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목초 한우 12

제 11장 근대화와 비육 중심 축산

제 11장 근대화와 비육 중심 축산

한우 개량과 비육 정책의 시작 (1960년대 이후)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 축산 정책의 중심은 한우 개량과 비육(肥育)에 맞추어졌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한우는 주로 역용소(일소)로 쓰였으나, 1960년대부터 정부는 한우를 고깃소로 전환하는 정책을 본격화하였다. 1963년 제정된 축산법은 한우 개량 방향을 농경에 쓰는 역용소에서 육용우(肉用牛), 즉 고기 생산 중심으로 수정하였다. 이는 해방 직후 한우가 재래종 그대로의 작은 체구를 유지했던 모습에서 벗어나, 체중과 육량을 늘려 고기 생산량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 획기적인 전환이었다.

정부는 한우 개량과 비육을 위해 다양한 사업과 지침을 도입했다. 1960년 농림부 주도로 한우개량협의회가 개최되고, 1962년 농협중앙회에 가축인공수정소를 설치하여 우량 정액을 공급하는 체계를 갖추는 등 현대적인 번식 기술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1964년에는 일제강점기에 제정되었던 한우 심사표준을 개정하여 미래 개량방향에 맞게 체중과 체형 위주로 한우 심사 기준을 정비하였고, 1967년 한우개량협의회에서 “한우를 역용에서 육용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공식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정책 아래 한우의 품종 개량 기준은 자연스럽게 체중과 육량 중심으로 설정되었으며, 보다 큰 체격과 많은 고기 생산량을 갖춘 개체 선발이 장려되었다. 이를 위해 우량 종축(種畜)의 선정과 관리가 강화되고, 농가에는 고급 육우 사양 관리법이 보급되었다. 1969년에는 한국종축개량협회가 설립되어 가축 등록제와 계통 번식을 체계화하였고, 같은 해 전국 한우 챔피언 대회가 처음 열려 우수한 한우를 선발·시상함으로써 농가들의 개량 의욕을 고취시켰다. 이처럼 정부 주도의 농가 지도와 홍보를 통해 농민들은 한우 비육 기술을 습득하고, 사료 급여량 증대사양 관리 개선 등을 실천하도록 독려되었다.

이러한 개량 정책의 결과 한우의 평균 체중은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예컨대, 1974년 조사에서 18개월령 한우 수소의 평균 체중은 약 290㎏이었으나 1980년 331㎏, 1989년 419㎏으로 꾸준히 늘었고, 1990년대 후반에는 500㎏을 넘어서게 된다. 이는 광복 직후 다 자란 큰 수소가 220㎏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향상으로, 한우가 70년간 2.7배 이상 몸집이 커진 고깃소로 변모한 셈이다. 정부는 1980년대 이후에도 한우 18개월령 비거세우의 목표 체중을 높이는 등(2020년까지 594㎏ 목표) 지속적으로 육량 증대를 국가 개량목표로 설정하였다. 이러한 정책 기조 하에서 한우 산업은 “많이 먹여 많이 크게 키우는” 비육 중심의 생산체계로 재편되었다.

특히 1980년대 초 외국산 육용우 도입 정책으로 11만여 두의 해외 품종 소가 도입되어 한우와 교잡 교배가 시도되기도 했는데, 이 또한 한우의 체격과 산육량을 단기간에 향상시키려는 정책의 일환이었다. 비록 이 외래육우 도입 정책은 과잉 생산과 가격 폭락으로 실패로 끝나 1990년대에 철회되었지만, 전반적으로 1960~90년대 한우 개량 정책은 순수 한우의 선발육종외래품종과의 교잡 실험을 병행하며 한우를 대형 육우로 만들고자 한 시기였다.

1992년에는 쇠고기 등급제가 시행되어 소비자의 질적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그동안 육량 위주였던 개량 방향이 육량과 육질(마블링)을 겸중하도록 전환되는 계기도 마련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전까지는 일관되게 증체율도체중량육량 지표가 한우 개량의 핵심 기준이었으며, 이는 정책적으로 전국 농가에 강조·지도된 사항이었다.

