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능력에 비해 위를 보고 살았다. 회사 일이라는게 어느 정도는 고등학교 정도의 교육만으로도 충분히 커버 가능한 영역이라, 실제 해 보면 별 거 아니네 싶은 적이 많다. 석사나 박사도 아니고, 학사는 그냥 그 분야에 조금 새끼 발가락 정도의 발만 걸친 정도고, 대형 마트 시식 코너에서 찍먹으로 맛만 본 정도라 전문성이 그다지 크지도 않다. 몰론 걔중에는 개발(코딩)에 특출난 애들도 있어, '야레 야레 나는 저 정도는 아니야' 하면서 스스로 고개를 숙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결국 하다 보면 입에 풀 칠 할 정도의 능력은 갖기 마련이다. 그렇게 시간이 쌓여 자연스레 능력치가 조금씩 높아지면 남들이 하는 일을 보다가 영 마뜩찮은 경우가 생기고, 그에 따라 차라리 내가 하는게 낫겠다는 마음이 잠깐 고개를 들기도 한다.
이럴 때 마다, 스스로 참아야 한다. 저분들이 나보다 훨씬 나은 분들이다. 내가 뭐라고 평가를 하냐며 스스로를 다독이곤 한다. 답답한 마음에 '아, 그거 제가 할께요' 손 들었다가는 고구마 줄기마냥 그 일에 엮인 크고 작은 다른 일들에 큰 코 다친, 십수번의 경험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이기도 하고. 할 수 있어도 손 들지 않는다. 하고 싶어도 참는다. 이런 자세를 견지해야 내 남은 노후까지의 회사 생활이 평탄할 거라 믿는다.
저기 김부장님이 늘 부처님 같이 인자한 미소로 잘 모르겠습니다, 중생의 능력이 미천하여서요, 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러번 그 부장님과 일을 하고 같은 상황을 겪다 보면, 아 저 분은 잘 모른댔지, 하면서 물어보려다가도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 분을 힐끗 쳐다보다 눈이라도 마주칠라치면, 예와 같이 인자한 미소를 짓고 계신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똑같은 미소로 화답을 한다.
그래 회사 생활은 웃으면서 해야지.
가진 자산에 비해 위를 보고 살았다. 미래 내 자식들이 아빠는 20년 전에 비트코인 안사고 뭐했어요? 묻거나, 아빠는 20년 전에 서울 동남부로 이사 안가고 뭐했어요? 라고 묻거나, 엔비디아 안사고 뭐했어요? 물을 수도 있겠다 싶다. 물론 기회는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인정한다. 두 번의 투자 실패를 했다. 그 투자 실패는 네이버 묻은 코인을 샀다가 돈을 날린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동산 투자다. 신혼 때는 둘이서 벌면 약 5년 후에는 방배동에 살 수 있겠다 하면서 서로 단 꿈을 꾸기도 했다. 며칠 전 부동산 매매를 위해 가진 자산을 다 처분하다 보니 여섯 번의 이사가 무색하게 가진 돈이 없다. 대출을 풀로 땡겨도 쉽지 않다. 결혼 12년차인 지금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조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신혼 초에는 꿈을 꿨던 동네들이, 그야 말로 한 낮의 신기루 같은 꿈이 되어 버렸다. 수 많은 이사와 아이들의 전학에 어른들은 그렇다쳐도, 우리 애들은 무슨 잘못인가 싶어 눈물이 찔끔 났다. 한시라도 어릴 때 전학가는게 애들에게 낫다고 하지만, 그건 다 어른들의 시각이지. 나는 그냥 한 동네에서 오래 살고 싶었다. 지금 내가 사는 동네에 계속 살고 싶지만, 부동산은 투자의 가치도 있기에 그냥 머무르게 시장이 내버려두지 않는다. 마지막 사다리 끝에라도 대롱대롱 메달리라며 부추겼다. 사실은, 그냥 사다리가 끊겨 지금 이 동네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자위와 함께, 만족하면서 사는게 더 행복하겠다 싶은 마음도 들었다.
도달할 뻔 했기에 안타까운 기억들. 아예 모르면 꿈도 꾸지 않았을텐데, 가닿을 뻔 했기에 더 아쉽다. 그 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하는 자책들이 한동안 나를 괴롭히고 지금의 선택은 우리를 위한 바른 방향인가 하는 걱정에 또 괴롭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자책도 아니고 후회도 아니고, 지금 할 수 있는 나의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격려와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위를 보지 말고 앞을 봐야 하는데 눈도 나쁘면서 자꾸 다른 데 보니까 힘들었다. 앞을 보자. 그리고 적절히 포기하자. 과분한 욕심 말고 자족을 하자. 몇 번이고 되뇌이는데 마음의 번뇌는 끝이 없다. 이게 어른의 삶이라면 또 금방 적응하겠지. 졸음 껌 한 번 씹다가 옆에 팀 동료 농담에 한 번 크게 웃고 마는, 그런 생활이 또 이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