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찌할 수 없는 종류의 무력감따위

by 꼬르따도

이 마음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 지 마땅한 단어는 생각나지 않지만,

영어로는 overwhelmed가 적절할 듯 하다.


어떤 감정이나 생각이 떠오르면, 거기에 뒤따르는 감정의 파도가 남들과 달리 크게 널뛰기를 하고 때론 그 생각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마저 느낀다. 40년이 지난 지금 내린 결론은 이건 내 성향이고, 내가 평생 어르고 달래고 살아야 할 내 마음의 상태다. 떼어내고 싶지만, 없애고 싶지만, 그건 쉽지 않은 영역이라 아니 애초에 불가능한 영역이라, 친구처럼 안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부터 나는 이상한 생각이 잘 달라붙는 끈적끈적한 마음 상태로 태어난 것이라고 이해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자꾸 이상한 생각이 달라붙어요, 샐리 M 윈스턴 책에 나온 표현임) 그래서 자구책으로 틈만 나면 런닝을 하고, 팔굽혀펴기를 하고, 성경을 펼쳐 읽는다. 그렇게 루틴을 잡아서 단단해졌다 스스로 만족할 때쯤, 삶이 평탄하다 감사할 때쯤, 그 틈을 비집고 예기치 않은 불안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민다.


나는 군대 생활을 고향에서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했다. 현역 2급 판정을 받았지만, 전방이나 내무반에서 군 복무 하는 대신 집에서 출퇴근하는 상근예비역 판정을 받았다. 벽오지를 방어할 인력이 부족해 부득이 그 곳 출신들을 고향에서 군복무를 시키는 제도가 바로 상근예비역 제도다. 맞다, 예전엔 방위라고 불렀다. 방위와 상근예비역의 차이는 보충역과 현역의 분류만큼 상당하지만, 굳이 기술하지는 않겠다. 내가 상근예비역을 복무한 곳과 중학교 때까지 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작은 섬마을이다.


군생활 때 매미라는 강려크한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한 적이 있다. 전봇대가 넘어지고, 부둣가에 정박한 배들은 뒤집어졌다. 폭싹 속았수다의 태풍 묘사와 비슷하다. 나는 그 경이로운 자연의 힘을, 뭐든지 삼켜버릴 것만 같은 집채만한 파도를 중대본부에 앉아 하루종일 쳐다 봤다. 지루하진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중에 포브스 선정 머리좋은 사람의 특징 3가지 뭐 이런 따위의 기사가 있었는데, 그 중 두 개가 앵무새 죽이기라는 책을 좋아하고, 폭풍우를 좋아한다 였다. 다른 하나는 생각이 안나는데, 내 최애 책이 앵무새 죽이기이고 태풍을 이토록 좋아하니, 과연 내가 머리가 좋은 이유가 있군 하며 스스로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눈을 뗄 수 없는 '바람과 파도'의 자진모리 장단에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와 자연의 파괴력 앞에 경이로움과 한편으론 무력감을 느꼈던 듯 하다.


당시 읍소재지에 있는 작은 아버지 댁에 살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친구들이 보고 싶어 잠시 고향인 우리 집에 와 계셨다. 태풍 매미의 강력한 비바람을 뚫고 집에 왔더니 마침 내가 먹을 밥이 작은 상에 상보자기로 덮여 있었다.


- 내 강아지 춥지는 않냐? 뜨실 때 언능 먹어라.


상보를 펼치니 바지락이 들어간 된장국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고 있었다. 마른 볼락 한마리가 정갈하게 구여져 놓여 있었다. 정전이라 촛불을 켜서 어둠을 밝히고 준비해주신 식사를 하니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았다.


지금 내 마음이 꽁꽁 얼어붙은 상태인지,

오늘따라 할머니의 된장국이 몹시도 그립다.


태풍도 금방 잦아들 듯, 내 마음의 동요도 금방 잦아들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종류의 무력감이지만, 굳이 어찌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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