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4년 전의 일인가.
나는 당시 L모 회사에 재직 중이었고, 친하던 동기 한 명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 두었다.
"형, 나 잠깐 해야할 일이 생겼어. 회사 좀 그만 둘 까봐."
그 동기 녀석은 그렇게 성실한 성격의 친구는 아니었다. 신입사원 연수 중에도 늦잠 자서 지각을 하기 일쑤였고, 연수 중에도 낮잠을 자서 태도 점수가 좋지 않았다. (늦잠과 낮잠의 이유는 전날 과음이었다.) 좀 괴짜 같았다. 아무 계획없이 회사를 그만 두면 안될 것 같은데, 나는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지금은 비밀이고, 나중에 잘되면 알려줄께요.
그리고 그 친구가 회사를 그만둔 지, 6개월 째, 그가 로스쿨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 때가 있다.
흔히들,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고 얘기한다. 7살인 내 딸에게도 그렇게 얘기한다. 아빠는 이미 늦은 듯이.
14년 전이면 내 나이 서른이었다. 무엇인가 새로이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핏덩이 꼬꼬마인데ㅎ
14년 전에 로스쿨에 간 대학 동아리 동기 녀석 한 명과 L모 회사 동기 녀석 모두 변호사로서 현재 꽤 커리어가 화려하다. 걔 중 한명은 에너지/가스 쪽 자문으로 TV에도 종종 얼굴을 비추고, 회사 동기는 지금 서울 모 경찰서에서 총경으로 재직 중이다.
14년 전이면 로스쿨 1기다.
대학 동아리 동기가 했던 말이, 뭐든 처음 시작하는 제도를 잘 활용해야해, 지금이 기회야. 라고 했다.
물론, 자기 합리화이지만 나는 대학원에 갈 학비도 없었거니와 지금 힘들게 들어온 직장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할 만한 배포가 있지도 않았다.
지금이 공부할 때
10년 전 쯤인가. H사에서 근무할 때 회사 동료가 대학원에 들어간다고 했다. MOT라고 공학 분야의 MBA 비슷한 거라고 했다. 지금이 MOT 초창기라 장학금 지원도 되고, 석박 통합과정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박사학위까지 도전할 수 있다고 했다.
또 핑계지만, 나는 학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시간도 없다고 얘기했다. 사실은 나는 공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회사 동료는 MOT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여, 서울 모 대학의 교수 자리를 얻었다. 하지만, 지금 교수보다는 현 회사에서 인정 받고 있어서, 대학 교수 임용은 포기하고 추후 50대 이후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 꿈을 얘기한다. 그에겐 퇴직 후의 삶이나, 바로 회사를 그만 두더라도 먹고 살 수 있는 Plan B가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자기 합리화의 함정
공부는 언제하면 좋을까. 핑계는 많다. 아내는 '대학원은 결혼 전에 마쳤어야지. 애는 누가 보고 소는 누가 키워'라고 했다.
맞아. 지금 공부하는 건 배부른 소리지.
라고 자기 합리화 하지만, 그때 공부했더라면 지금 더 좋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라고 말하는 지금 공부했더라면 5년 후에 더 좋은 기회가 열리지 않을까.
그때 ~ 했더라면,의 후회의 도돌이표를 한시라도 빨리 끊는게 좋다. 그래서 일단 나는 내년도에 대학원 진학을 계획 중에 있다.
그때 대학 동아리 동기의 말이 맞았다. (40 중반이 되어 뒤돌아보니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이 많다.)
뭐든, 처음 시작되는 제도를 적극 이용하는게 좋다. 14년 전 당시 로스쿨 자체의 시스템이 아직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았고, 먼저 학생 모집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장학 제도도 좋았다. 뭐든 어수선할 때 빈 곳을 치고 들어가는 것이다.
회사 생활이 고단하더라도, 집에 돌아와 조금이라도 공부를 해둔다면 분명 후에 예상치 못한 길이 또 열릴 것이다. 그런 사례들을 많이 접했다. 이제는 남의 사례가 아니라, '내가 공부했더니 이렇게 삶이 달라졌더라.'는 간증을 펼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