요컨대, 1960년대 이후 농림부 주도로 펼쳐진 한우 개량 및 비육 정책은 종축의 체계적 개량, 체중·육량 위주의 선발 기준 확립, 농가에 대한 사양관리 지도로 요약된다. 정부와 연구기관은 한우를 산업화 시대에 맞는 고능력 품종으로 바꾸기 위해 인공수정과 같은 과학기술을 도입하고, 한우 개체의 육질보다는 육중한 체격과 산육량을 우선시하는 육종 목표를 설정하였다. 이러한 근대화 정책은 이후 제주를 포함한 전국 각지의 한우 사육 형태를 변화시키는 토대가 되었다.

제주도 한우 정책 도입과 사육 방식의 변화

정부의 한우 개량·비육 정책은 제주도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제주 지역에서도 중앙 정부의 지침에 따라 한우 개량 사업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제주도는 지리적 특성상 본토(육지)와 떨어져 있었지만, 축산 근대화의 흐름은 제주 한우 산업에도 파급되었다. 우선, 개량된 육종 자원(종자소) 도입이 이루어졌다. 과거부터 육지와 교류가 드물었던 제주 한우는 자체적인 혈통을 유지해왔으나, 1960년대 이후 정부는 제주 한우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본토의 우수 종우(種牛)나 정액을 제주에 공급하였다. 제주도 축산당국과 축협을 통해 한우 인공수정 기술이 보급되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한우 개량단지종축장이 설립·지정되었다. 1970년대 말 정부가 전국에 지정한 8개 한우개량단지 중 제주도에도 한 곳이 설치되어, 제주 암소들의 계통번식 프로그램이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제주에서도 우량 송아지 생산계획 교배를 통한 개량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충남 서산에 중앙 한우개량사업소가 세워져 전국에 개량 씨수소 정액을 공급하였고, 제주도 또한 이러한 국가 개량망에 포함되어 우량 유전자를 지속적으로 도입받았다. 그 결과 제주 한우의 평균 체중과 성장속도도 정책 시행 이전보다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사육 기술의 보급 측면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전통적으로 제주에서는 소를 마을 공동목장이나 들판에 방목하여 키우는 관행이 일반적이었다. 농가에서는 자연풀과 농산부산물로 사육하고 외부 사료 투입은 최소화해왔다. 그러나 비육 중심 정책에 따라 사료 급여량을 늘리고 축사 내에서 사육하는 기술이 도입되었다. 정부와 제주도 농업기술원, 축산기관 등은 농민들을 대상으로 집약 사육법을 교육하고 권장하였다.

예컨대, 풀 위주의 사양에서 벗어나 옥수수, 대두박, 수입 건초 등 배합사료를 활용하여 단기간에 체중을 불리는 비육법이 안내되었다. 또한 가축 위생관리질병 예방 등 현대 축산기술도 전파되어, 전통 방목 상태에서 놓치기 쉬웠던 질병 통제가 강화되었다. 이러한 기술 보급은 제주 농가의 한우 사육 방식에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와, 과학적 사양관리영양 공급 극대화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특히 시설 축산의 유도는 제주 한우 사육의 양상을 크게 바꾸었다. 1970~80년대에 정부는 축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전국적으로 축사 시설 현대화규모화를 추진하였다. 제주도 역시 이 영향으로, 전통 초지 방목 위주의 목축에서 축사 사육으로의 전환이 장려되었다.

제주도의 기후가 온화하여 연중 방목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정책 입안자들은 관리된 환경에서 일정한 영양을 투입하는 체계를 선호했다. 이에 따라 제주 농가들에게 축사 신축이나 개보수 자금이 지원되고, 마을 단위로 공동 우사를 마련하는 사업 등이 이루어졌다. 점차 많은 제주 한우 농가들이 소를 우리 안에 가두어 기르기 시작했고, 풀을 뜯기던 들판의 소들은 건물 안에서 사료를 먹고 비육되는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력 절감집중 비육이라는 이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제주 고유의 목축 풍경과 자연순환적인 사육방식의 퇴조를 의미하기도 했다.

