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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Aug 02. 2016

만나고픈 사람이 있다면

그 별은 유난히 반짝이겠지

낯선 집에서 조심스럽게 여는 아침도 두 번째, 다시 뉴욕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톨비를 절약하기 위해 다른 루트를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6.5불만 절감했을 뿐, 뉴욕 시내로 들어가는 세 개의 다리 및 터널은 다 얄짤없이 15불을 받는다. 이쯤되면 졌다는 느낌이 들 뿐.... 이지패스 진작 달 걸 그랬다. 우리처럼 뉴욕 바깥에 숙소를 정하고 차로 여행하실 분들은 이지패스 다셔도 되겠어요... 사흘 동안 뉴욕 입성에 꼬박꼬박 15불을 바쳤다.
 
두 번째 날에도 하루 예약한 주차장에 차를 댔다. 웃긴 것이, 뉴욕은 샌 프란시스코보다 싼 주차장을 찾을 수가... 있다!! 물론 비싼 곳도 많지만, 일단은 주차장 영업을 하는 곳이 많아서 경쟁이 존재한다. 좁은 공간 때문에 기계주차를 많이 활용하는데, 사실 차를 애지중지하는 사람들은 무서워서 선택 못하는 그 기계주차... 하지만 우린 합니다! 차가 싸니까! 또한 장소가 협소한 까닭에 발렛 주차가 대부분인데, 이 발렛 주차라는 말을 들으면 또 우리 같은 외국인 서민은 당황하고 마는 것이다. 티... 팁은요?? 관례적으로 직원이 몰고 나온 차를 받을 때 지불하는데, 지금까지는 이상하게 팁을 건넬 타이밍이 이상해서 한 번도 준 적이 없었다;; (어쩌다 보니 나올 때는 직접 꺼낸다든가, 직원이 바람처럼 내려서 사라져버린다든가..) 이 발렛 주차 팁은 사실은 차값에 비례해서 주면 된다고도 한다. 최소 2불 정도 권장이라고. 차값에 비례해서....라면 우리는 안 줘도 그렇게 미안하지 않겠다.
 
어쨌든 차를 주차한 후에 생각보다 먼 거리를 걸어서 지하철을 탔다. 이 날의 목적지는 무려 THE MET! 뉴욕의 자랑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다. 사실 명칭은 뮤지엄 오브 아트이기 때문에 박물관이라고 불러야 할지 미술관이라고 불러야 할지 살짝 갈등되지만, 보고 나서 느낀 건 단연 미술관. 일단 들어가기 전에 좀 요기를 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할랄 푸드트럭에서 사먹어봤는데, 양고기를 매우 사랑하는 나는 양고기를 얹은 볶음밥을 주문했고 남편은 항상 일편단심인 핫도그를 시켰다. 미술관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길거리 식사치고는 상당히 우아한 식사를 마친 후에 메트에 입장했다. 입장할 때엔 날짜가 박힌 스티커를 옷에 붙여주는데, 재입장도 가능하다. 아들은 뭔가 좀 많이 배웠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 음성 해설기도 대여해서 줬다. 그리고 관람 시작. 가장 먼저 보기 시작한 곳은 이집트 전시실이었는데, 다양한 유물들을 보면서 내가 했던 생각은 "야무지게도 챙겼네" 심지어 신전 전체를 통째로 가져온 것도 있다.

바로 ‘덴두르 신전’인데, 모형 그런 거 아니다. 미국과 서구 나라들이 이집트의 댐 건설 때문에 물에 잠길 뻔한 문화재를 구출한 적이 있는데, 이집트가 느~무 고맙다면서 통째로 줘서 통째로 가져다놓은 물건이다. 이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가 어째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 까닭은 내가 미사일 놔! 하면 네~ 하고 갖다놓는 식민지에 사는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

많이 걸어다닐 체력이 별로라서 틈만 나면 앉아서 미술품을 감상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일단은 전날에 본 박물관에서처럼 이 압도적인 규모와 소장품의 다양함과 양에 부러움을 느꼈다. 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위엄은 진정 이런 곳에서 나온다. 시골의 도서관과 대도시의 미술관에서. 결국 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만족할 만큼 다 보는 데에 실패했다. 내 생각으로 3분의 1 정도나 본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해프닝은 중세 전시실에서 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옆에 와서 앉았던 동양 남자 관람객이 엄청난 냄새가 나는 방귀를 뀌더니 매우 그럴 듯한 카메라를 조작하며 진지하게 미술품을 노려보면서 일어나 떠났던 일이다. 그냥 앉아 있으면 내가 범인이 될 것 같은 심각한 냄새여서 귀찮은데 자리를 옮겨야 했다!


