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우리나라의 숙성육 5.1 한우의 우수성
5. 우리나라의 숙성육
5.1 한우의 우수성
‘일두백미’라는 말이 있다. 소고기 한 마리에서 100가지 맛이 난다는 말이다. 유명한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한국은 소고기를 120개의 부위로 정형해서 먹는다”라고 하면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소고기 요리문화를 가졌다고 말했다. 이를 근거로 보면, 우리 민족은 특히 소고기를 다른 고기에 비해 매우 귀하게 취급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1930년대 한반도의 조선우 사육두수는 170만두 정도였고, 조선시대에는 하루 500마리의 소를 도축하였다. 이를 근거로 조선시대의 소고기 소비량을 추정해 보면, 연간 약 15만 두에서 20만 두의 소가 도축되어 소비되었다 볼 수 있다. 그 당시의 소들은 대부분이 일을 하는 역우였다. 따라서 지금처럼 생후 30개월에 도축하지 않았고, 일소로서 더 이상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도축을 했다. 조선우가 평균 6년 정도 살았다고 가정하면, 한해에 15~20만 두를 도축하기 위해서는 약 100만두 이상의 소가 사육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당시 법적으로 소는 도축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이렇게 많은 소가 사육되다 보니 병들거나 다친 소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그런 소들은 도축하여 취식이 가능했다. 마치 요즘 우리가 고래의 식용 포경은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과 같은 형국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소는 1970년대까지도 농번기에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3월부터 추석 전까지는 소의 도축두수가 현저히 감소한 반면, 추석 이후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도축두수가 증가하였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조선시대의 연간 도축두수는 10만두 미만이고 사육두수는 50만두 미만이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해방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남한 내의 소의 사육두수가 50만 두 선으로 격감한 반면 전쟁 이후 인구는 급격히 증가한 결과, 1950년대 후반부터 소고기의 공급부족이 시작되어 1980년대 초반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당시는 소고기의 품질보다 중량이 매우 중요했고, 서울의 경우는 서울 시내 도축장에서 도축되는 소의 대부분이 물 먹인 소였을 정도로 소의 중량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 계속됐다. 1970년대. 1980년대 서울에서 유통되는 소고기의 90% 이상이 물 먹인 소고기라고 했다. 이 같은 소의 중량을 높이기 위한 편법은 지급도 계속되고 있는데, 출하 전 절식을 지키지 않고 사료를 잔뜩 급여해 출하하는 비중이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1990년 UR 협상이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수입 쇠고기 개방 일정이 확정되자 시장개방에 대응한 한우의 품질고급화 문제가 대두되었다. 원초적으로 생산비가 비싼 한우는 판매가격이 너무 높아 저가의 수입 쇠고기 대비 가격경쟁은 한계가 있지만, 품질고급화를 통해 고소득층을 겨냥한다면 그나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벤치마킹 대상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수입 쇠고기 시장을 개방했지만 하이마블을 자랑하는 와규는 시장개방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있었다. 이에 우리나라도 1980년대 일본의 사례를 연구한 몇몇 선진 한우농가를 중심으로 한우를 활용한 하이마블 시험사육에 들어갔고, 1992년 소고기 등급제가 시범실시 되면서 점차 고급육 생산을 위한 기반을 쌓아 나갔다.
하이마블 소고기 생산을 위해서는 황소의 거세 시술이 필수적이었지만, 비거세 황소가 18개월령에 출하가 가능했던 것과 달리 거세우는 오랫동안 사육을 해야 했고, 육량 또한 적어서 농가들은 고급육 생산을 매우 기피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거세 장려금을 지급하기 시작했고, 거세 시술이 일반화되자 이번에는 1등급 이상 소고기를 생산한 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였다.
정부의 1등급 이상 소고기 시장 형성을 위한 노력의 결실은 2000년대 초반 외환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한 시점에서 나타났다. 구이용으로 적합한 1등급 이상 한우고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소비자들은 1등급 이상 한우고기에 기꺼이 추가 비용을 지불할 의사를 보였다. 따라서 정부 보조금이 아니라도 1등급 이상 한우고기를 생산하면 한우 농가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됐다.