제주에서의 한우 근대화 정책 도입 과정은 종축의 도입사육기술 보급시설축산 전환 순으로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앙정부와 제주도 당국은 우수 한우 자원을 제주에 유입시키고, 농가들에게 현대식 축산기법을 교육하면서, 자칫 낙후될 수 있었던 제주 한우 산업을 전국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하였다. 그 결과 제주 한우의 산육 성적은 향상되었고, 생산체계도 전국 표준에 부합하도록 재편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제주 특유의 사육환경과 기존 토종 한우의 처지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는 과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주 재래소 생태와 방목 축산의 충돌

한우 산업의 근대화는 제주 고유의 목축 생태와 여러 측면에서 충돌을 일으켰다. 먼저 자연생태 및 환경 조건의 차이를 들 수 있다. 제주도는 화산섬으로서 초지가 비교적 척박하고 경지가 한정적이다. 과거 제주 재래소(토종 한우)들은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여 소식(小食)·다산(茶山)의 생태를 이루었다.

즉, 넉넉지 않은 풀과 농부산물로도 견디며, 광활한 방목지보다는 돌담을 두른 작은 초지나 산간에서 풀을 뜯으며 성장하는 습성을 지녔다. 그러나 본토 기준의 비육 중심 모델은 집약적 사료 투입을 전제로 한다. 육지의 비옥한 평야 지대처럼 양질의 사료작물을 재배하기 어려운 제주에서는, 이러한 모델을 적용하는 데 애로가 있었다. 제주 농가들이 충분한 조사료와 농후사료를 자급하지 못하면서, 사료 자급률 저하 문제가 대두되었다.

실제로 근대화 이후 제주 축산농가는 상당 부분 외지에서 사료를 반입하는 구조에 의존하게 되었다. 산악지대가 대부분인 제주에서는 사료용 옥수수나 목초 재배지가 부족하여, 한우 비육에 필요한 건초와 곡물 사료를 본토에서 들여오거나 수입에 의존해야 했던 것이다. 이는 생산비 상승으로 이어져 농가 부담을 늘렸고, 섬 지역 특유의 자급적 목축 생태가 흔들리는 결과를 낳았다. 다시 말해, 제주 자연환경에 맞추어 적은 자원으로 키우던 토종 축산외부 자원 투입을 전제로 한 근대 축산 사이에 불균형이 발생한 것이다.

방목 기반 전통 축산시설 집약 축산의 차이도 큰 충돌 지점이었다. 제주 재래 목축은 오랫동안 방목을 통해 소를 키워왔다. 마을마다 협동으로 초지를 관리하거나, 마을 공동 목장(방목지)에 소들을 놓아 기르는 문화가 있었다. 소들은 자연 속에서 다양한 풀과 나무를 먹으며 천천히 자랐고, 농번기에는 밭을 갈거나 운송을 도와주는 역할도 겸했다.

이러한 자연순환형 목축에서는 소의 배설물이 다시 초지의 비료가 되고, 인위적 시설 없이도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순기능이 있었다. 그러나 근대적 비육 모델은 소를 축사에 가두고 단기간에 살을 찌우는 것을 중시했다. 제주에서도 축사 사육이 늘면서, 좁은 공간에 밀집된 소들이 배출하는 분뇨가 환경 문제로 떠올랐다. 방목에서는 자연 분해되던 분뇨가 시설 사육에서는 폐수와 악취 문제를 일으켜 처리 비용이 들고, 이는 농가 경영에 새로운 부담을 추가했다.

또한 소들의 생활공간이 자연에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바뀌면서 질병 양상이 달라지고 복지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다. 따라서 전통과 현대 사육법의 충돌은 제주 농촌 사회에 단지 문화적 갈등뿐만 아니라 환경·위생적인 도전을도 안겨주었다.

가장 큰 충돌은 한우 품질 기준과 가치관의 차이에서 나타났다. 과거 제주인들은 자신들의 토종소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제주 재래 한우는 비록 몸집은 작아도 강인한 체질과 뛰어난 맛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실제로 역사 기록을 보면 “제주흑우(濟州黑牛)는 고려시대 이래 임금의 진상품이자 제향품으로 쓰일 만큼 고기 맛이 좋았다”는 언급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정해진 한우 고급육의 기준은 제주 토종 한우에게 불리한 것이었다.

