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숟가락을 내려 놓는 것으로

by 꼬르따도

예전회사에서의 내 별명은 '서얼록' 이었다. 별명은 추리 소설의 주인공 셜록 홈즈의 셜록과 내 가문을 상징하는 서씨의 합성어이다.

예측했듯, 추리력이 상당하고 굉장하다는 의미에서 회사 동료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시작은 이렇다. 같은 팀의 여직원이 업무를 도와줘서 고맙다면서 내 책상에 하리보 젤리를 올려두었다. 그리고 며칠 후, 다른 팀의 남직원과 점심 때 족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 남직원이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하리보 젤리 봉다리를 꺼내서, 나에게 한웅큼 집어 가라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뭐지? 요새 하리보 젤리 먹는게 유행인가?' 라고 생각하거나,

'얼마전에도 나 젤리 먹었는데, 나 젤리 좋아하나?'라고 생각하고 말지만,

과연 서얼록은 다르다.


'둘이 뭔가 있구나!'


하리보 젤리라는 작은 단서 하나만으로 이렇게 훌륭한 추측을 해내고 만다. 직감이 남다르다. 내가 이 사실을 발견한지 6개월도 안되어 둘은 회사에 청첩장을 돌렸다. 나는 하리보를 통해 그 둘의 관계를 예측하고, 그 가설에 맞게 관찰한 결과 둘이 사귀는게 틀림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팀 여직원이 빨리 퇴근하는 날엔, 옆 팀 남직원도 일찍 퇴근 하던 경우라던가, 팀 여직원이 얼마 전에 다녀온 맛집에 대한 얘기를, 옆 팀 남직원이 사전에 그 음식점에 대한 후기를 나에게 물었던 경우가 있었다던가, 하는 종합적인 상황을 놓고 봤을 때 두 사람은 사귀고 있다는 걸 캐치해 낼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건 마치, 팀 회식자리에 나만 소주 병나발을 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남들과 발을 맞추기 위해 금주를 하는 능력과 비슷하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 이건 해 본 사람만이 안다. 쉽지 않


서두가 길었다.


나는 6개월간의 옆 팀 신입사원에 대한 관찰을 마치고, 오늘 이렇게 결론을 내었다.


'회사 밥에 뭔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회사에만 들어오면 죄다 턱선이 사라지는 이유를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우리 팀원들도 날이 갈수록 토실토실해진다. 이런 경우는 군대 훈련병 시절과,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가, 가둬 놓고 애들을 사육하던 case 이외에는 본 적이 없다. 팀원들은 하루 9시간을 같이 있고, 많으면 세끼, 적으면 한끼를 공유한 사이니 그들이 먹는 식습관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었다. 내가 봤을 때 딱히 간식을 먹지는 않고 회사에서 주는 식사만 잘 챙겨먹는다. 그리고 밥을 먹고 나면 반드시 식후땡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신다. 하루에 한 캔 정도의 탄산음료도 반드시 마신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고 주로 앉아서 일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매일매일 살이 오르고 있다. 이목구비가 두루뭉실해면서 다들 귀염상이 되어 가고 있다.


나는 여기서 우리 회사 식단에 문제가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새로운 관찰 대상자가 필요한데, 마침 내 앞에 신입이 들어왔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내 가설이 맞았다는 증명을 여기에 써 내려가는 것이다.


미국도 LA나 뉴욕같은 대도시의 젊은이들은 자기 관리가 투철하여, 식단 관리와 운동을 통해 어느 정도 건강한 체형을 유지한다. 그에 반해, 멕시코 접경지역이나 앨라배마 버밍험(앵무새 죽이기, 배경 아입니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입니다.) 같은 저소득층이 많은 도시엔 고도 비만자들이 많다. 이를 테면, 네이버나 현대자동차는 LA와 뉴욕이고, 우리 회사는 버밍험인 셈이다. 버밍험의 식단엔 가공육이 많고, 정제 탄수화물도 많다. 오늘 식단을 보자. 라면사리를 곁들인 부대찌개, 소세지, 잡채, 김치. 어제 식단은, 고깃집 볶음밥, 군만두, 갈비탕 국물.


나는 점심 시간 회사 식당에 앉아, 내 증명된 내 추론이 어디까지 맞나 주위를 둘러 보았다. 배 나온 사람 옆에 배 나온 사람 옆에 배 나온 사람 옆에, 배 나온 사람... 그만 둘러 봐도 되겠다.


나는 조용히 밥그릇에 담긴 밥 양의 절반을 덜어내는 것으로, 그동안의 연구를 마무리한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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