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22년. 당시 코로나가 재창궐하던 시기의 이야기다.
아내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첫째는 다섯살이었다. 어느 토요일 아침, 아내가 갑자기 열이 난다면서, 코로나가 의심되니 첫째를 데리고 밖에 나가달라고 했다. 그래도 임신 중인 아내를 홀로 놔두고 나갈 수 없으니, 작은 방에 딸래미와 내가 칩거하겠다, 있는 줄도 모르게 조용히 있겠다 했다. 하지만, 아내는 완강했다. 좀비 영화 클리셰처럼 나에게 감염되고 싶지 않으면 빨리 떠나, 여기에서 얼른 벗어나 하는 아내의 외침이 있었다.
나는 그 요청에 딸아이와 함께 평소 가보고 싶었던 행주산성 근처 카페에 들렀다. 딸아이와 맛있는 케잌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예쁜 카페 소품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그 사진을 아내에게도 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카톡이 울렸다. 아내가 보낸 카톡에는 코로나 검진 키트에 선명한 두 줄이 그어진 사진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두 줄을 보았는지. 둘째 임신 확인을 위한 키트에도 선명한 두 줄이었다. 피임을 했는데 어라, 그럴리 없는데 어라, 두 세번 더 테스트 해도 전부 두 줄 이었다.(둘 째는 현재 32개월 차다. 너무 귀여움 꺄악) 코로나도 열이 조금 난다 싶으면, '혹시나 설마'가 무색하게 여지 없이 두 줄이었다.
그리고선 오늘은 집에 들어오지 말라는 명령이 뒤따랐다. 나는 재빨리 평소 가보고 싶었던 강화도의 에어비앤비를 신청해서, 김포에서 강화도로 달려갔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지금의 피난길을 오히려 여행길로 바꿔, 고통을 여행으로 승화하고픈 마음, 슬픔과 기쁨을 적절히 섞어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제이야, 아빠 말 잘 들어. 지금은 비상 상황이아. 너 떼쓰고 그러면 안돼. 우리는 지금부터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야. 알아 들었지?
딸 아이에게 차 안에서 강하게 정신교육을 시켰다.
엄마가 코로나 걸렸다고 하면 심리적으로 동요힐까봐 그 얘기는 하지 않았다. 아이는 아빠가 편의점에서 맛있는 거 잔뜩 사주니 나랑 다니는 여행을 꽤 좋아한다. 동요는 커녕, 약간 즐기는 눈치다.
강화도 옛날 한옥에서 하루를 묵는 중에, 폭우가 내렸다.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까무룩 잠이 든 '눈썹이 가지런한'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 봤다. 평온한 시간이었다. 홀로 넷플릭스를 보면서, 막걸리 한 병을 마셨다.(비밀임) 홀로 있는 아내 걱정을 하다 잠이 들었던 듯 하다. 다음날 맑개 갠 아침엔, 딸아이와 편의점 가면서 논길에서 개구리도 봤다. 이 이야기는 딸아이가 '그때 비 많이 왔잖아. 우리 개구리도 봤잖아.'하는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다.
그렇게 강화도에서 일박을 하고, 계속 거기 거주할 수 없어 잠시 집에 들려 옷가지와 세면 도구를 챙기고 바로 비행기를 타고 딸아이와 광주로 내려갔다. 부모님이 비상사태, 이머전시라면서 거처가 불안정하면, 광주로 내려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서울에선 장모님이 틈틈이 집에 들려 아내를 돌봐주기로 했다.
광주에 내려온 지 이틀 차에 딸래미에게 열이 나기 시작했다.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건 틀림없이 코로나다. 바로 코로나 키트 검사를 했더니 두말 하면 잔소리, 두 줄이 뜬다. 양성이다. 이번엔 연로하신 부모님을 피신시켰다. 부모님은 광주 누나네로 거처를 옮기고, 부모님 집은 나와 딸래미가 차지했다. 그리고 부랴부랴 광주에 있는, 네이버 평점이 높은 소아과를 찾았다. 의사 선생님이 무슨 일로 오셨냐고 묻자, 시간이 없는 나는 '제 딸 아이 코로나가 의심됩니다. 키트에는 양성이 나왔어요.' 라고 말을 했다. 대답을 듣자 마자, 의사 선생님은 두 손을 가로지으면서 이건 검사할 필요가 없다, 양성 나왔으면 양성이 맞다면서 우리를 자리에 앉지도 못하게 했다. 처방해 드릴테니 그대로 나가시라고 문 앞까지 배웅을 했다. 그러면서, 보건소에 친히 연락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의사 선생님의 행동이 서운하긴 했지만, 그래 지역 사회이니, 병원에서 코로나 양성 환자가 나왔다면 피해를 볼 수 있겠다, 고 속 깊은 이해를 했다.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고 약국에 들려 재빨리 약을 타서 택시를 타고 부모님 집에 축 늘어진 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 제이야, 아빠 말 잘 들어. 아빠가 주는 밥 잘 먹어야 한다. 그리고 약도 잘 먹어야 해. 잘 쉬고 잘 먹으면 금방 낫는다. 알았지?
아이는 기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열이 나기 시작했다. 보나마나다. 코로나 키트로 검사를 했다. 이쯤에서 반전이 있으면 좋겠지만,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나도 감염이 되었다. 아픈 사람이 아픈 아이를 돌보고 있는 상황이다. 열이 나니 머리가 아프고, 오한이 나고, 몸이 붕 뜬 느낌이다. 현실 감각이 무뎌지고,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상태가 되었다. 큰누나가 집에 찾아와 먹을 것을 집 안으로 넣어 주고 갔다. 곧이어 전화 벨이 울렸다. 보건소다. '선생님 거주하는 지역은 어디신가요? 광주에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약 잘 챙겨 드시고, 물도 많이 드세요.'
그렇게 광주 부모님댁에서 아이와 일주일 격리를 마치고, 병마를 이겨내고 건강하게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역엔 아내가 웃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 많았지? 우리 서씨들."
마침 광주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지금 어디신가요?
"네, 격리기간이 끝나 바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광주 보건소 담당자의 후련함이 느껴진다. 이제 자기 관할이 아닌 탓일까.
그리고 3개월 후 추석에 광주에 내려갔더니 큰 누나가 말한다.
"그때 아빠, 엄마 다 코로나 걸렸잖아. 그리고 엄마 아빠 우리 집에 와 계셔서 나랑 우리 가족들도 다 코로나 걸려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엄마가 곁눈질 하더니 누나 옆구리를 툭친다.
"말하지 말랑께, 야는 꼭."
죄송합니다. 어머니, 코로나 숙주는 제 아내예요.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파하러 비행기를 타고 전속력으로 광주에 내려왔네요. 제가 꼭 이 감동적인 스토리를 제 아내에게 전달할께요.
아내는 만삭이라 서울 집에 홀로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아내에게 시작된 코로나가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이 이야기를 비밀로 하고 있다.
이제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