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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기 Sep 12. 2015

뜻밖의 선물, 렌

특별하지 않았기에 더욱 값졌던 작은 도시

애틋했던 떼제베 안의 풍경 


 빗물이 거리를 적셨던 어제의 파리는 온데간데없이 어느새 파리의 아침은 햇살로 반짝이고 있었다. 처음 도착해서 보았던 회색빛 거리는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우리는 몽생미셸을 가기 위해 파리에서 가장 큰 역인 몽파르나스 역으로 향했다. 몽파르나스 역은 규모가 너무 커서 TGV를 타는 곳이 어딘지 찾을 수 없었다. 당황한 우리는 현지인들에게 묻고 물으며 기차 출발 시간 10분 전에서야 겨우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우리 옆에는 한 엄마와 아기를 안은 채 앉아 있었다. 아기의 눈은 사랑스럽게 초롱초롱했고, 그런 아기를 보며 엄마는 행복한 웃음을 연신 지어냈다. 순간 똑똑똑, 기차 유리창에서 소리가 들렸다. 쳐다보자 그곳에는 어떤 남자가 우리 쪽을 보고 서 있었다. 'Moi?' 나를 가리키길래 의아해하며 들리지 않는 창밖으로 손짓을 했다. 남자는 하하 웃으며 뒤의 엄마와 아기를 가리켰다. 그는 남편이었다. 아마 직장이 파리에 있어서 엄마와 아이가 남편을 보러 온 것일 테다. 나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에게 남편의 신호를 전해 주었다.  남편과 아내는 한참을 들리지 않는 창문 사이로 사랑을 전했다. 내 가슴도 작게 뭉클해졌고, 이내 기차는 출발하며 그들의 사랑 어린 메시지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오직 아기만이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렌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 파리와는 다른 전원의 모습.

 몽생미셸로 가기 위해서 거쳐야만 하는 렌(Rennes). TGV를 타고 2시간 반 가량을 달린 끝에 우리는 렌에 도착했다. 렌은 관광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정보가 없어 우리는 발로 뛰어다니며 버스 시간 같은 것들을 찾아야만 했다. 몽생미셸로 가기 위해 타야 하는 버스는 하루에 네다섯 대 밖에 운행을 하지 않는데, 역에 내리자마자 우리 눈앞에 버스가 지나쳐 갔다. 아뿔싸, 큰일이 났다 싶어 버스를 쫓아갔지만 야속한 기사님은 쌩 하고 우리를 지나쳤다. 다음 버스 시간은 오후 4시. 우리는  그때까지 작은 도시 렌을 돌아다니기로 결정했다.

현지 식당에서 먹은 점심.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프랑스 아주머니에게 주문을 하느라 힘들었다.

  렌은 작고 평화로운 도시였다.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관광객은 우리밖에 없는 듯 싶었다. 파리의 북적북적한 대도시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사람들은 느긋하고 여유로웠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운동을 즐기거나 산책을 다니는 시민들이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렌은 얼마나 작냐면, 한 시간 가량을 걸으니 도시 전체를 다 돌았을 정도였다. 우리는 시간이 아직도 많이 남았기 때문에, 가 보지 않은 렌의 주거지역으로 향했다.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소도시의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나의 눈에 띈 것은, 커다란 장벽이었다. 엄청나게 높은 돌벽은 아기자기한 집들 사이에 커다랗게 세워져 있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궁금했다. 우리는 벽을 따라 길을 걸었다. 곧이어 어떤 문구가 벽에 쓰여 있었다. 여자 교도소.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택 단지 한복판에 교도소라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동네다.


보편적인 일상에서 느꼈던 여운


오래된 주택들 옆에는 커다란 교도소 장벽이 세워져 있었다.

 한참을 걸었을까, 갑자기 우리가 지나고 있던 한 이 층 집에서 발코니 창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백발의 노신사가 햇살을 쬐러 밖으로 나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에서 반가운 인사가 튀어나왔다. "Bonjour!" 노신사는 환하게 웃으며 낯선 이방인들을 반겼다. "Bonjour!" 우리의 인사는 짧게 끝났지만, 그 여운은 오래 지속되었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한 부분이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교도소 돌벽 사이를 두고 나눈 반가운 인사는 햇살처럼 따뜻했다. 우리네 일상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보편적인 어떤 일상 중의 한 부분이 유난히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던가 하는 것 말이다. 나의 경우엔 이 때가 그랬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낯선 이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넬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어느덧 버스 시간이 다가오고, 세 시간 가량 렌에서 시간을 보낸 우리는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만 같았다. 작은 도시는 평화로웠고 작은 식료품점 하나를 들어가도 사람들은 따뜻한 미소로 우리를 반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 프랑스 시민들의 집들과 일상을 잠시나마 들여다본 것 같아 더욱 좋았다. 우리는 'Mont saint michel'이 적힌 파란 버스에 탔다. 우리처럼 패키지가 아닌 배낭여행으로 몽생미셸을 찾는 사람은 드물었다.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버스는 텅텅 비어 있었다. 우리는 몽생미셸로 향하는 종착지인 보부와(Beauvoir) 마을을 향해 가고 있었다. 특별하지 않았기에 더욱 값졌던 작은 도시 렌은 우리의 등 뒤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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