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혼이야기.26

26.달라도 많이 달라요.

by Jude

지난번 그렇게 나팔관 2차 검사 후에 의외로 정상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이번에는 미리 진통제를 두 알 먹고 비장한 마음으로 통증에 대비했으나 신기하게도 지난번처럼 아프질 않았다. 그리고 내 나팔관은 정상.


검사하다가 뚫리는 경우가 있다는 데 내가 그런 케이스였던 걸까. 정상이란 결과를 받고 나자 마음의 돌덩이가 사라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매 달 임신의 굴레에서 반복되는 괴로움에 심적으로 너무 시달린 결과 당분간 자연 임신을 선택해 보자고 했다.


병원에서 정해 준 날짜에 숙제를 하고 임신이 아니면 실망감에 일주일 정도는 울면서 무기력증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므로 좀 더 자유스러운 방법을 선택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 아기는 소식이 없었다.


둘 다 적은 나이는 아닌지라 결국 난 친구 둘이 임신에 성공했다는 마포의 유명한 병원을 찾아갔다. 제일 유명하신 선생님께 진료를 보았는데 선생님은 날 보자마자 살을 우선 빼야 한다고 하면서 날 무슨 임신을 위한 로봇을 보듯 했다. 이 기능, 저 기능은 추가하고 임신을 위한 불필요한 요소는 제거하고… 난 내가 아니라 임신을 위한 부속물로 여겨졌다.


그 병원은 갈 때마다 유전자 검사니 뭐니 거의 항상 검사를 했는데 기본 30만 원은 나오는 병원비도 부담이었다. 병원에서 찝찝한 기분으로 나오면 조금 있다 그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뭐 했는데 병원비가 이렇게 많이 나왔어?”

결제를 그 사람 카드로 하다 보니 바로 결제 문자가 갔나 보다.

“뭐 유전자 검사 이런 거 하자고 해서 했어.”

그 사람의 깊은 한 숨. 그리고 이어지는 말.

“그 병원은 안 되겠다. 갈 때마다 비싼 검사만 하자고 하는 것 같아.”


가뜩이나 임신 로봇이 된 기분이라 나도 그다지 그 병원에 가는 게 유쾌하지만은 않았는데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치 내가 돈만 쓰는 것 같은 그 사람의 말투에서 불쾌함을 느꼈다. 그래서 다시 병원을 다니지 않기로 했다.


나는 마치 내가 시댁에선 며느리 모드 버튼을 누르면 그 일을 하고 부인 모드를 누르면 부인 모드로 변했다가 돈을 벌어야 할 땐 돈 버는 모드 이제 너 임신해 그러면 임신 모드로 바뀌어야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는 뭐지?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난 우리 엄마도 돌보고 다들 나를 착하다고 말해. 하지만 정작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 내가 있고 싶은 위치는 어디일까? 이런 질문들이 내 마음 가장 낮은 곳에서 항상 조용히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때 우린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 사람의 그런 태도들은 나에게 ‘아 꼭 아기를 낳지 않아도 이 사람은 고양이를 키우며 나와 오손도손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우린 고양이들을 정말 사랑했기에 주위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 키우고 있었다. 대다수의 어른들은 고양이들 때문에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타박을 주셨지만 그 사람과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비염이 심한 편이었기에 아침에 눈을 뜨면 청소기를 돌렸다. 고양이의 털은 어마어마했으므로 하루에 청소기를 다섯 번은 기본으로 돌렸고 까만색 옷은 포기한 지 오래였다. 두 마리 다 하얀색이었으므로. 하지만 이렇게 고양이에 대해 서술하는 순간에도 내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는 건 고양이들이 정말 사랑스러운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염은 어쩔 수 없어 청소기와 비염약을 달고 살았다.


그 사람은 청소기를 돌린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 사람은 비염이 없었으므로 나의 고통을 몰랐고 날아다니는 털 뭉탱이를 봐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리고 휴일에 내가 자기보다 늦게 일어나는 날엔 “자기야~밥 줘”라고 소리쳐 날 부르곤 했다. 그 소리는 너무나 스트레스였다.


그 사람은 밥에 민감했다. 본인이 밖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밥은 꼭 내가 차려서 바치길 바랬다. 그 사람이 먼저 밥을 차려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이혼하기로 한 후의 몇 주간이었다.


심지어 그런 일도 있었다. 퇴근 후 저녁을 차리는데 난 요리를 못하는 사람이라 한 시간을 서서 밥을 차리느라 기진맥진했다. 그 사람은 리클라이너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는데 아무리 밥을 먹으러 오라고 해도 오질 않았다. 마음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왜 밥을 차리면 제 때 오지 않냐고 묻자 그 사람은

“밥이 안 놓여 있잖아.”

라고 말했다.


나는 밥을 먹으며 최대한 좋은 말로 내가 밥을 차리면 숟가락 젓가락 정도는 놔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밥만 이라도 떠서 놔줬으면 좋겠다라고 했더니 그 사람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내가 밥상을 다 차려놓으면 나에게 백 프로 고마운 마음이 드는데 자기가 밥을 뜨거나 수저를 놓거나 하면 고마운 마음이 칠십 프로로 줄어든 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 상을 차리는데 자기가 동참했기 때문에.


결국 점점 언성이 높아졌고 화가 난 그 사람은 숟가락을 상에 던지며 “밥 한번 얻어먹기 힘드네!”라며 자릴 떠났다.


내가 그렇게 많은 걸 바랬던 걸까. 난 그저 수저를 놔주길 바랬을 뿐인데.


그런 상처들이 쌓여서 생채기가 난 지 오래였다. 난임 병원을 다니며 힘들고 지친 마음을 기댈 수도 없었고 위로받을 수도 없었으며 난 그저 없는 돈만 축내는 존재로 느껴졌다.


우린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내가 맞춰 주는 것에 익숙해진 그 사람은 내가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피력하면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날 부셔트렸다. 그럴 때 마다 나의 자존감은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