결과적으로 마블링이 많은 한우고기를 생산하여 고가로 판매함으로써 수입 쇠고기와 경쟁하겠다는 전략은 120% 성공하였다. 한우고기 마블링의 맛을 알기 시작한 국내 소비자들은 더 많은 마블링을 가진 한우고기를 요구하게 되었고, 국내 소고기 시장은 마블링이 많고 비싼 한우고기 시장과 마블링이 적고 저렴한 수입 쇠고기 시장으로 양분되었다. 이처럼 마블링이 많을수록 고급육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마블링의 수준에 따라 1등급, 2등급, 3등급으로 평가되던 소도체등급제에는 1등급보다 마블링이 많은 1+등급이 생겼고, 시간이 흐르면서 1+보다 더 마블링이 많은 1++등급까지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예상을 뛰어넘어 서민들까지 1++등급 한우고기 소비에 참여하게 되면서, 한우의 사육두수는 매년 증가하여 300만 두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일단은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던 한우 고급육 정책은 10년을 지속하지 못하고 위기를 맞게 되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등 미국과 유럽의 금융 및 재정위기가 촉발되면서, 수출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도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저성장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한우고기 소비는 더 이상 늘지 않게 되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다고 2016년 가을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고급육 한우고기의 판매와 소비는 치명타를 맞았다. 일차적 타격은 브랜드화되지 못했던 한우 전문점이 받았고, 그 여파는 한우 외식시장 전반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고, 궁극적으로 한우 사육 농가에까지 피해가 점차 확산될 것으로 보였다.
한우는 2020년 코로나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한우 소비는 외식소비에서 온라인 구매와 가정소비에서 강세를 보였다. 한우고기의 고급화와 차별화로 높아진 수요는 재난지원금 지급과 동시에 판매가 급증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한우의 역사를 보면 한우고기의 미래가 보인다.
우리 민족은 우수한 가축 사육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소도 오래전부터 몽골이나 중국 등지에서 양질의 외래종을 도입하고 이를 한반도에서 사육되던 가축과 교배하여 더 나은 가축으로 개량하는 육종사업을 전개했다. 이러한 품종 개량에서 가장 극적으로 성공을 거둔 시기는 단연 15∼19세기였다. 조선의 소 역시 다양성을 기본적 특성으로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외형상 눈에 띌 정도로 중국이나 일본의 소와 달랐다. 이는 조선시대를 넘어 최근까지 그들이 한국의 소를 수입하기 위해 애쓰는 원인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소의 품종 개량과 결과는 1903년 대한제국을 방문한 러시아 학자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Watslav Sieroszewski)(1858∼1945)의 다음 증언을 통해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소는 극동에서 제일로 여기는 우량종이다. (중략) 한국의 소는 키가 146∼150cm에 이르고, 무게는 약 20푸드 (330kg)까지 나간다. 건강하고 활동성이 큰 것이 특징이고, 달구지에 40푸드(660kg) 정도의 짐도 쉽게 나를 수 있으며. 산을 넘거나 물살 센 강을 건널 때는 그 어떤 가축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존재다. 말들이 쉽게 넘어지거나 발을 헛디디는 곳에서조차 소들은 쉽게 장애물을 피해 나간다. 발이 빠른 한국소들은 속도나 장시간 사람을 태우고 갈 수 있는 능력에서 말에 뒤지지 않는다. (중략) 한국소는 물소와 여러 차례 교배된 특징이 확실히 나타난다. 한국소의 큰 키와 강인함, 큰 활동성은 바로 거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점이었다. 1885년 조선을 방문한 러시아의 다데슈칼리안 공후 역시 “조선산 황소와 암소들은 힘과 인내력이 뛰어난데다 몸집도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라고 했다.
여러 외국인들이 330kg의 한국의 소를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을 영국의 소랑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영국의 산업혁명기는 농업혁명기이기도 했다. 당시 로버트 베이크웰(Robert Bakewell, 1725년 5월 23일 ~ 1795년 10월 1일)은 영국의 농업학자가 있었다. 베이크웰은 농업 분야에서의 일 외에도, 특히 가축의 체계적인 선별 사육을 최초로 시행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발전은 양, 소, 말의 특정한 향상으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인위적인 선택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에도 기여했다.
