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좋겠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니까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니, 너무 부러워요!"
주변사람들에게서 심심치 않게 듣는 소리다. 내 직업은 여행드로잉 작가. 여행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가르치고 글 쓰는 일을 한다. 직업으로서 작가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십수 년이 훌쩍 넘었다. 참 신기하다. 그림을 그려서 십여 년을 먹고살고 있다는 게.
그림작가로서 살아보니 예술가는 혼자만의 힘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변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 도움이 있어야만 비로소 어엿한 한 사람의 예술가로 피어난다. 그래서 내가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여러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어릴 적, 만화책을 좋아해서 보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따라 그리기를 즐겼다. 그 모습을 보던 어른들은 내게 장차 크면 화가를 해도 되겠다며 칭찬일색이었지만, 나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니. 가난한 화가 따위는 되지 않을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배를 곯아가며 사는 가난에 찌든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들은 터라 그런 장래희망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성장하며 청춘의 방황기를 겪는 과정에서 그림은 나를 막연한 현실로부터 오롯이 버티게 해주는 수단이 되었다.
젊은 시절 맞닥뜨린 현실과 환경 덕분에 여러 가지 일들을 해야 했고, 일치감치 많은 곳들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길을 가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는 스케치북을 펴고 펜으로 선을 긋고 물감을 칠했다. 당시에는 지금 같은 장비도, 전문성도 없었지만 여행의 기록으로서 발자취를 그림과 글로 남기는 게 좋았다. 내게는 그저 하루의 일과를 기록한 그림일기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십수 년을 출장과 여행으로 세상을 돌고 돌며 그림을 그리다 보니 한두 권씩 쌓이던 스케치북은 어느새 책장을 가득 채워갔다. 돌아보면 여행과 그림은 내게 일상 같은 것이었다. 청소년기부터 지금까지 한 방향으로만 쭈욱 달려왔던 것 같다. 직업도, 취미도, 노는 것도 어릴 적부터 한결같았기에 한 우물만 주야장천 파왔던 셈이다.
여행과 그림은 삶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누구나 그렇듯 살다가 한 번씩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시련과 실의에 빠질 때가 있다. 내게도 온 세상과 사람들이 달려들어 목을 조르는 듯한 숨 막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시간들은 무섭도록 나쁜 생각들을 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결국 여행과 그림을 통해 삶에 대한 애착과 치유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지금은 거친 풍랑과 파도를 뚫고 헤쳐나가는 노련한 뱃사공이 되어가고 있다.
내게는 늘 작은 꿈들이 있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을 몇 단계로 나누었고, 속도가 더딜지라도 꾸준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했다. 운이 좋게도 그 꿈들은 모두 이루어졌다. 그리고 꿈이 이루어질 때마다 나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된다. 이러한 꿈들은 삶의 동력과 에너지가 되어주기에 앞으로의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최근 갖게 된 새로운 꿈은 재미난 그림책들을 만들고 다양한 에세이를 쓰며 그림책방 하나를 경영해 보기로 결심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여러 세대들이 볼 수 있는 그림책과 삶의 다양한 주제들을 일상에서 대화하듯이 풀어가는 글들을 펼쳐내는 것.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는 것이 지금의 새로운 꿈이 되었다. 사실 그 꿈이 과연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꿈이 있고 목표가 있기에 조금 시간이 걸릴지는 몰라도 나는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꿈이란 것은 인생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 목표이자 동기부여가 된다.
요즘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대한 얘기를 듣게 된다.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 중 꿈과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면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온다. 그리고 그런 꿈조차 꾸기 어려워진 현실이 퍽이나 애달프다.
누군가는 희망고문이라 할지도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꿈꾸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놓아서는 안된다. 아직 꿈이 없다면 스스로와 마주하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천천히 대화를 나누면 된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꼬리칸 사람들이 머리칸까지 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처럼. 가난에 힘겨워하던 사람이 부자를 꿈꾸듯. 어둡고 암울하기만 했던 일제강점기에서 독립을 꿈꾸며 자신의 온몸을 내던져 희생했던 독립운동가들처럼. 억압된 세상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며 민주화투쟁에 앞선 투사들처럼.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꿈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몸부림쳐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꿈이 이루어질것이라라 믿는다. 나는 작은 꿈을 이루기 위해, 나의 생을 위해, 독립운동가처럼, 민주투사처럼 오늘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