전국적으로 도입된 쇠고기 등급제는 고기의 육질, 특히 지방 마블링 함량과 근내지방도 등을 중요한 평가 요소로 삼았다. 본토의 개량 한우는 비육을 통해 지방을 잘 축적하도록 개량되었지만, 제주 재래소는 본래 육질이 담백하고 지방이 적은 편이었다. 이는 전통 관점에서는 담백한 풍미로 평가받을 수 있으나, 근대적 등급 기준에서는 낮은 등급을 받는 요인이 되었다. 실제로 제주흑우 고기는 불포화지방산이 높고 씹는 맛이 좋지만 마블링(근내지방)이 적어 현행 등급제로는 1등급 이상 받기 어렵다고 평가된다. 이처럼 품질 기준의 변화는 제주 토종 한우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고, 제주 농가가 기르는 소는 같은 중량의 본토 한우보다 낮은 가격을 받는 현상이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도축 체중과 성장 속도 면에서도 기준 차이가 있었다. 현대 육종된 한우는 30개월 전후에 700㎏ 내외까지 크게 키워 출하하지만, 제주 토종소는 3년(36개월) 가까이 키워도 600㎏ 남짓에 불과하여 출하체중이 적고 성장기간이 길다. 결국 제주소는 경제성 지표에서 본토 한우에 밀리게 되었고, “작고 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농가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이는 제주 한우의 전통적 우수성에 대한 사회적 평가 절하로 이어졌고, 제주 사람들조차 토종 제주소 대신 개량 황소(육지계 한우)를 선호하는 인식 변화가 나타났다.

정리하면, 1960~90년대 한우 산업 근대화는 제주의 토종 소 생태와 전통 축산 방식에 구조적인 충돌을 일으켰다. 제주 자연환경과 자원 조건, 방목을 기반으로 한 오랜 목축 문화, 그리고 토종 소의 고유한 품질 특성 등이 근대 육성 시스템과 조우하며 여러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사료자원의 부족환경부하 증가, 전통 가치의 왜곡경제 논리의 압도 등이 그것으로, 이는 뒤에 제주 한우의 정체성 문제로까지 연결되는 갈등의 배경이 되었다.

제주 한우의 ‘정체성 희미화’와 한우 통일화

근대화 시대를 거치며 제주 한우의 정체성은 크게 희미해졌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외래종과의 혼혈 및 유전적 변형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1970년대에 정부는 한우 개량을 위해 샤롤레(샤로레) 품종과의 교잡을 실험했고, 1980년대 초에는 한우 개체수를 빠르게 늘리고 육량을 증대하고자 수입 육용우들을 도입하여 교배를 시도했다.

제주 지역에서도 이러한 교잡 정책의 영향이 미쳤다. 비록 섬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대규모 외래종 사육이 제한적이었지만, 일부 농가들은 더 큰 송아지를 얻고자 수입 종우의 정액으로 인공수정을 하거나, 육지에서 들여온 개선종 황소와 제주 암소를 교배하였다. 그 결과, 제주 토종 한우의 혈통 순수성이 점차 약화되어 갔다. 세대가 지날수록 제주 토박이 소의 혈통에 외래 유전자가 스며들었고, 겉모습에서도 예전의 특징과 다른 황갈색 대형 소들이 늘어났다. 과거 제주 재래 한우를 대표하던 흑우(검은 소)나 칡소 같은 특이한 털색 계통은 잡종화의 진전 속에서 빠르게 사라져갔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1963년만 해도 제주도 한우 5만여 두 중 약 20%인 1만여 두가 흑우였으나 1980년대에 들어 흑우는 멸종 위기까지 내몰렸다고 한다. 교잡이 거듭되면서 1990년대 초 제주 전역을 통틀어 순수 흑우는 10여 마리밖에 남지 않게 될 정도로 희소해졌다. 이는 제주 토종소 전체로 보아도 사정이 비슷하여, 제주 황소제주 칡소 등 고유한 계통이 희박해지고 대부분의 개체가 개량 한우와 구별이 어려운 형태로 변모했음을 의미한다. 2020년대 현재 제주도에서 사육되는 흑우 계통 소 약 1000두 중 순종 제주흑우는 30%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 70%는 한우(누렁소)와의 교잡잡종인 것으로 보고된다. 이처럼 교잡과 혼혈로 인해 제주의 토종 한우는 유전적·형질적 독자성을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되었다.