로버트 베이크웰은 주로 쇠고기에 사용되는 소를 처음으로 사육했다. 그는 긴 뿔을 가진 하이퍼와 웨스트모어랜드황소를 건너 결국 디즐리롱혼을 만들었다. 점점 더 많은 농부들이 그의 선례를 따랐을 때, 농장 동물들은 크기와 질에서 극적으로 증가했다. 1700년 도살용으로 팔린 황소의 평균 무게는 370파운드(168kg)였다. 1786년까지 그 무게는 2배 이상 증가한 840파운드(381kg)였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디슐리롱혼은 짧은 뿔 버전으로 대체되었다.
산업 혁명 이전 영국의 소들의 겨우 370파운드 (168kg) 정도였으니 조선 시대 소는 전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품종이라고 봐야 한다.
한국 소의 이러한 특별한 외양과 능력은 오키나와에서 물소를 도입하여 교배한 결과로 보인다. 이는 실록 지사를 통해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은 국초부터 활을 만드는 데 가장 긴요한 재료인 물소의 뿔을 생산하는데 관심이 높았다. 뿐만 아니라 조선에서 기르고 있던 소보다 더 강한 힘과 빠른 속도를 지닌 물소를 논과 밭을 가는 데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실록 세종조를 보면 물소는 힘이 세고 밭을 가는 것이 보통 소의 두 배에 이를 정도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물소는 털이 짧고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특성이 있었다. 세종은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서울에서는 겨울철에 우리를 지어 잘 보살피고 따뜻한 봄이 되면 살곶이에 내보내 기르는 방안을 시행했다.
조선은 국초부터 명의 남부에서 물소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세조 7년(1461)에 이르러서야 오키나와에서 암수 2마리의 물소를 들여올 수 있었다. 부산에 도착한 물소는 경상도 웅천에서 겨울을 보내도록 한 후, 서울로 가져와 창덕궁의 후원에서 사복시 관원들이 돌아가며 길렀다. 조선의 제반 의서에서 물소 기르는 법을 조사하고 이를 의생 4명이 배우게 하는 등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오키나와에서 들어온 물소는 잘 번식되었다. 17년이 지난 성종 10년(1479)에는 70여 마리로 불어났을 정도였으며 이후에도 번식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물소를 기르는 데 겪는 백성들의 고초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대신들에게 물소 암수 한 마리씩을 나눠줘 기르게 하고 남은 소들은 여러 도의 군현에 나눠줘 기르게 하는 방안이 대표적이었다. 성종 24년(1493)에는 이전까지 방목하던 물소를 아침저녁으로 훈련시켜 길들이기 시작했다. 크게 번식된 물소를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농사일에 쓰려는 시도도 본격화했다. 조선의 생태 환경사에 나오는 조선의 소에 관한 내용이다.
한우의 조상이 오키나와 물소였다는 건 역사를 공부하는 학자의 주장이고 물소는 소아과-소족-물소 속-물소, 일반 소는 소아과-소족-소속-소로 물소와 소는 교배가 불가능하다. 교배를 통해 설사 후대를 생산한다 해도 이류교배(disassortative mating)의 특징인 생식능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게 번식학을 전공한 축산학자들의 일반적 견해다. 그러나 이 자료를 통해 조선시대에는 지금보다 다양한 품종의 소들이 사육되고 있었음을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조선의 소는 일소로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고기소로 이용되는 일은 드물었던 것 같다. 역우인 조선우‧한우가 고기소 육우가 된 건 1980년대 이후라 할 수 있다. 1984년도 대학교재로 사용된 [축산학개론]을 살펴보면 한우는 역우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1990년대에 출간된 [축산학개론]에는 한우가 육우로 정의되어 있다. 한우가 일소인 역우에서 완전히 벗어나 고기소인 비육우가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우가 고기소가 된 후 사육 비용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특히 1++등급 한우로 키우는데 투여되는 고품질 사료비용은 일반 비거세 황소를 키우는 것보다 마리당 100만 원에서 150만 원 더 들어간다. 사육기간 역시 마블링을 위해 거세한 한우는 30개월 이상을 키워 출하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는데, 비거세 황소는 18개월에서 20개월 정도 사육하면 다 성장해서 상품화될 수 있다. 이렇게 고급육 한우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사료비용과 사육기간이 길어지는데 들어가는 기회비용을 감안하면, 적어도 고품질 한우 한 마리가 일반 비거세 황소 한 마리의 생산비보다 200만 원 정도 더 투입된다.
