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른 척 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by 꼬르따도

케데몬은 넷플릭스에서 방영 시작한 바로 그 날, 퇴근길을 활용해 시청을 했다.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거 너무 잘 만들었잖아, 재밌네! 였다. 사실 재밌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까지 히트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따라온 생각은 데몬이 우락부락 무섭게 생기고 귀마의 목소리도 낮고 음험해서(이병헌 목소리라고 함), 우리 딸아이에겐 못 보여주겠다, 싶었다. 마침 며칠 후, 팀장님이 초딩 3학년생인 딸과 함께 시청하다가 딸 아이가 귀마가 무섭다며 울었다는 소리를 듣고, 내 생각은 더 단단해졌다. 안되겠다, 보여주지 말아야지.


근데 남들이 다 좋다고 하면 그런 약점들이 상쇄되기 마련이다. 어린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조금 거시기 한 부분도 있지 않나 싶었는데, 남들도 다 보는데 내가 너무 유난이고 까탈스럽나로 생각이 바뀐다.


이거 늘 느낀 거지만 내가 문제네 싶은 거다. 내가 또 너무 혼자서 야단법석이었네 싶은 거다.

이건 내 내면의 목소리다. 사람들과 있으면 유달리 내 성격 때문에 까탈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많이 좋아졌다 싶으면서도 아직도 이 부분 때문에 회사생활이 곧잘 힘들다. 최근에도, 내가 팀장 대행을 하다 보니 평소 몰랐던 부분들을 뒤늦게 인지하게 된 게 있다. 그게 공평하지 못한 처사로 너무 속상한거다. 나만 바보된 기분이랄까. 그래서 왜 그렇게 했는지 자초지정을 따져 묻고 싶은 생각이 바로 머리에서 튀어 나왔다. 하지만, 하루, 이틀 잠잠하게 지내다 보면 금방 사라질 생각이라는 걸 알아서, 스스로 유난 떨지 말자, 모른 척 하자로 마음을 선회했다. 지금은 그 사안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닌데 괜찮은 것 같다. 물론, 우리 회사에 외주 용역으로 들어오는 아주 오래 알았던 컨설턴트 분이 '신경 쓰지 말고 모른 척 해' 라는 한마디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말 다음이, 서책임이 예전에도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일을 그르친 경험이 있어서 내가 따로 불러서 조언하는 거야. '걔들이 잘한 건 아니지만 신경 쓰지마. 내가 모른 척 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딸아이가 요새 빠져있는 속담집에도 있다. 아빠 내가 문제 낼께 맞춰봐.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맑은 물이라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맑은 물도 아니고 맑은 물인 척 하는 사람을 더 재수없게 생각한다. 괜히 이슈를 꺼내서 굳이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

지난주 우리 딸아이와 함께 혜화동 어린이과학관에 가는 길에, 딸아이가 말했다.


- 소영이는 케데헌을 스물일곱 번이나 봤대. 나만 못 봤어. 우리 반에서.


우리 딸만 못봤다니 그럼 안되지. 돌봄 교실 선생님이 케데헌 주인공들 출력해와서 색칠 공부를 시킨다는데 걔네가 누구인지 우리 딸만 몰라선 안되지. 그럼, 안되고 말고.


아내는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주는 걸 굉장히 탐탁치 않아 한다. 근데 어떡해, 수업 시간에 교재로도 쓴다는데. 소영이는 무려 스물일곱 번이나 봤다는데.


- 무슨 그런 소재로 수업을 하냐고. 참 그 선생님도 그렇다. 영상 노출을 너무 자연스럽게 해.


아이는 혜화동에 오고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케데헌을 시청했다. 이미 골든이라는 노래는 수영 시간에, 태권도 수업 시간에 많이 들어서인지 자연스럽게 흥얼거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도 함께 "오 업 업 업 위드 아우어 보이스, 영원히 깨질 수 없는" 정도는 목청껏 따라 불렀다.


- 아빠, 근데 이거 다음 편은 없어?


단편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이것만 스물일곱번을 봤을리 없는데 하는 표정이다. 그리고 혜화동 온 김에 잠깐 창경궁에 들렀다. 다자녀 혜택으로 무려 입장권이 무료다. 둘째는 유모차를 타고 궁을 둘러보는게 그래도 바깥 나들이라 신나하는 표정인데 첫째는 이 더위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며, 아빠는 시골 출신이고 나이가 많아서 이런 곳을 좋아한다고 혼자서 궁시렁 댄다.


차 안에서 케데헌 보는 것 보다는 창경궁 산책을 좋아했으면 하고, 오래된 나무들이 촘촘히 만든 그늘길을 걷는 즐거움을 느꼈으면 더 좋겠는데, 이건 다 내 욕심이겠지.


어쩔 수 없이 또 협상을 한다.


아이스크림 사 줄테니 조금만 더 걸어볼까?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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