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혼이야기.27

27. 시할머니와 나

by Jude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다. '시'자가 붙으면 그렇게도 가족이면서 가족이 아니고 중요한 순간에는 남이 되는 것. 나는 나름대로 -가장 위험한 전제이지만- 시할머님과 각별한 사이였다고 생각했다.


시할머님은 여장부였다. 여든이 넘으신 연세에도 자신과 남편이 평생을 모아놓은 돈을 이런저런 이유로 다 탕진해버린 자기 아들의 식사와 빨래 등 집안일을 비롯해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서 각별히 절약하는 생활을 거뜬히 감당하고 사셨다.


그 사람과 연애 중에 그 사람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때 시할머님이 점심으로 콩국수를 해주셨다. 난 원래 콩국수를 좋아하진 않지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먹었다. 그런데 너무나 놀랍게 전혀 줄어들지를 않았다. 마법의 콩국수 같았다. 아무리 아무리 열심히 먹어도 줄지를 않았다. 정말 울고 싶었다.


결국 난 마법의 콩국수를 반도 먹지 못했고 시할머님이 제일 싫어하는 음식 남기기를 하고 말았다. 시할머님은 한국전쟁을 직접 겪으신 분이어서 음식을 남기는 것을 가장 싫어하셨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난 콩국수는 쳐다도 보지 않는다. 콩국수는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되었다.


나는 어릴 때 친할머니가 중풍으로 계시다 돌아가신 기억밖에 없고 그조차 흐릿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데이터가 전혀 없었다. 친할머니 역시 우리가 딸이었기에 우리를 미워하고 싫어하셨다. 외할머니도 어릴 때 한번 정도밖에 본 기억이 없어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난 시댁의 가장 큰 어른인 시할머님께 가장 잘하고 싶었고 잘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평생을 힘들게 사셨는데 지금은 더 힘들게 사시는 모습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더 마음을 드리고 더 챙겨드리고 싶었다.


우리 엄마가 입원했을 때도 똥오줌은 못 받는다고 빨리 간병인 구하자고 했던 내가 시할머님이 입원하셨을 때 소변을 받아야 했던 현실도 받아들였다. 자신의 딸들과 친손녀들 조차 외면하고 돌아보지 않을 때도 그 사람과 나는 항상 가장 앞에서 시할머님을 돌봐야 했다.


그 사람이 무엇보다 시할머님과 각별했고 나도 그런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했으며 나도 시할머님에 대한 연민의 정이 컸기 때문이다. 명절이나 벌초 때 우리 아버지 뼈를 뿌린 곳에는 가지 않으면서도 시댁의 모든 행사에 참여한 것은 그런 것이 시할머님의 가장 큰 낙이였기 때문이었다.


거느린다는 표현은 이상하지만 어쨌든 우리 부부를 거느리고 자신의 아들까지 데리고 나름의 완성체로 사촌들과 큰집 등을 다니며 자신의 건재함을 나타내시는 것. 그럼 난 인형처럼 다소곳하니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그림자처럼 있었고 필요할 때는 설거지나 커피 타기 등 잔심부름을 했다. 말 잘 듣는 착한 며느리 모드로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회사에서 바빠서 야근을 하다가도 시할머님의 전화가 오면 10분고 20분이고 전화통화를 하곤 했다. 집에 있는 노인은 심심해서 여기저기 전화를 했고 나중엔 귀찮아서 딸들도 전화를 받지 않자 나에게 그 순서가 온 것이었다. 하지만 난 수시로 오는 시할머님의 전화에도 한 번도 귀찮아하는 내색 없이 통화를 했었다.


통화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이 이야기 다음엔 무슨 이야기를 하지? 바쁘게 이야기 주제를 생각하고 어색한 침묵 같은 게 흐르지 않도록 애썼다.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매일매일을 보내면서도 어딜 가도 시할머님께 드릴 티나 블라우스, 스카프 이런 것을 꼭 하나 둘 사서 드리곤 했다.


그렇게 내 마음을 썼다. 시할머님께. 어떻게 보면 친정보다 더 많은 마음과 성의를 드렸는데. 뒤통수를 맞는 일이 생겼다. 역시 시댁은 시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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