여기에 덧붙여 등급간 구이용 부위만 가격차가 있고 나머지 부위는 가격차가 그리 크지 않는 것도 문제다. 즉, 1++등급 한우와 2, 3등급 한우의 부위별 가격을 비교해 보면, 안심, 등심, 채끝 등 구이용 부위에서만 등급 간의 가격 격차가 크고 나머지 부위는 거의 가격차가 나지 않는다. 따라서 안심, 등심, 채끝, 갈비살 등 구이용을 고가로 받아야 높은 생산비를 보상받을 수 있다. 이것이 현재 소비자들이 한우의 안심, 등심, 채끝을 비싸게 구입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앞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마블링을 중시하는 고품질 한우 정책이 처음 시행되었던 1990년 초반이나 2000년대까지의 경제 사정은 이런 고가의 고급육 정책이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2022년 오늘날 저성장의 한국 경제는 마블링을 위주로 하는 고가의 고급육 정책이 부담스러워졌다. 소 한 마리를 도축해서 높은 가격으로 구이용 몇몇 부위만 인기리에 유통되는 방식에 한계가 온 것이다. 따라서 생산비가 많이 들어가는 하이마블 한우가 고급육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이마블 소고기가 고급육이라는 패러다임 하에서는 마블링 형성이 어려운 황소(비거세 수컷)는 시장에서 설 자리가 없어져 구하기 힘든 소(전국한우도축물량의 약 4%선)가 되었다. 이 같은 이유로 현재 국내 한우 숙성육 시장에서 주원료는 암소 2, 3등급이지만, 앞으로는 육향이 진한 황소고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본다. 왜냐면 황소고기도 건조숙성(드라이에이징)을 하면 감칠맛이 월등히 높아지고 부가가치가 높은 완전히 다른 고기로 재탄생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블링이 적은 황소고기를 건조숙성하여 고기의 육질과 맛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이를 이용한 새로운 메뉴의 개발이 업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난다면, 한우의 사육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예를 들어, 저지방 한우부위를 삶아 먹는 우리의 전통적인 고기 조리문화를 감안하여,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젊은 스타 셰프들이 건조숙성 황소고기를 이용하여 개발한 수준 높은 곰탕이나 수육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현상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렇게 마블링이 적은 황소고기나 저등급 암소고기의 소비가 증가하면 한우의 사육 측면에서도 굳이 고급육 생산을 위한 거세 한우만을 고집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하이마블의 한우고기가 대세인 국내 소고기 시장에서 마블링이 적은 황소고기와 같은 저등급육을 이용한 건조숙성육이 이미 틈새시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소비자의 높은 관심과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육단백질의 감칠맛을 극대화시키는 숙성의 기술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마블링이 많은 고기를 선호하게 된 것에는 ‘소고기 등급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도체등급제’인데,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가 고품질 소고기가 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이 ‘소도체등급제’에 대해 충분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축산물 등급제도는 생산자와 유통 그리고 소비자 모두가 하나의 통일된 지표를 가지고 육류의 품질을 평가하고 이를 기초로 구매함으로써 정보의 비대칭성을 제거하는 효과를 가진다. 이를 목표로 만들어진 소도체등급제도는 육량등급과 육질등급으로 구분되는데, 육량등급은 판매자의 주요 관심사인 반면 육질등급은 소비자가 소고기를 구매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이다.
