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1960, 70년대 수출 이야기
제 1장 1960, 70년대 수출 이야기
우리나라의 수출은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수출 입국을 표방한 정부의 행정적인 적극 지원과 경제계의 헌신적인 협조로 1962년 불과 5,600만달러이던 수출액은 1968년에 5억달러를 돌파하였으며, 1970년에 이르러서 10억달러 고지를 넘어섰다. 농수산물 수출의 경우, 외화가득률이 거의 100%일 뿐만 아니라 농어민소득증대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었다.
압축성장으로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육류 소비가 급증하던 1960년대, 1970년대, 생돈과 돼지고기의 수출로 국내 소비시장의 확장에 대비할 수 있었으면 당시의 불안전한 피그 사이클 속에서 양돈 농가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수출 규격돈을 생산하기 위해 국제 수준의 양돈 기술들을 습득할 수 있었다. 1980년대, 1990년대는 대일본의 냉동, 냉장 돼지고기 부분육 수출을 통해 국내 육류 유통시장에 현대적인 냉장 부분육화를 가속화시켰다.
1959년 홍콩 수출을 시작부터 1970년대 후반 국내 육류 파동으로 수출이 중단되던 기간 수출에 대해서 알아보자.
1. 1960년대 농산물 수출 상황
1960년대에 한국경제의 공업화 과정은 기간산업의 건설 및 수입대체산업과 수출산업의 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공업화였다. 필연적으로 외화도입을 기초로 하지 않고서는 이룩될 수 없었다. 따라서 제조업 부문의 수입대체산업은 대부분 해외경제와 깊은 관계 속에서만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농림수산물의 수출은 그 규모 면에서는 공산품과 비교할 바 못 될 정도로 저수준에 있으나 국내자원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순외자가득율이 공산품보다 월등히 높고 따라서 거액의 공산품 수출의 경우보다도 국제 수지에 대한 기여도가 한층 더 크며 수출무역이 국내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면서 볼 때 농수산물의 수출은 국내의 농수산업 발전에 대하여 미치는 파급효과가 공산품에 비하여 더욱 직접적이고 광범위하다. 또한, 농수산물의 수출 증대는 국내자원의 개발을 통하여 농민의 소득을 증대시키고 농업과 공업 간, 도시와 농촌 간의 균형적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었다.
농산물 수출이 확장되고 있는 것은 각종 수출농산물에 대한 정부 시책이 주효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관계수출업자의 시장 개척을 위한 꾸준한 투지와 노력의 기여가 컸다.
이처럼 농산물의 수출이 급증한 것은 해방 후 계속된 식량부족으로 실현을 보지 못한 곡물 수출이 1959년부터 시작되어 1962년에는 약 1천만달러의 외화를 획득한 것과 또한 1959년부터 처녀 수출된 생돈이 1962년에는 약 2백만달러의 외화를 획득한 것 그밖에 국제시세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증가를 보인 잠사 수출이 전체 농산물 수출의 확장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그 밖에 각종 농산물이 소량이나마 해외 시장에 진출한 것도 전체 농산물 수출의 확장에 기여한 바도 적지 않았다.
유형별 농산물 수출 동향을 보면 1962년 말 농산물 수출의 수위를 차지하는 곡물이 1959년에는 1,487천달러이었으나 1962년에는 9천 달러를 수출하여 7배의 수출확장을 보였다. 그리고 잠사·갈저(葛苧) ·갈포(葛布) 등으로 하는 농산물가공제품이 1958년에는 871천달러을 수출하였으나 해마다 증가하여 1962년에는 6,481천달러로 근 7배의 수출확장을 보였다. 축산물은 1958년에 209천달러에 불과하였으나 1959년부터 생돈이 대량 수출되어 1962년에는 3,090천달러을 수출하였으며 이는 1958년에 비해서 15배의 수출증가를 보였다. 그 밖에 다른 품목들도 수출액이 상기한 품목보다 적기는 하나 상당한 증가세를 보였다. 농산물 수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다음 표들과 같다(표 1-1,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