둘째로, 품종 명칭의 통일과 표준화 정책이 제주 한우의 정체성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해방 후 우리나라 토종 소를 부르는 명칭은 ‘한우’로 통일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소를 ‘조선우’라 칭하면서 황색 소만을 순종으로 인정하고 흑우나 칡소 등을 잡종 취급하였는데, 이러한 모색(毛色) 통일 정책의 영향이 해방 후까지 잔재하여, 정부와 학계는 다양한 털색의 토종 소들을 모두 하나의 한우 품종으로 묶어 관리하였다.

제주도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과거에는 ‘제주마소’, ‘제주흑우’ 등으로 불리던 토종 소들이 점차 공식 용어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그냥 한우로 불리게 되었다. 한우 개량 사업이 전국적으로 전개되면서 제주 한우도 국내 다른 지역 한우와 동일한 규격의 축산물로 간주되었고, 별도의 계통 구분 없이 통합적인 개량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행정 효율성 면에서는 일관성을 갖추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제주 토종소 고유의 이름과 정체성을 지워버리는 효과를 낳았다. 오랜 기간 제주 한우를 한우 전체의 하위 범주로만 다루다 보니, 유통 단계에서도 제주산 소고기가 특별한 표기를 받지 못하고 ‘한우’ 또는 ‘육우’로 분류되어 버렸다. 예컨대, 제주흑우를 도축하면 도축 증명서에는 ‘제주흑우’로 기재되지만, 소비자에게 소고기가 판매될 때는 등급판정서에 모두 ‘한우’로 표기되는 식이었다. 이처럼 품종 명칭의 획일화는 제주 소를 지역적·문화적 맥락에서 분리시켰고, 소비자들은 제주 토종소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때 제주 사람들조차 자기가 먹는 고기가 제주 토종인지 개량한우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모두 한우로 받아들이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한우=누렁소”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며, 제주 고유의 검은 소, 얼룩소는 공식 담론과 시장에서 사라진 존재나 다름없었다.

셋째로, 한우 산업의 산업화·규모화 과정에서 지역 문화와의 분리가 심화된 점을 들 수 있다.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소가 단순한 재산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농경지가 적었던 제주에서 소는 주로 교통이나 운반, 비료 생산 등에 활용되었고, 마을 공동체 생활의 일환으로 소를 돌보는 문화도 존재했다.

또한 제주 민속에서 소는 마을 굿이나 제의(祭儀) 등에 종종 등장하며, 공동체의 생계와 결속을 상징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소값이 경제 논리에 따라 등락하고, 축산이 철저히 시장 지향적 산업으로 재편되면서, 소에 얽힌 전통 문화 요소들은 빠르게 쇠퇴하였다.

소 도축이 일상화되고 고기 생산량 극대화만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예전처럼 소를 가족같이 여기거나 마을 공동 재산으로 존중하는 정서는 옅어졌다. 대신 소는 산업자산 또는 상품으로 간주되어, 몇 kg 증체가치와 등급 판정 결과로만 평가받는 존재가 되었다. 특히 제주 토종소는 산업적인 지위마저 위협받게 되었는데, 몸집이 작고 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도태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우개량정책, 4·3사건과 한국전쟁 등 격변을 거치면서 제주흑우처럼 체구가 작은 소들은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고 거의 도태될 뻔했다. 이렇듯 한우 산업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제주 한우는 문화적 상징성도, 경제적 경쟁력도 모두 희미해지며 존재감이 미약해진 상황에 처했다.

