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

by 정썰

베란다인지 발코니인지는 중요치 않지

욕조인지 어항인지도

비로소 난 물에 뜨는 생물인 걸


먹북인지 겁북인지는 중요치 않지

반려(伴侶)인지 애완(愛玩)인지도

때가 되면 물을 갈아주고, 먹이도 주는 걸


집사님?

죽지 않을 만큼 주신다 불평할라치면

배부르게 쏟아주시는 후한 실수에 감사하며

대단할 거 없이 살아낸 하루에도

둥둥 뜨고 훠이훠이 헤엄치는 본능에도

대견한 눈길을 주시는 걸.


다이소 삼천 원짜리 마른 새우인지

알록달록 대형마트 고급 사료인지는 중요치 않지

한 평도 안 되는 세상 안에서

난 또 하루를 열심히 돌았고

등껍질을 말리고

허물을 한 번 더 벗고 나면

나는 또 자라지, 뜨거운 햇볕 아래 익어가지


십 년 넘게 함께 살아도

문득문득 낯설어 놀라기도 하지만

그래서 '바보', 서운하기도 하지만

이제 웬만큼 거북스럽지 않은 사이


맴맴 도는 비좁음이, 둘러친 한계가 안쓰럽다가도

둥둥 떠 있는 평화가 부럽기도 한

오수(午睡)의 꿈속에 날던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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