한우의 육질등급은 1++, 1+, 1, 2, 3등급 및 등외등급까지 총 6개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육질등급은 크게 5가지 기준, 즉 근내지방도, 지방색, 육색, 조직감, 성숙도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이 5가지 항목 중에서도 우리가 흔히 ‘마블링’이라고 부르는 근내지방의 함량과 지방색이 소고기 육질등급 판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1++등급을 받은 한우는 다른 등급을 받은 한우보다 등심근의 육색이나 조직감 등이 좋다는 의미보다 근내지방이 상대적으로 좀 더 촘촘히 잘 분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도체등급은 육질등급 외에도 육량등급이 있는데 육량등급은 소 한 마리를 잡았을 때, 생산될 수 있는 정육의 양을 도체중, 등지방두께 및 등심단면적으로 만들어진 계산식으로 추정하여 A, B, C등급으로 나눈다. 따라서 육량등급과 육질등급을 병행하여 표기하는 우리나라 소도체등급제에 따르면, <표 1>에 나타낸 바와 같이 총 16개의 등급체계가 존재한다.
여기서 육량등급은 소 한 마리에서 얼마만큼의 살코기가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한 계산이기 때문에 주로 유통단계에서 이용되며 소고기의 품질이나 맛과는 큰 관련이 없다. 따라서 일반 소비자들은 육질등급만 알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소고기의 육질등급을 판단하는 기준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근내지방도와 지방색 등을 주된 판단 지표로 삼고 있다. 이는 다수의 사람들이 부드럽고 고소한 마블링과 담백한 살코기가 어우러진 맛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쇠고기는 1927년, 돼지고기는 1949년, 닭고기는 1976년, 계란은 1955년부터 등급제가 시행되었다. 일본은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1964년부터, 닭고기는 1961년부터 등급제가 시행되었다.
미국의 등급제도는 쇠고기의 유통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축산업계의 요구에 의해 제도화됐고, 일본의 등급제도는 소가 대량 사육되고 유통되면서 도체의 거래가 일반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전국 공통의 거래규격에 의한 등급 판정 필요성이 요구되어 시행됐다. 호주의 경우는 일본에 쇠고기를 수출하면서 등급을 부여한 것이 효과를 본 이후, 다른 해외시장에 있어서도 이용범위를 넓히고 있으며, 최근에는 호주 내수시장에서도 회사상품 또는 주 단위 상표로 이용되고 있다.
미국 등 서구의 쇠고기 등급제도가 마블링 중심으로 된 이유는 고기 섭취 문화와 관련이 있다. 즉, 서구처럼 고기를 주로 불에 직화로 구워 먹는 건식 조리 식문화에서는 마블링이 적은 고기는 퍽퍽하고 질겨 선호도가 떨어진다. 반면, 근섬유 사이에 마블링이 형성되어 있는 고기는 지방의 맛도 맛이지만 불에 지방이 쉽게 녹아내리게 때문에 씹을 때 근섬유들이 쉽게 뭉그러져 부드럽게 느껴진다. 따라서 서구의 소비자들은 이미 경험적으로 마블링이 있는 고기가 연하고 맛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소고기 등급제도에 이를 적극 반영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소고기의 주된 요리법이 국이나 탕, 불고기 등이었다. 이렇게 고기가 물 속으로 들어가 장시간 끓이거나 삶아지는 경우는 고기의 마블링이나 연도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 소고기 식문화도 급속하게 미국의 영향으로 불에 직접 소고기를 구워먹는 문화로 전환되었고, 1990년대 들어와 때마침 소도체등급제도가 도입되면서 소고기의 주된 조리법은 구이, 특히 숯불구이가 대세가 되었다.
