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다시, 계절
조금은 쌀쌀했던 작년 4월 나는 이혼했다. 노란 코트를 입고 수원 가정법원에 섰던 그날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 사람과 그래도 남보다는 못하지 않은 사이로 남게 될 거란 생각은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내 결혼 생활에 기대했다 무너진 마음은 이혼 후 그 사람의 돌변으로 다시 한번 무너져 버렸다.
어떻게 보면 나의 삶은 그런 방식에 반복이었다. 상대방에게 의존하고 기대한다. 실망한다. 좌절한다. 다시 의존할 누군가를 찾는다. 의존하고 기대한다. 실망한다. 좌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혼자 서는 것이 두려웠다. 상대방이 썩은 지팡이라는 걸 알면서도 혹은 그 사람 역시 온전히 기댈 무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난 늘 의지할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느꼈던 나의 불안감, 존재에 대한 부정, 상대가 원하지 않는 존재일 때의 두려움 등이 바탕이 되었으리라. 혼자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상대에게도 부담스러울 만큼의 짐을 지우며 의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함께'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 사람은 점점 나를 얹혀가려는 존재로 인식했던 것이다.
지독하게 힘들었다. 그걸 인정하는 게. 그 사람을 알고부터 그 사람밖에 없던 내 인생이었는데, 그 사람만을 위해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그 사람은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게 시작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나의 인생을 나로서 정직히 살아가기로 한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내 다리로 한 걸음씩. 느리고 절뚝거리는 걸음일지라도 한 걸음씩. 내 걸음으로 내 길을 가기로 한다.
이혼을 하고 지금까지 정말 많은 방황을 했다. 가장 힘든 것은 상실감이었다. 인생에서 싫든 좋든 많은 순간을 함께하던 이를 잃은 것. 나의 22년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경험. 인생의 목적, 존재의 의미에 대한 상실감. 블랙홀처럼 그 상실감은 나를 집어삼킬 듯이 내 안에서 폭풍처럼 날뛰었다.
계절은 다시 돌고 돌아 작년 4월처럼 쌀쌀한 공기가 가득한 계절로 나를 데려왔다. 지난 계절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 찼던 나라면 이 계절엔 조금은 더 따스해진 마음으로 넓어진 가슴으로 세상을 바라보리라.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그래서 많은 시간이 흘렀을 때 내 삶을 돌아볼 때 나의 삶으로 온전히 뒤를 바라볼 수 있게 되길. 나로 가득 채워진 삶으로 행복할 수 있길. 내 걸음이 서툰 걸음이었을지라도 괜찮다고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길. 이혼이 끝이 아니라 무엇보다 나로 살기 위한 선택이었고 나라는 사람의 인생으로의 시작이었다고 인정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