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대구회와 아구수육이 떠오르는 날

by 꼬르따도

가끔 회사 생활이 지칠 때가 있다. 사실 가끔은 아니고, 빈번하게 지친다. 그래서 오늘은 점심을 먹고 제2판교 동쪽과 서쪽을 잇는 육교를 지나 금토동과 시흥등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가을이라 아침 저녁으로 기온은 제법 선선한데, 한 낮의 햇살은 따갑다. 크게 한바퀴 돌고 이마에 맺힌 땀을 손으로 닦아내고, 숨고르기를 하면 오후를 버틸 기운이 난다.


시흥동의 커피 맛집에서 시그니처 라떼를 하나 사서 돌아올까 하다가, 이따가 오후에 동료와 커피 약속이 있어 꾹 참았다. 그리고선 그 동료와 커피 마시면서 그 얘기를 했다.


- 아까 걷다가 너무 더워서, 커피 한 모금이 간절했는데, 책임님하고 커피 마시려고 꾹 참았다니까요.


오늘은 회사에 아무도 없다. 팀원이 많지도 않은데다, 다들 저마다의 업무로 바빠서 마주칠 일이 없을 때가 많다. 컨설팅과 외주 협의가 많아 출장이 잦은 인원도 있다. 나는 행여 우리 팀에 아무도 없을 때, 임원이 찾아와 "얘네들 다 어디갔어?" 물을 때, 고개를 빼꼼 내밀고 손을 들어 "저 여기 있는데요." 답을 주는 역할을 종종 한다. 말하자면, 팀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깃발 같은 존재다.


추석이 다가와 추석 선물을 총무에서 나눠 줄 때, 팀원 6명의 참치 통조림 세트를 혼자서 들고 올라왔다. 옆 팀 동료가 '도와 드릴까요?' 손을 내밀 때도, '아니오. 요새 무게를 쳐서 이 정도의 무게는 껌이예요.' 라고 답했다.


저렇게 센스 있는 멘트는 어떻게 마르지도 않고 순식간에 내뱉는 걸까. 나는 솔로 28기 돌싱 특집에서 영호가 옥순에게 생선회 포장을 건네 면서, '맛있게 드셔 주세요.' 같은 멘트는 배워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타고 난 센스다. 옥순이 '아니 그건 제가 계산하려고 했는데'에 대해 상대방 민망하지 않게 하는 배려가 담긴 멘트. 나도 저런 멘트 제법 친다. 그래서 여자들 맘을 잘 훔쳤지. 믿거나 말거나.


*


옛날에 창원에서 근무하던 때엔, 금요일 퇴근하면 팀장님이 곧잘 저녁을 사주시곤 했다. 진짜 으른들의 음식들. 예를 들면, 아구수육이나 물메기탕이나, 돼지 머릿고기나 진해 용원항에서 먹는 생대구회 같은 음식들. 가끔 회사 생활이 지칠 때면 그때 먹었던 그 음식들이 떠오른다. 그 음식들과 함께 했던 따뜻하고 다정했던 풍경이 떠오른다. 평가 시즌이 되고, 평가 결과에 시무룩한 동료들이 있으면 당시 팀장님은 그들을 데리고 밤낚시를 가곤 했다. 물론 나도 자주 그 무리에 들어 있었다.


마산 포구에서 배를 5분 정도 타고 들어가면,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작은 조립식 주택이 나오는데 밤새 그곳에서 함께 낚시를 하고 함께 술을 마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어느 날은 고등어나 작은 갈치가 끊임없이 잡히던 밤이었는데, 그것들도 팀장님이 깔끔하게 회를 쳐 주시고 회 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셨다.


- 회사 생활은 길어. 짧게 보지 말고 길게 보자. 이번엔 미안하게 됐다. 다들 일을 너무 잘하는데, 더 고생한 인원에게 좋은 평가가 돌아갔어.


살면서 이런 팀장은 만나본 적이 없다. 일은 물론 잘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당시 20명 정도 되는 큰 조직이었는데, 팀장님은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팀이 하나가 되게끔 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분이셨다. 한 곳에서 음정이나 박자가 틀리거나 삑사리가 나면, 재빨리 바이올린 소리로 그 실수를 가리는 식으로 임기응변에 능하신 분이셨다. 내가 팀장이 되면 그런 으른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당시 그 분의 나이와 비슷하지만, 나는 어른이 되려면 한참 먼 것 같다. 응애.


점심 시간에 제2판교를 한 바퀴 돌 때, 다리는 재빠르게 이동하면서, 사실 이 새로운 도시에 으른들의 음식은 없나 눈동자를 위아래좌우 돌리면서 걸었다. 아구수육 어디 없을까, 생대구회는 용원에서 12월~1월에만 먹을 수 있긴 하지, 그렇다면 직접 돼지를 삶는 곳은 없을까, 복껍질 무침은 있네. 신선한 해산물 먹고 싶다.


근데 샐러드랑 햄버거집은 왜케 많은 거야. 너네 그런 거 먹으면 으른 못된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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