처음 우리나라의 소고기 등급제도가 도입된 경위는 수입 쇠고기 시장 개방을 앞두고 경쟁력 제고 방안을 찾던 중 일본을 벤치마킹한 결과이다. 즉, 일본이 소도체등급제도를 통해 화우의 마블링을 높이는 고급화 정책으로 미국산 쇠고기와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을 보고, 우리도 한우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유사한 전략을 수립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일본의 쇠고기 등급 기준을 참조해 소와 돼지의 도체등급판정 기준을 수립하고, 1992년 7월 축협중앙회 서울축산물공판장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하였다. 그 후, 1994년 6월 축산물의 등급화 거래 시행규칙을 공포하여 현재의 소고기 등급제로 발전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우는 처음부터 식육을 위해 생산되는 육우가 아니고 일소였기 때문에 육질이 질긴 편이라 보통 국이나 찜, 탕의 용도로 이용되었다. 구이로는 갈비구이가 한우 구이의 중심이었고, 소고기 등급제가 시행된 이후에나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꽃등심 구이가 보편화되었다. 옛날에 꽃등심구이는 방자구이라 했었는데, 방자구이는 얇게 썬 소고기를 양념하지 않고 즉석에서 석쇠나 철판에 구우면서 소금과 후추를 뿌려서 간을 하여 먹는 것이다. 보통 방자구이는 등심구이 또는 소금구이라 하여 파와 상추 등 채소에 곁들여서 싸서 먹는다.
방자 구이는 옛날에 양반의 심부름을 하는 남자 하인인 방자가 마당에서 상전인 양반을 기다리는 동안에 부엌에서 고기를 얻어 양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즉석에서 아궁이나 모닥불에 구워 소금만 뿌려서 먹은 데서 붙여진 음식이라는 설이 있다. 또 조선시대 관리들이 물품을 관리하면서 고기의 품질 검사를 위해 고기를 구워 소금만 찍어 먹어 보고 품질 평가를 했다는 데서 방자 구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설도 있다.
등심구이는 1970년대에는 로스구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는데, 이때는 등심의 마블링이 발달하지 않아 얇게 썰어 구워 먹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USDA 쇠고기 품질 등급: 지방이 살을 이기다.
경제학자 V 제임스 로즈가 설명했듯이 USDA 쇠고기 등급 평가 시스템은 정부의 육질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1920년대의 농업 침체기 동안 중서부와 동부의 목축업자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밀어붙인 것이었다. 이들은 기름기 없는 낙농소와 덤불소를 희생시켜 지방이 많고 옥수수를 사료로 먹인 자신들의 육우 품종 쇠고기에 대한 수요에 불을 댕기고 싶어했다. 앞장을 선 이는 목축인 가제트의 편집장이었던 앨빈H. 샌더스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화려한 수식어를 동원해 값싼 고기의 느린 조리과정을 “뼈 몇 조각과 한 줌의 고양이 사료용 고기로 연회 음식을 만드는 대륙 유럽의 옛날이야기와 똑같은 것이라고 깎아 내렸다.
샌더스와 그의 동료들은 “동물의 근조직은 지방이 많아야 연하고 풍부한 맛을 낸다”라며 정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1926년 여름에 믿을 만한 목축업자 한 명과 오클린 손이라는 뉴욕의 재무 전문가가 농무부 장관을 직접 만나 개인교수를 했는데 얼마 안 있어 농무부 장관은 연방의 보건 감독하에 있는 포장업체들에서 눈에 보이는 지방 마블링의 양을 토대로 자유로운 품질평가를 시작하겠다고 제안했다. 미국 프라임 쇠고기가 등장한 것은 1927년이었다. 몇 년 후 정부에서 비용을 댄 연구들에 의해 다량의 마블링이 결코 쇠고기의 연한 육질과 맛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마블링이 풍부한 프라임 쇠고기의 지위는 끈질기게 유지되었으며 미국은 지방 밀도를 고기 품질의 주된 기준으로 삼는 세 나라 가운데 한 나라가 되었다. 다른 두 나라는 일본과 한국이다. - 음식과 요리 P212
