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의 게임>, 혹은 <아스달 연대기>
공공재인 장르 관습과 공공재가 아닌 세계관을 구현하는 디자인
나는 올해로 6년째 국제 콘셉트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다.
SF와 판타지 장르의 팬으로서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지나친 장르 편중에 대해 우려해왔고, 이들 장르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는 크리에이터의 한 사람으로 볼 때 모든 비극의 출발점은 콘셉트 디자인이라는 가장 중요한 공정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와 드라마를 잘 만드는 나라, 한국. 한류 열풍의 시작은 케이 팝 전에 영화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유독 판타지 장르만 만나면 속절없이 무너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은 출전 회수가 많지 않다 보니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와 리얼리즘 드라마 그리고 리얼리즘에 뿌리를 둔 장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식 누아르라는 주류 장르 외에, 다른 영역으로 넘어간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도 별로 없었지만 있었다 해도 새로운 영역에 대한 탐구는 충분치 않았던 것 같다.
<아스달...>에 대해 비판적인 댓글 중에는 <단적비연수 2000년작> 삘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한국 영화/드라마를 통틀어서 판타지는 드물었다.
하지만 국경이 무의미해진 관람 시대에 한국의 관객/시청자들은 <왕좌의 게임>으로 대표되는 유사 장르의 수준 높은 작품들에 이미 익숙해 있다.
두 작품을 같이 놓고 비교한다면 <아스달..> 제작진은 억울한 면이 있겠다. 방대한 세게 관이 이미 구축되어 있었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것과는 다른 경우일 것이고 제작비로 말하면 더욱이 비교가 안 될 테니.
현재로썬 경험의 부족도 중요한 이유일 테고 이런 시도들이 되풀이되다 보면 유의미한 도약을 이루는 작품도 나올 테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의 드라마/영화 산업은 그만한 인내심이 없어 보인다.
흥행에 실패한 대작이 나올 때마다 쉽게 들리는 소리는 ‘그거 봐. 그 장르는 한국 시장에 안 먹힌다니까’이다. ‘잘하는 거 하라고..’
그 결과 조폭과 범죄, 은폐된 비리를 주제로 하는 주로 남자 배우들만 나오는 ‘검은 영화’들만 만들던 긴 시간이 있었다.
경험이 없다고 해서 번번이 이렇게 부끄러운 실패를 거듭해야 하는 걸까?
경험은 만들면서 채워나가는 것이겠지만 관객/시청자들의 시청 관습은 우리가 관찰하며 배울 수 있다. 한국 관객들은 유럽의 판타지 고대 역사물을 어떻게 즐기고 있을까? 간단한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허구의 고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왕좌의 게임>이나 <아스달 연대기>는 비슷하다. 그런 시대를 다룰 때에 닥치는 난관은 고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이 지점은 다른 한편으로는 이득이 되기도 한다. 관객/시청자를 납득시키기만 한다면 판타스틱한 상상을 가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날의 검인 셈이다.
<왕좌의 게임>의 배경은 한번 겨울이 오면 얼마나 지나야 끝날지 모르는 두려운 시대이고 인간과 함께 백귀들이 장벽 너머에 살고 있는 세계이다.
이 부분은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해도 좋은 영역이다. 사람들끼리 부족 간의 전쟁만으로도 고달픈데 또 다른 미지의 막강한 적이 있다니.
그러한 시대이니 의상이나 분장, 건축물 같은 것에 고증이 있을 리 만무하다.
다만 인간이 보다 본능적이고 어느 정도는 동물과 같은 삶의 형태를 지니고 있던 시대라는 것을 납득시킬 수 있고 이런 세계관을 구현할 수만 있다면 좋은 비주얼인 것이다.
<아스달 연대기>의 배경은 더 먼 옛날이다. 추측컨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공존하다가 사피엔스의 일방적인 승리로 정리되었다고 추정되는 그 옛날이다.
어려운 전략을 택한 셈이다. 그나마 많은 자료가 남아있는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성공적인 작품도 찾아보기 힘든 마당에 태곳적 얘기라니.
‘어떠한 콘셉트 디자인 전략으로 이 시대를 납득시킬 것인가?’가 프로덕션의 핵심 과제였을 것 같은데 결과물을 보면 이 부분은 영 실패작이다.
네티즌의 지적을 빌어오자면, ‘<왕좌의 게임>의 털옷은 털이 안으로, 가죽이 바깥으로 나와 있는, 실제로 추위를 막기 위한 옷이자만 <아스달..>은 털이 바깥으로 나와 있으며, 이는 그저 멋지려고 입은 옷이다. 게다가 쇠를 박은 갑옷과 가죽옷 옆에 비단옷은 웬일?‘ 장동건이 쓰고 나온 해골은 과연 최선이었습니까?’