요약하면, 1960~90년대 근대화·비육 위주의 축산 정책은 제주 한우에게 이중의 희미화를 가져왔다. 하나는 유전적 혼혈화로 인한 정체성 희석이고, 다른 하나는 제도적·문화적 획일화로 인한 존재감 상실이다. 제주 토종 한우는 점차 육지 한우에 흡수되어 구별되기 어려워졌고, 고유한 이름과 특징도 잊혀져갔다. 이로써 제주의 소는 더 이상 제주만의 것이 아닌, 전국 어디서나 볼 법한 누렁소로 동일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는 훗날 지역 사회에 정체성 상실에 대한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의 밑바탕이 되었다.

지역 사회와 문화의 반응: 정체성 보존을 위한 노력

제주 한우의 변화에 대해 지역 사회와 축산 농가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우선 많은 축산 농가들은 현실적인 경제 논리에 따라 움직였다. 1970~80년대에 농가 소득을 높이기 위해 정부 방침을 수용한 다수의 제주 농민들은, 더 크게 자라고 값비싼 한우를 기르기 위해 토종소보다는 개량 한우나 그와의 교잡종을 선호하게 되었다. “검은 소보다 누런 소가 돈이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전통 토종소를 계속 키우던 농가는 드물어졌다.

일부 농가들은 아예 한우 사육을 포기하거나 돼지·닭 같은 다른 축종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이는 근대화 정책이 의도치 않게 지역 축산 농가 구조조정을 야기한 측면으로, 소규모 방목 위주 농가들은 경쟁에서 밀려나고 대규모 집약 사육농가가 부상하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 속에서도 토종소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않은 농민들도 있었다. 이들은 비록 경제성은 낮아도 조상 대대로 길러온 제주 소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몇 마리 안 남은 토종 흑우를 몰래 유지하거나, 혈통이 우수한 씨암소를 팔지 않고 간직하는 등 나름의 보존 노력을 이어갔다.

특히 산간 벽지의 일부 농민들은 개량 황소보다 환경 적응력이 뛰어난 토종소의 가치를 알고 있었기에, 교잡을 기피하고 순종 번식을 고집하기도 했다. 이렇듯 농가들의 대응은 경제적 대응과 전통 보존 사이에 스펙트럼이 존재했고, 1980년대까지는 전자가 주류였지만 소수의 후자 덕분에 토종 혈통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을 수 있었다.

지역 축산단체와 행정당국도 점차 문제의식을 갖고 대응에 나섰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제주도 내 축산 관련 인사들과 농업기술자들은 제주 고유 가축 유전자원의 급속한 소멸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이에 제주도 축산진흥원(현 축산기술원)과 제주축협 등은 토종 제주소의 체계적 보존을 위한 대책을 논의하였다.

그 결과 1992~1993년경, 제주도 전역을 수소문하여 남아있던 순혈 제주흑우 10마리를 확보하였고, 이를 제주축산진흥원에서 보호·증식하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 작은 시범사업은 제주 토종 한우를 공식적으로 부활시키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후 축산진흥원은 흑우 암소들의 번식을 유도하여 몇 년 만에 개체 수를 수십 마리로 늘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제주도 축산과학연구소(진흥원의 후신)는 제주흑우의 혈통관리에 더욱 주력하였고,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과 협력하여 유전자 분석을 통한 순종 판별, 정액 채취 및 동결 보존 등 과학적 보존기법도 동원하였다. 2004년에는 국제식량농업기구(FAO)에 제주흑우를 한우의 한 계통으로 공식 등록하여 국제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했고, 마침내 2013년에는 제주흑우가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546호로 지정되어 국가적 보호를 받게 되었다.

천연기념물 지정은 제주흑우를 단순한 가축이 아닌 문화유산의 반열에 올린 것으로서, 제주 소의 정체성 회복에 상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보존 조치들은 지역 축산단체와 행정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잃어버린 제주 소를 다시 살리자”는 지역 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되었기에 가능했다.

한편, 지역 문화계와 주민 사회에서도 제주 한우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일어났다. 제주 향토사 연구자들과 문화인들은 일제의 수탈과 근대화로 잊혀져 가는 제주흑우의 역사를 조명하고, 그 문화적 의미를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지역 신문과 언론은 잊힌 제주흑우 이야기를 기사와 기획물로 다루어 도민들에게 알렸고, 교육 현장에서도 제주흑우를 포함한 제주 향토생물에 대한 교육이 조금씩 이루어졌다.