소 도체등급 제도 시행 이후 1등급 이상의 소고기 생산을 장려하기 위한 정부의 보조가 이어지고, 식생활에서도 구이문화가 새롭게 정착되면서 마블링이 더욱 선호되었다. 소고기를 구워서 먹을 때 1등급 이상의 소고기가 상대적으로 더 부드럽고 고소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더 많은 마블링을 가진 소고기를 찾았다. 그 결과, 한우 개량과 사양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1등급보다 더 마블링이 많은 1+ 등급이 신설됐고, 이후 1+등급보다 더 많은 마블링을 가진 소고기가 생산되면서 2004년도에는 1++등급을 신설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 들어, 1++등급의 한우고기가 지방이 너무 많아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라는 오해가 소비자들 사이에 팽배해지고, 하이마블 한우고기의 지나치게 비싼 가격의 문제로 말미암아, 1++등급 기준을 완화하는 개정이 이루어졌다. 즉, 1++등급의 마블링 스코어 8, 9번을 7번까지 낮춰서 더 많은 1++등급이 출현하도록 유도하였다. 또한 마블링도 두껍고 거칠게 축적된 것보다 미세하고 섬세하게 축적된 것이 더 높은 등급을 맞도록 조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블링이 많은 고기 1++, 1+등급은 좋은 고기이고 마블링이 적은 2, 3등급 고기는 나쁜 고기라는 소비자의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이미 마블링 지방의 맛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입맛이 쉽게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등급표기 방식 또한 서열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인식의 불변은 한우 농가들도 마찬가지다. 하이마블의 한우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사육 기간을 29개월 이상으로 늘리고 비싼 고열량의 사료를 급여해야 하는 등, 생산비용이 대폭 증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우농가가 그 높은 비용 감당하면서까지 1등급 이상의 한우를 생산하는 이유는, 1등급 이상의 한우고기가 그 투자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정황은 한우농가로 하여금 1등급 이상 소고기가 더 좋은 고기라고 인식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근래 들어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가 맛있고 좋은 고기라는 인식은 끊임없이 도전받고 있다. 채식주의자 단체, 동물복지단체, 환경운동가 단체 및 이런 단체들의 운동에 영향을 받은 언론들이 마블링이 많은 부드러운 고기를 만들기 위해 소에게 옥수수 위주의 곡물사료를 과잉 급여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장기간 비육한 소는 사람으로 치면 고지혈증과 같은 성인병이 발생한 불행한 소이기에 동물복지에 반하고, 너무 기름진 쇠고기는 사람 건강에도 좋지 않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대로 풀밭에서 방목하거나 목초로 사육하여 등급이 낮은 소는 역설적으로 행복한 소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곡물비육이 좋은가 아니면 목초비육 또는 방목이 좋은가에 관한 논쟁은 아메리카노 커피와 믹스 커피의 논쟁과 같다. 설탕을 넣지 않은 쓴 아메리카노 커피를 좋아해 마시는 사람이나 달달한 믹스 커피를 좋아해 마시는 사람들은 서로 싸우지 않는다. “너는 왜 건강에도 안 좋은 믹스 커피를 마시니?” “너는 왜 그렇게 쓴 아메리카노를 마시니?” 하고 싸우지 않고 각자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신다. 곡물비육우와 방목의 목초비육우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기호의 문제이지 선악이나 정의에 문제로 몰고 갈 사안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마블링이 좋은 한우가 지난 30년 동안 국내 시장에서 인기를 누린 건 사실이지만, 마블링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지속되면서 소비자의 인식도 알게 모르게 변화되고 있다. 그 결과, 소도체등급제에서 근내지방도 평가가 완화되었고, 시장에서는 마블링 많은 고기의 맛과 대적하는 새로운 맛의 소고기가 등장하여 틈새시장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건조숙성육, (Dry Aging) 소고기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1인당 연평균 한우고기 소비량이 4kg 조금 넘어간다. 등급판정 결과와 마블링이 깊이 형성되는 부위가 등심, 채끝 등의 특정 부위라는 걸 감안해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1인당 마블링 좋은 1+이상의 한우 등심, 채끝 등의 소비량은 300g 조금 넘어가는 수준이다. 1년 동안 소 지방을 300g 나누어 먹어도 건강에는 별 무리가 없을 거다. 1++이상의 한우 등심의 지방 함량이 20% 정도라면 지방 섭취량은 60g 정도다.
마블링이 건강에 해롭다는 건. 레몬 마켓인 고기에 대한 비대칭 정보를 이용한 거짓 정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