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균된 상태로 돌아가야지

by 꼬르따도

회사는 제2판교에 있다. '직장인의 딴짓' 시리즈에서 언급했듯 엄밀히 말하면 사실 제2판교는 판교가 아니다. 판교 신도시의 구획은 분당구에 한정되어 있는데 제2판교는 성남시 수정구에 소속되어 있다.


판교가 가지는 상징성이 있어, 그 연장선상에서 제2판교로 명명된 듯 하다. 주위 사무실들은 거의 다 건설이 완공된 듯 하고, 회사 옆 뒤로 아파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나는 회사가 청계산 자락에 있어, 내 자리가 산이 훤히 보이는 사무실 남쪽으로 자리를 옮겨올 때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눈만 돌리면 시야가 초록초록해서다. 제2판교의 장점은 은근 초록초록한 공간이 많다는 것과 도시가 만들어지고 활력을 띠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다는 점이다.


후배와 커피를 마시다가도, 여기 공사장 뷰 괜찮아. 한 달 후면 건물이 올라와서 다른 풍경이 될, 시한부 풍경이니 잘 봐둬, 한다.


하지만, 곧 아파트가 완공이 되면 지금의 초록초록을 누리는 이 환경은 사라지겠지. 지금 마음껏 눈에 담아야 겠다. 사치스럽게 초록을 눈에 담아야겠다. 그리고 받아 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하루 업무 시작을 할 수 있는 활기가 돈다. 피가 돈다. 피 속에 커피가 돈다.


점심 때는, 제2판교 다리 넘어로 이직한 후배가 찾아왔다. 후배는 꽤나 관계성이 좋았는지, 지금의 회사 동료들이 자주 술자리에 부르기도 하고, 가끔 공동경비구역 내 남북 병사가 판문점에서 만나듯 제2판교 동쪽과 서쪽을 잇는 다리 근처의 카페에서 함께 커피도 마시고 하는 모양이다. 나는 전자책 수익금에 내 돈 조금 보태 만든 '직장인의 딴짓' 종이책을 후배에게 전달해줬다. 부끄러운 책이지만, 이런 자리를 빌려 작가 흉내를 내본다. 책의 첫 페이지엔 'OO님, 무탈한 회사 생활을 기원합니다.'라는 문구도 적어놨다.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 고맙다는 인사로 커피를 하나 사서 다리 맞은편 후배의 회사 앞까지 배웅해줬다. 근데, 오늘따라 날이 너무 덥다. 왔다 갔다 고작 20분일텐데 그 사이 나는 땀범벅이 되어 촛농처럼 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기분이다. 숨을 들이마시면 습기 가득찬 고온다습한 공기가 목구멍에 딱 걸린다. 빨리 시원한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지 하다가 시계를 보니 아직 점심 시간이 10분이 남아있어, 아니야, 좀 더 바깥 공기를 마시자 싶어, 주변을 더 어슬렁 거렸다. 걸음수를 보니 6000보를 조금 넘겼다.


이렇게 뜨거운 햇살 아래 있으면, 살균 되는 기분이 든다. 사실, 내 머릿속은 가끔 두서없이 전 세계를 횡단하고, 가끔은 까치처럼 원치도 않는 쓰레기 더미 같은 생각을 주워와서 정신도 없고, 뒤죽박죽이다. 머릿속이 남해 바다 바닥에 딱 걸린 안강망 그물처럼 엉켜있고, 그물의 구멍이 촘촘해서, 그 어떤 쓰레기 같은 생각도 도통 빠져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 같은 날은 뜨거운 햇살 아래 서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사랑의 하나님, 머릿속에 사는 병균들을 박멸해 주세요. 쓰레기 같은 생각들을 태워주시고, 심플한 마음을 주세요.


땀 한줄기가 삐질 뺨을 타고 흐른다.


멸균이 되었겠지.

휴, 이제 조심스럽게 무균의 상태로 사무실로 돌아가야지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