2010년대에는 사진작가나 예술가들이 제주흑우를 소재로 전시와 작품 활동을 펼쳐, 대중적 인식 확산에 기여하기도 했다.

예컨대 제주 출신 사진가 김민수는 흑우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사진에 담아 전시회를 열고, 제주흑우만을 그리는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흑우 알리기에 힘썼다. 이는 축산을 넘어 문화예술 차원에서의 정체성 복원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제주 지역 축제나 행사에서도 흑우를 테마로 한 프로그램이 등장하여, 관광객과 도민들에게 제주흑우를 선보이고 그 가치를 설명하는 자리가 마련되곤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제주흑우도 분명 우리 한우”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색은 다르지만 엄연히 한국 토종소의 한 갈래임을 인식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실제로 농촌진흥청 등 관계기관도 한우의 다양한 토종 계통(흑우·백우·칡소·제주흑우 등)의 보존과 연구를 홍보하여, 국민들이 한우의 유전적 다양성을 알게 하는 데 힘썼다.

지역 사회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제주 한우의 정체성 회복 움직임은 점차 결실을 맺어갔다. 2010년대에 들어 제주흑우를 지역 특산 고급육 브랜드로 육성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어, 서귀포시축협에서는 2010년 전국 최초로 흑우 전문 판매식당인 “흑한우 명품관”을 열고 흑우 고기를 대중에게 선보였다. 제주시에 소재한 일부 음식점들도 ‘검은 쇠고기’를 콘셉트로 흑우 요리를 내놓기 시작했고, 이는 미식가들과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새로운 시장을 형성했다.

2020년에는 마침내 축산물품질평가원의 등급 판정서에 ‘제주흑우’ 품종명을 별도로 표기하도록 제도가 개선되어, 80여 년 만에 제주흑우가 공식적으로 자기 이름을 되찾는 쾌거도 이루어졌다. 이처럼 행정·연구·농가·문화계가 다 같이 힘을 모은 결과, 제주 한우는 서서히 정체성의 불씨를 되살려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과거 근대화의 격랑 속에 희미해졌던 제주 소의 이름과 모습이 다시금 지역 사회의 자긍심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향후 정체성 복원의 과제와 전망

비육 중심 축산 시대를 지나온 제주 한우의 정체성 복원은 현재진행형 과제이다.

이제까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으며, 미래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 유전적 복원과 개량의 균형이 중요하다. 제주흑우를 비롯한 제주 토종 한우의 개체 수를 안정적으로 늘리는 것이 시급한데, 이를 위해 순수 혈통을 유지하면서도 근친교배를 피할 수 있는 번식 전략이 요구된다.

다행히도 제주도는 2020년대 들어 민·관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제주흑우 증식 및 육성에 힘쓰고 있다. 2024년 발표된 ‘향토자원 제주흑우 브랜드 육성 전략’에 따르면, 제주도는 현재 약 1천 여 두 수준인 제주흑우 사육두수를 2030년까지 4,000두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순종 집단실용 hybrid 집단을 구분하여 관리할 계획이다. 순수 혈통 보존을 위해서는 우수 흑우 수정란 생산과 이식 기술을 활용하여 기초 모우군을 확대하고, 매년 3~4두의 우수 종모우(씨수소)를 선발해 정액을 공급하는 체계를 갖출 예정이다.

한편 실용축 개량 측면에서는 검증된 한우와 흑우의 교잡종(F1) 종모우도 활용하여, 농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교배 조합을 연구하고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경제성정체성을 동시에 고려한 이원화 전략으로, “순종은 지키고, 잡종은 활용한다”는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완전 순종 제주흑우의 유전자원은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상업적 고기 생산에는 한우와 흑우의 교배를 통한 육질·육량 개선 개체를 활용하여 농가 수익성을 담보하려는 것이다.

사육 시스템의 개선도 중요한 과제다.

