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려고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타자를 또박또박 치면 오히려 글이 꼬인다. 뭔가 모르게 글이 인위적이고 거슬리는 부분이 많다. 그럴 땐, 거북이처럼 목을 앞으로 쭉 빼고 구부정한 자세로, 손가락에 힘을 빼고 설렁설렁 타자를 치면 술술 글이 풀릴 때가 있다. 하지만 오늘은 그마저도 신통치 않을 것 같다.
*
언젠가 팀장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힘들지 않다, 힘들다고 하는 건 약한 자들이 내뱉는 소리이고, 말에는 힘이 있기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나는 쉽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힘들다는 말을 꺼낸 순간엔, 진짜 힘든 거니까 그렇게 알아달라고. 과연 테토남 호소인 다운 대답이었다.
근데 주니어 몇은 늘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오늘도 별 것도 아닌 일로 힘들다고 회의 내내 부루퉁하다. 내가 봤을 때, 뭐가 힘든 지 도통 모르겠지만. 아니 잠깐, '내가 봤을 때' 이 말은 '라떼'와 한 몸으로 움직이는 동의어가 아닌가. 그럼 나도 피할 수 없는 꼰대 재질? 힘들다고 하면 '뭐가 힘들어?'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요즘은 회사에 퇴사자가 많고, 다들 좋은 선배가 되고 싶어서 입바른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 때 '뭐가 힘들어?'의 톤은 마치, 아이유가 콘서트에서 본인이 뚱뚱하다고 말했을 때, 좌중의 작은 소음들을 뚫고 나온 한 팬의 일갈 '뭐가 뚱뚱해?'의 톤이면 좋겠다. 그 정도의 일갈이면, 아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기도 할 것이다. 내가 뚱뚱하지 않구나, 내가 힘들지 않구나.
힘들다고 하면, 우쭈주 해주고, 힘들다고 하면 떡이 하나 더 나오니 징징도 습관이 되어 버렸다. 주니어 한 명이 그렇게 힘들다고 어느날 또 징징대서, 친히 이 몸이 나서서, 그래 그 일 내가 대신 해줄께 했다. 해보니까 귀찮긴 하지만 그렇게 힘들지는 않는 일이다. 복잡한 계약 건을 이해 당사자들 모아 놓고 협의를 하고, 각자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줬다. 이때 중요한 건, 내가 정리만 해주고 쏙 빠지는 게 아니라, 먼저 나서서 귀찮은 일을 어느 정도는 도맡아 해줘야 하는 점이다. 그리고서, 여러분은 여러분들의 약속된 Role을 지키시면 됩니다, 고 하면 말에 진정성이 실린다.
사실, 이 업무를 맡게 된 건 상위 조직장이 어느 날 '1개월이 지났는데 왜 안하고 있냐? 빨리 해라!' 라는 지시에서부터 시작됐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도대체 1개월 전에 지시한 그 일이 무엇입니까? 물었더니, 어영부영, 대충대충 이런 저런 일이라는 요구사항이 막연한 업무다. 그 누구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업무다. 히스토리를 달라고 해서, 정리된 confluence 내 자료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진척이 되다가 1개월 전에 흐지부지 된 사안이다. 영문도 모르는 나에게 무턱대고 일을 처리하라고 하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지만 이 때 나는 또 회사 생활의 금언을 떠올리는 것이다.
[일의 경중이나 자초지정을 따지지 않고, 뇌를 빼내고 기계적을 일하면 정서적으로 건강하다.]
그래서, '네 알겠습니다. 바로 할께요.' 하고 만다. 후배는 본인으로부터 비롯된 일이 책임님께 전가되었다면서 메신저로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도 경우가 있다. 그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렇게 꼬인 일 정리하려고 내가 이 자리에 있는거야. 걱정하지 말고, 너는 니가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을 하면 돼.'
진짜 멋진 선배의 정석 아닌가.
곧이어 메일이 왔다. 이 업무에 후행되는 일은 이러이러하니 책임님께서 정리해주시면 좋겠다는 상위 리더의 지시사항이다. 나는 또 회사 생활 금언을 하나 떠올린다. 이건 정현종 시인의 싯구에서 따왔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작은 업무가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뒤따라 그 일의 전부가 오기 때문이다.]
손들고 싶어도 손들지마, 정리하고 싶어도 정리하지마. 조금만 그 불편을 감수하면 내내 평안할 지니.
메일을 닫고 눈을 감는다.
나지막하게 '젠장' 소리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