이것은 그저 하나의 예에 불과하고 수많은 지적이 비주얼에 관해 쏟아지고 있다. 프롤로그의 건축물 그래픽과 예고편에 등장한 장동건의 의자(왕좌?)의 생김새 등, 대놓고 <왕좌의 게임>을 참조한 흔적이 역력하고 굳이 이를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한국형 <왕좌의 게임>으로 시청자들이 인식하여 <아스달...>에서 설명이 부족하여 납득이 어려운 이 세계로 풍덩 빠져주길 바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도 버젯과 제작 기간의 차이를 들고 나오고 싶은 관계자가 있을 수 있겠다. 물론 돈이 많은 것을 해결해 주기도 한다. 한국 안에 충분한 경험치가 쌓인 기술팀이 없다면 외국에서 해답을 찾을 수도 있다. <설국열차>를 비롯해서 그런 시도들이 꽤 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아스달...>의 문제는 <왕좌의 게임>과 비슷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시대와 배경(우리는 유럽이 아니다)을 택했으면서도 이 시대를 <아스달...>만의 방식으로 시청자를 납득시키고자 하는 시도를 애초부터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 있다.
기존의 한국의 다른 판타지/SF 장르들이 다른 곳(예를 들면 드라마트루기)에서 돌파구를 찾아서 이 문제의 해결 없이도 흥행 성공을 이룬 예를 따르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 겨우 극을 시작했을 뿐인 시점이기 때문에 앞으로 전개에서 <아스달...>의 작가팀이 이미 가지고 있는 드라마적인 강점을 십분 발휘하여 그들이 닮고 싶었던 방식으로 판타지 본연의 스토리텔링이나 세계관, 이에 걸맞은 비주얼 없이도 흥행에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 수 있길 바란다. 왜냐고?
최소한 ‘거봐, 판타지는 한국 시장에 안 먹힌다니까’라는 소리는 듣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에. <아스달...>이 또 한 편의 거대한 실패작이라도 되는 날엔 아마도 당분간 이 정도의 버젯을 들여 판타지 드라마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판타지라는 장르를 대신하여 항변하자면 만약 우려대로 <아스달...>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낸다 해도 이런 비난은 적절하지 않다. 그들은 판타지 드라마를 만들려고 한 게 아니고 판타지성을 띤 사극을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사족으로 질문을 붙인다면, 뇌안탈과 인간이 살던 시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왜 현대인과 똑같은 복잡하고 성찰적인 사고를 하는 것일까? 많은 지적을 받고 있는 말투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무백의 내레이션은 적절했을까?
또한 판타지로 그려낸 상고시대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현대극이나 일반 사극과는 차별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왜 <왕좌의 게임>에서는 등장인물의 정복 욕망, 잔인성, 욕정 혹은 사랑이 단순 무식하게 표현되고 있는 걸까? 뭐 대단한 대의, 올바름에 대한 확신도 없이 끝없는 살육과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 그저 자기 가문을 지키거나 가문의 복수를 하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기 위해서는 다른 부족의 땅을 먼저 빼앗고 먼저 절멸시키는 것뿐이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 시대를 수백, 수천 년을 지나서 현대에 이른 우리는 명백하게 큰 잘못을 저지른 자들을 처리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수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류 혹은 비리를 통해 그들이 빠져나갈 수도 있는 복잡한 사회를 만들었다. 이 두 시대 간의 명료한 대비 효과가 유럽인도 아닌 한국 사람들조차 <왕좌의 게임>의 팬이 되도록 설득했고 그 바탕에는 작가의 세계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세상은 복잡해졌지만 본성은 비슷하다... 여전히)와 이를 구현해내는 콘셉트 디자인과 비주얼이 있는 것이다.
세계 영화/드라마의 트렌드, 특히 SF와 판타지 제작의 흐름에서 프리 프로덕션 단계의 콘셉트 디자인은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핵심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그리고 그 어떤 콘셉트 디자이너도 뇌안탈과 인간이 쟁투하는 시대를 그리면서 가죽 갑옷과 한여름의 털옷, 불화살과 칼, 비단옷과 옥장 신구를 함께 집어넣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할 수가 없다.
올해도 나는 인천시에서 세계 최고의 비주얼 스튜디오인 웨타워크숍을 초청하여 콘셉트 디자인 공모전과 웨타 아카데미를 연다. 벌써 6년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