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참 그렇다. 테토남이 되는 건 쉽지가 않다.
오늘 아침 QT를 하는데, 로마서 2장 29절 말씀이 마침 이렇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아멘.
바꿔 말하면 할례가 마음 속에 있듯, 테토남도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내는 건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 나는 늘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테토남이라고 마인드셋을 하고 일과 사람을 대하는데, 의식하면 할 수록 나는 되려 심약하고 예민한 성정인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예민하고 섬세한게 나쁜 게 아닌데, 난 어렸을때부터 늘 남성성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사람은 대게 본인에게 부족한 걸 소망하니까. 그래서 하루에 팔굽혀펴기를 120개(그 사이 20개 더하게 됨) 하고 아내에게 알통을 만져보게 한다. "어때? 근육 불룩불룩해?"
후배들이 되도 않는 개그하면 "또 강냉이 털리고 싶어? 그딴 소리할 거면 집에 가." 뭐 이런 식으로 말한다던가. 괜히 쎄보이는 언어를 선택하곤 한다.
근데, 회사 생활에선 나같은 테토남 호소인은 마음 속에 말을 삼키려고 노력하는데, '나 힘들어요'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에게 떡이 하나 더 간다는 사실. 힘들다고 판을 깔고 혜택을 야금야금 가져 가는 애들을 보면, 아 나 진짜 쟤들 어쩌냐 하는 마음이 들고, 이 마음이 쉬이 사라지지 않고 하루종일 머릿속에 이고 산다. 저러면 안되는데, 말을 할까 말까. 나도 힘들다고 나도 어려운 일을 한다고 티를 낼까 말까. 말을 한다고 더 힘든 것도 아니고 말을 안한다고 덜 힘든 것도 아닌데. 힘들면 우쭈주 하고 혜택이 하나 더 가니까, 신경이 쓰이고 공평하지 못한 처사라고 괜히 입이 불퉁해진다.
가만. 이건 진짜 내가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자라서인가. 그래서 이렇게 쉽게 꿍해 지는 것인가. 여유 있는 사람들은 태도나 생각도 여유롭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것 얼마나 한다고 인센티브 다 가져가라고 해. 나도 그런 태도를 하고 싶다. 나는 속이 왜 이렇게 좁은가. 뭐 나는 궁핍했지만 그래도 헐벗거나 굶지는 않았다. 대학 학비 지원은 집에서 못해 줬을 텐데, 다행히 마사회에서 벽오지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장학금 지원을 받았다. (감사해요, 가끔 말밥 주러 가야 하는데. 베풀면서 살겠습니다. 경마는 건전한 취미입니다!) 뭐 집세 밀린 적도 없고. 그래도 애들이 내가 잘 산다고 여길까봐 괜한 말을 하게 된다. 나이가 10살이 넘게 차이가 나는데 그래서 회사 생활도 10년 넘게 했는데, 그래 경제 수준은 내가 더 나을 수도 있지. 부족하지 않다고 형편이 나은 건 아니다. 사람이 목적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생각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고 그게 내가 성과를 낮게 받아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다. 근데 은근 그런 뉘앙스가 깔려 있는 듯 해서.
"나는 진짜 너네들이 부러워. 우리 부모님도 월급을 따박따박 받아오는 경제인이었으면 나도 경제에 빨리 눈을 떴을텐데. 경제 관련 DNA는 타고난다고 하잖아. 우리는 양가에 매달 50만원씩 용돈을 보내. 나 연애할 때 와이프가 놀란게 있는데, 어느 날 우리 아빠가 나에게 서울 결혼식 좀 다녀오라는 거야. 그래서 알겠어요, 하고 축의금 20만원을 내 돈으로 했어. 근데 그게 그렇게 '현 와이프 구 여자친구'에게 이상하게 보였나봐. 돈을 받고 축의금을 해야지 왜 오빠 돈을 내? 나는 가족이니까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했는데 남들 생각은 좀 다르더라. 결혼 축의금도 부모님이 딱 절반 가져가셨어. 결혼식 비용하고 신혼 주택 자금, 집으로부터 지원 받은 게 일절 없는데도. 혼자 살 때는 지금 보다 더 가족에게 용돈을 많이 보냈지. 그렇다고 나는 잘 살았냐? 저기 정자동 옥탑방 전세 5000만원짜리에서 살았는 걸. 그치만 그때 옥탑방 생활이 너무 즐거웠다고. 니네는 아직 부모님이 현직에 있고 정년퇴임도 안했다니, 나는 그런 삶은 어떨까 상상도 잘 안돼. 용돈 보내지 않아도 되는 집안의 사정은 어떨까 생각도 해본 적이 없어."
마음 속에만 있는 테토남은 소용 없다. 그냥 쫌스러워도 말을 해야해.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한다. 궁핍함에 여러 서사를 붙여서 없는 말은 아니지만, 과장스레 포장하면 효과는 더 좋더라.
이런 쫌스러운 말을 하게 되는 날이면, 테토남 호소인이 테토남의 명성에 먹칠을 한 기분이 든다. 그러면 조용히 회의실에 들어가서 평소보다 팔굽혀 펴기를 20개 더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