제주 토종소를 보존하려면 단순히 숫자만 늘리는 게 아니라, 그것이 농가에게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축산이 되어야 한다. 현재 제주흑우는 한우에 비해 성장기간이 길고 체중이 덜 나가 경제성이 낮은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사양관리 연구가 진행 중이다. 예컨대 제주흑우에 특화된 사료 배합 기술이나 비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출하 월령을 단축시키고, 육질 향상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동시에 제주흑우 농가를 위한 인증제도지원책도 도입되어, 일정 기준을 준수하는 농가를 육종농가로 지정해 사료비나 시설 개보수, 방역 등을 한시적으로 추가 지원함으로써 경쟁력 격차를 줄여주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이런 지원은 제주흑우 농가들이 한우 농가와 비슷한 수익성을 거둘 때까지 지속될 예정으로, 이는 과거 근대화 시기 경제논리에 밀려난 토종소를 정책 논리로 다시 살려내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유통구조 개선 역시 중요한데, 앞서 개선된 등급판정 표기처럼 소비자들이 제주흑우 고기를 식별하고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제주도는 흑우 고기만을 전문적으로 판매·가공하는 계열화 시스템을 만들고, 흑우 브랜드 마케팅을 강화하여 국내외 고급육 시장에서 차별화된 입지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제주흑우를 “한우 중의 한우”, 즉 최상위 프리미엄으로 자리매김시킴으로써 농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구조를 목표로 한다.

과학기술의 활용도 미래 과제로 논의된다.

현재 제주흑우 보존을 위해 유전공학적 기법까지 도입된 상태다. 2009년에는 죽은 흑우 씨수소의 체세포로 복제 소를 만드는 데 성공한 바 있으며, 2015년에는 사후 체세포 복제로 얻은 흑우 암소·수소 한 쌍으로부터 자연 분만 송아지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복제기술은 극소수 남은 우수 개체의 유전자를 증폭하는 데 유용한 수단으로 평가된다. 다만, 윤리적·사회적 논의도 필요한 부분이므로, 향후에는 보다 정밀한 유전체 분석전통 육종 기법을 병행하며 신중히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동결 정액 및 동결 배아 은행을 구축하여, 예기치 못한 질병이나 재해로부터 제주 토종소 유전자를 안전히 보관하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이는 정체성 복원의 궁극적 목적이 지속 가능한 유전자원 보존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정체성 복원의 철학적 측면에 대한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 제주 한우의 정체성을 되살린다는 것은 단순히 소 몇 마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제주의 역사와 문화,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축산의 모습을 되찾는 일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와 지역 리더들은 “제주 한우의 가치”를 재정립하려 하고 있다. 이를테면 제주흑우의 고유한 육질 – 지방 함량이 낮고 풍미가 깊은 특성 – 을 소비자들에게 교육하여 건강한 슬로우푸드로서 차별화하려는 전략이 제안된다. 또한 제주 초지에서 방목한 흑우를 친환경 자연방목 한우로 브랜드화하면, 공장형 사육이 아닌 제주만의 청정 이미지를 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는 근대화 시기 잃어버린 “제주 들판의 검은 소떼” 풍경을 관광 자원화하고 문화적으로 승화시키는 아이디어와도 연결된다. 나아가, 제주 한우 정체성 복원은 대한민국 전체 한우 산업의 유전적 다양성 확보문화유산 보존이라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한우를 단일한 황소가 아닌, 다양한 색과 형질을 가진 다섯 계통의 토종소(황우, 흑우, 백우, 칡소, 제주흑우)로 인식하고 모두 보호·육성함으로써, 한우 산업에 유전적 보험을 들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근대화와 비육 중심 축산의 물결 속에서 제주 한우는 한때 고유의 정체성이 흐려졌으나, 지역 사회의 꾸준한 노력과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다시금 자신의 이름과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비록 1960~90년대의 개발 논리가 남긴 상흔이 완전히 치유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제주에서는 토종 한우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의식이 되살아나고 있다. 향후 제주 한우 정체성 복원은 유전자원 보전, 경제성 있는 사육체계 구축, 문화적 가치의 재창조라는 세 갈래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며, 이는 제주만의 특수성을 지닌 축산업 모델을 완성하는 길이 될 것이다. 제주흑우를 비롯한 제주 한우가 온전히 복원되어 제주 섬의 풍경과 식탁, 그리고 문화 속에서 예전의 영광을 되찾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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