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신입 도전기]⑤실무 면접

by gsh

구술 면접을 통과한 뒤 이어진 코스는 4일 간 진행되는 실무 면접. 또 다시 휴가를 써야 했다. 전과 달리 그리 골치 아프진 않았다. 등산객이 산 중턱을 넘어 8부능선 쯤 있는 깔딱고개 앞에서 산행을 접지 않듯이, 못먹어도 GO해야 하는 상황.


이럴 수록 핑계거리는 유독 쉽게 떠오른다. 마침 다음 주가 추석연휴였던 점을 이용했다. 아버지 일정으로 할머니댁을 한 주 일찍 방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부모+조부모 콤비에 당해낼 자가 누가 있으랴. 영화 '쿨러닝'에 나오는 '탈룰라(한 인물의 어머니 이름)로 한 수를 접는다면 이 콤비에는 두 수를 접어야 한다.


그렇게 시작된 실무평가. 멀끔히 다린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메고 B 회사로 갔다. 회사에 도착하고 물 한 잔을 마시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을 때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속속히 등장했다. 긴장된 분위기 속 서로 간 인사를 했다. 친해질 의향이 없는 채로 형식적인 인사. 다들 '저 사람이 붙으면 내가 떨어질 수 있다'는 공공연한 인식이 기저해 있는듯 했다.


임원진들과의 대화가 끝나고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으나 여튼 '어디든 들어가면 에너지원이 되지 않을까'는 생각으로 무작정 먹었다. 안 먹을 수도 없었다. 맥주 한 잔도 곁들였다. 맥주가 에너지원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마셨다. 이 역시 안 마실 수 없으니 마셨다.


첫날 오후는 작문이었다. 단어가 몇 개 주어지고 그 단어를 주제로 글을 쓰면 된다. 예컨대 밤하늘, 김치, BTS라는 생뚱맞은 단어 3개를 주고 하나를 택해 1시간 내1200~1400자짜리 글을 만들면 된다. 나는 700자 정도 쓰고 제출했다. 뭘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만 하다가 결국 시간이 다해 넘겼다. 머릿 속으로 생각난 글감에 대해 계속해서 자기검열을 했던 것 같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던데 나는 장고만 했다.


이상하게도 이튿날부터는 마음이 편했다. 작문을 못했다는 것에 후회가 남지 않았다. 어차피 돌아가도 제대로 못 쓸 것 같았다. A회사 필기 시험을 망친 게 도움이 됐을 지 모르겠다. 마음 편하게 말하고 떠들었다. 취미가 뭐냐는 말에 '망상'하는 걸 좋아한다고 답하거나 좋아하는 게 뭐냐는 물음엔 '딱히 없다'고 했다. "크게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어서 잔잔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이후 마음이 편하니 자기검열도 줄어들었다.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유튜브'를 회사의 역점으로 두고 있다고 여러 차례 임원들이 말했고, 이후 회사의 미래에 대해 PT를 하는 자리에서 나는 '유튜브'를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논리가 밑바탕이 된 채 자유롭게 말하면 되지 않겠나.


현장 르포 시간에는 지은 지 40년된 청계천 근처 아파트 주민들이 재개발로 고통받고 있는 점에 대해 썼다. '청계천뷰 아파트 삼총사'를 헤드라인으로 잡았다. 직접 아파트에 들어가 악취를 맡아 봤고, 불 하나 켜지지 않은 공공 화장실 사진도 찍었다. 면접관과의 마지막 대화 시간에는 '저를 뽑아주시면 잘하겠다'가 아니라 '4일 간 9명을 유심히 관찰하시느라 고생 많으셨다. 저희 9명을 보시면서 20~30년 전 모습을 떠올셨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끝맺음을 했다.


결과적으로 이 점이 먹혔던 것 같다. 추후 회사 사람들에게 '너는 긴장을 하나도 안하더라', '청계천 가서 뭐 쓰지 않았느냐'는 말들을 들었다. 조금은 여유롭게, 시험보다는 대화라는 생각으로 면접을 보면 좋지 않을까. 이만 마감을 마저 해야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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