THE MET는 센트럴파크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그 다음 바로 센트럴파크로 이동했다. 여기에선 간식으로 노점 와플을 먹었다. 젊은 총각들이 하는 가게였는데 되게 비싸고(와플 하나에 10불 넘음;;) 인기가 많았다. 큰맘 먹고 두 개를 주문하고 내 카드를 긁었는데, 생각해보니 지하철역에서 결제가 안 된 후 처음 긁은 거였다. 계산을 무사히 한 걸 보니 별 문제 없나 보다 하고 와플 두 개를 셋이서 야무지게 나눠 먹었다. 살인적인 가격이었기 때문에 만약 맛이 없었으면 쌍욕이 나올 참이었는데, 쫀득하면서도 불맛 나는 캐러멜 맛 바삭한 겉면에 맛있는 크림과 아이스크림이 아주 조화롭고 맛이 있어서 마음이 평화로웠다. 남편은 낮잠도 잤고, 나도 하여간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했다. 토요일인 탓도 있어서 정말 많은 뉴욕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화장실 너무 귀하더라고.

 
이 날은 저녁에 첫 회사 동기였던 O오빠와 만나기로 한 날이라 오빠가 문자나 전화를 보내오기를 기다렸다. 오빠네 가족과 사흘 동안 좀 한적한 곳 캐빈에 다녀오는 날이라 시간을 딱 정하기 힘들다고 하더니 5시쯤이 되어서야 연락이 왔다. 남편과 아들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가기로 했고, 나는 혼자 센트럴파크 앞으로 오기로 한 오빠를 기다렸다. 집이 브루클린이니까 한 시간은 족히 넘게 걸리겠지 하며 그 귀한 화장실 앞에서 느긋하게 줄도 서면서 기다렸는데 화장실 앞에서 오빠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만나기로 한 출구까지 열라 달렸다. 15년 만이었다. 변한 게 없는 오빠는 멋진 SUV를 몰고 왔는데 뒷좌석에는 3살짜리 딸을 위한 카시트가 앙증맞게 달려 있었다.
 
캠퍼스 커플로 오래 사귄 여자친구가 뉴욕에서 유학이 길어지자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고 무작정 건너왔던 그때를 떠올리며 오빠는 “사랑에 눈이 멀었지.”라고 말했다. 미남은 아니지만 명석하고 진중하고 항상 믿음직한 오빠는 미국에 온 후에 맨땅에 헤딩해서 전공과 무관한 회계사 자격을 땄고, 지금은 그 여자친구와의 사이에 두 아이를 두고 전문직으로 잘 살고 있다. 브루클린에서 새로 집을 막 샀는데, 192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여서 지금 한창 리모델링 중이라고 한다. 오빠는 오늘은 토요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교통사정이 좋다면서 나를 차에 태우고 브루클린으로 갔다. 집 근처는 아니고 브루클린에서도 약간 하이한 동네라면서. 브루클린 브릿지 파크의 위쪽 쯤인 공간에 벤치가 놓여 있는데 전망이 끝내줬다. 멀리서 왔다고 사준 디너도 맛있었다. 염치불구하고 부드러운 까라말리 튀김과 연어 리조토, 소프트크랩 요리를 얻어먹고 15년치 수다를 떨었다. 시간은 사기치는 것처럼 빨리 날아갔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까지 오빠가 다시 날 데려다줬고, 거기에서 가족이 다시 재회했다.


다시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시절을 함께 겪었던 우리는 영원히 동기다. 오빠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조금 용기도 필요했고,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는 살짝 골치도 아팠지만 결국 참 좋았다. 우리가 지금보다 더 행복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오빠와 작별했다. 이 나이가 되면 반드시 다시 만날 수는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마지막처럼 헤어지는 건 쓸쓸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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