는 그런 소리를 처음 듣다 보니 들을 때마다 '진짜? 내가?' 하며 남몰래 감격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반신반의했다. 스물일곱 살 때 길거리 캐스팅을 제안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에도 헐 나한테 이런 일이! 하며 엄청 들뜨고 놀랐다.
...주절주절이 길었는데
만화를 좋아하는 나는 항상 주인공들의 아름다움에 혹했다.
아름답고 싶었다. 내면의 아름다움도 좋긴 한데, 일단 외면의 아름다움이 갖고 싶었다.
사람들을 직관적으로 매료해서 인기를 끌고 싶었다.
내 안에서만 비대한 가엾은 내 자아를 어떤 식으로든 증명하고 싶었다.
그게 사실이다.
아이를 가지고 임신해서 25킬로그램이 찌고 이목구비가 살에 파묻혔을 때 마치 나를 잃은 듯 절망스러웠고, 남들의 시선이 날 비웃는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한약을 먹어서 체중을 감량하기도 했다. 아이 엄마 같지 않다는 소리나 그 나이로 안 보인다는 말이 뛸듯이 기뻤다. 나의 흰 피부가 자랑스러웠다. 남들과는 다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낼모레 50이 된 지금, 거울 안에 있는 나는 공평한 세월을 잘 반영하고 있다.
자랑스러워하던 흰 피부는 칙칙해지고 잡티가 생겼으며, 미간과 눈가에는 선명한 주름이 생겼다. 복부에는 정확하게 1.5킬로그램 정도의 튜브가 생겼고 머리카락은 흰 것이 드문드문 섞였다. 표정에 따라서 얼굴의 피부가 한 지점에 모여서 우스꽝스러워지기도 한다. 빈말로라도 이제는 '예쁜 여자'라는 소리를 듣지는 못하게 되었다. 단 몇 달 전의 사진만 봐도 내 모습이 (지금에 비해) 너무 예뻐 보여서 깜짝 놀란다. 특히 올해에는 살이 야금야금 붙어서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빠지지 않고 있는데, 나 혼자 아는 이 미묘한 변화는 20년 넘게 입었던 옷을 못 입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시간이 빨리감기를 한 것처럼 흘러서 나를 내던지고 가버린다. 과거의 나도 후루룩 말아서 옆구리에 끼고 달려가버렸다. 좀 야속하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소중함을 알았다.
예쁨의 덧없음과 함께 '지금의 예쁨'을 알게 되었다.
시간은 계속 그따위로 갈 거라서, 나는 앞으로를 볼 때 지금 가장 젊고 예쁘다.
그러니까 바로 지금 사진도 많이 찍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뻔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오늘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에 참 좋은 나이가 되었다.
주름이 생기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박장대소하면서 살 테다.
그래도 선크림은 잊지 않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