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이미 식었다.

by 꼬르따도

집 값이 오르고 있다. 눈치를 못채고 있다가 아내의 한마디에 눈이 번쩍 뜨였다.


- 이제 우리 아무데도 못가. 여기가 우리 끝이야.


아니 그렇게 쉽게 단정할 일이냐고. 그렇게 쉽게 포기할 일이냐고. 여보 그렇게 나약한 사람이었어? 하면서 부동산 어플을 켰는데, 우리가 내년 이후 이사갈 곳이라고 예정해 두었던 곳들이 어느새 멀찍이 달아나고 있었다. 꼬리 잡기라도 해볼라치면, 매물을 싹 거둬들이는 형국이다. 이미 늦었다고 약올리는 듯한 집값의 추세나, 아내의 볼멘 소리에 스트레스를 좀 받긴 했다.


아예 모르고 살았으면 나랑 상관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치부하면서 귓등으로 흘러 들일 만한 일들인데, 이게 마침, 우리의 이사 예정지와 겹치니 나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코로나 시기에 '코로나 발병률이 10% 내외니 안심하라고 하면, 아내는 늘 그게 내가 걸리면 100%라는 얘기야, 정신 차려!' 하곤 했는데 집 값도 내 일이 되버리면 스트레스 100%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딸래미가 태권도 다니면서 제법 씩씩했졌는데, 입에 달 듯 하는 말이랑 비슷하다.


- 아빠 100% 압력 주먹 맛 좀 볼래?


100% 압력 주먹 맛으로 그 매운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전해져서, 뜬 눈으로 대안의 이사 예정지를 찾아 해맸다. 내가 가장인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지, 아무렴 하는 기세도 있었다. 그렇게 몇 곳을 점찍어 두고, 추석 이후 만날 수 있는 부동산도 몇 곳 예약해 뒀다. 그랬더니 압력이 50%로 줄어든 느낌이다. 이제 좀 부동산 어플을 멀리할 수 있겠다 싶었다.


*

명절을 맞아, 광주에 왔다. 지금 이 글은 내가 애정하는 카페에서 빗소리를 들으면서 쓰고 있다. 열린 창으로 빗소리가 눈과 귀로 들어온다. 평온한 순간이다. 문득 서울이 아니라, 광주에 살면 더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무리해서 이사를 가면, 대출 이자비로만 내 월급의 반 이상이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나는 지금보다 더 직장생활에 충성을 해야겠지. 그게 나쁘진 않지만 그게 전부일까. 대출의 바깥은 어떤 모습일까. 서울을 떠난 아이들의 학교 생활은 어떤 모양일까. 서울을 떠난 나의 일상은 또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면 평온이 깨진다. 커피는 이미 식었다.


식은 커피도 사실 맛있다. 이 집 커피 잘하네

화요일 연재
이전 07화생대구회와 아구수육이 떠오르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