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고기 잡설

삼겹살 세분화 정책의 오류

‘베이컨 스펙’의 역사적 굴레와 유통의 위기


[칼럼] 삼겹살 세분화 정책의 오류: ‘베이컨 스펙’의 역사적 굴레와 유통의 위기

KakaoTalk_20260116_100213742.jpg

삼겹살은 단순한 돼지고기 부위를 넘어 한국인의 정체성과 식문화를 대변하는 시대적 아이콘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발표한 ‘삼겹살 세분화 및 품질관리 대책’은 식육의 역사적 맥락과 생물학적 본질, 그리고 복합유기생산체로서의 축산물 경제 메커니즘을 간과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미트마케터로서 삼겹살의 궤적을 추적해온 관점에서, 이번 정책이 초래할 구조적 모순과 국내 양돈 산업에 닥칠 위기를 진단한다.

1. 1972년의 유산: 왜 우리는 ‘베이컨 원료’를 구워왔나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삼겹살의 물리적 형태와 규격은 1970년대 초반 대일 수출 역사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흔히 삼겹살 문화를 안심과 등심을 수출하고 남은 부위의 처분 과정으로 설명하곤 하지만, 이는 사실관계의 선후가 바뀐 이야기이다.

실제적인 전환점은 1971년 일본의 돈육 수입 자유화 이후, 1972년부터 본격화된 ‘박스미트(Box Meat)’ 형태의 부분육 수출이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요청에 따라 안심, 등심뿐만 아니라 삼겹살 역시 수출 품목에 포함하여 생산하였다. 이때 일본 측이 강력하게 요구한 규격은 구이용이 아닌, 철저하게 ‘베이컨 제조를 위한 원료육’ 스펙이었다.

베이컨용 원료육은 염장과 훈제 공정을 거쳐 얇게 슬라이스 되는 특성상, 일정한 두께의 지방층이 유지되어야 가공 적성이 극대화된다. 한국의 육가공 현장은 이 일본식 베이컨 스펙에 맞춰 삼겹살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국내 구이 시장의 표준 스펙으로 고착되었다. 즉, 우리가 현재 ‘황금 비율’이라 부르며 불판 위에 올리는 삼겹살은 태생적으로 구이가 아닌 ‘가공용 원료육’의 유전자를 지닌 변칙적 산물이다.

2. 비계 논란의 본질: 품질 결함인가, 가치 저항인가

지난해부터 불거진 ‘비계 삼겹살’ 논란을 단순한 품질 관리의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는 일이다. 이 논란은 삼겹살 가격의 가파른 상승에 따른 소비자의 **‘가치 저항’**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과거 삼겹살이 저렴한 단백질원이었던 시절, 소비자들은 지방을 ‘고소한 풍미’로 기꺼이 수용하였다. 그러나 1인분 2만 원 시대에 진입하며 삼겹살은 고가의 기호품이 되었다. 소비자는 자신이 지불한 높은 비용에 상응하는 완벽한 상품 가치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계 불만은 결국 “이 가격을 지불하고도 왜 베이컨 원료 같은 지방 덩어리를 받아야 하는가”라는 소비자의 합리적 의문에서 기인한다. 정부가 이를 유통업자의 부도덕이나 관리 미흡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가격 대비 가치 불균형이라는 본질을 보지 못한 단견이다.

3. 세분화 정책의 오류: 생산자 책임 방기와 유통의 과적

농림축산식품부가 내놓은 세분화 가이드라인은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악수(惡手)다.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과지방 생산의 근본적 책임이 있는 양돈 농가의 사양 기술 개선을 도외시했다는 점이다.

돼지가 비정상적인 지방을 갖게 되는 것은 증체량을 늘리기 위해 고에너지 사료를 급여하고 출하 시점을 조절하지 못한 생산 단계의 문제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생산 현장의 변화를 이끌어낼 사양 기술 표준화 대신, 이미 도축된 고기를 다듬고 잘라 팔아야 하는 육가공업체, 유통사, 식당, 정육점에만 무리한 트리밍과 세분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생산의 문제를 유통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다.

4. 수입육에 유리한 시장 구조: 국내 양돈 산업의 위기

이번 정책은 국산 돼지고기의 품질을 높이겠다는 의도와 달리, 결과적으로 수입 삼겹살에 매우 유리한 시장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수입육의 단가 경쟁력: 수입육은 저가의 삼겹살 원육을 대량으로 들여와 세부 가공할 수 있는 인프라와 가격 구조를 갖추고 있다.

부가가치의 역전: 수입업자들은 세분화 과정에서 나오는 돈차돌이나 뒷삼겹살을 햄, 소시지 등 육가공 원료육으로 활용하여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반면, 국내 유통 채널은 이러한 부산물을 처리할 시스템이 부족하다.

경제적 손실의 전가: 돼지는 모든 부위가 연결된 복합유기생산체이다. 특정 인기 부위(앞삼겹)만 소비되고 비인기 부위가 생겼을 때 발생하는 재고 부담과 가격 하락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손실은 고스란히 육가공업체와 정육점, 그리고 가격 인상의 형태로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특히 생산량이 적은 '앞삼겹'은 희소성으로 인해 가격이 지금보다 상당히 폭등할 가능성이 크다.

5. 식육 과학적 사실: 14개 근육의 불협화음

삼겹살은 단일한 근육 덩어리가 아니다. 삼겹살은 늑간근을 포함해 약 14개의 서로 다른 근육과 지방층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부위다. 특히 흉추에서 요추로 이어지는 물리적 구조는 위치에 따라 근육의 형태가 완전히 다르다.

이른바 ‘미추리’라 불리는 뒷삼겹 부위는 해부학적으로 삼겹살의 전형적인 층 구조가 붕괴되고 뒷다리 근육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지점이다. 앞삼겹과 뒷삼겹은 근육의 질과 용도가 엄연히 다르다. 삼겹살 소비가 둔화되는 시점이라면, 이름을 쪼개어 팔 것이 아니라 삼겹살의 스펙 자체를 줄여야(Shortened Spec) 한다.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부위를 과감히 삼겹살 범주에서 제외하는 것이 과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대안이다.

결론: 이름 나누기가 아닌 스펙의 정예화가 답이다

삼겹살 세분화 정책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관료적 명칭 나누기는 수입육의 시장 점유율만 높여줄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처방이다.

사양 기술의 혁신: 양돈 농가가 시장이 원하는 적정 지방 두께의 돼지를 생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스펙의 정예화: 70년대 ‘베이컨 원료 스펙’에서 벗어나 현대 구이 문화에 최적화된 ‘단축 스펙’을 업계 표준으로 정립해야 한다.

복합 소비 체계 구축: 비인기 부위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가공 산업을 육성하여 유통 단계의 경제적 손실을 막아야 한다.

삼겹살 논쟁의 해답은 유통 단계의 칼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의 과학과 가치의 혁신에 있다.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국산 돼지고기가 수입산과의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실질적인 토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image.png
image.pn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편안한 분위기에서 즐기는 무까따, “무까따 빠에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