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트위터 캡처
개봉 전부터 트위터 등의 SNS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캡틴 마블>은 현재 흥행에서도 관람 평에서도 승승장구 중이다. 논쟁은 마블 사상 첫 여성 히어로 솔로 무비인 데다가 주요 배역들이 소수자들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페미니즘 영화이니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는 일부 남성들(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과 그들과 일전을 치를 준비가 되어있는 여성 관객 사이에서 불거졌다. 자기 정체성과 기억력을 잃어버리고 크리 족의 전사로 살아온 캐럴 댄버스가 기억과 더불어 잃어버린 과거와 친구를 되찾고 자신을 기만해온 크리 족에게 분노의 불주먹을 날리는 장면을 정말 통쾌하다. 어째서 한국, 혹은 미국 남자들은 이 영화를 불편해하는 것일까? 설마 여자에게 얻어맞고 불쌍하게 나가떨어지는 크리 족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일까?
캐럴의 보스인 크리 족의 리더는 거짓으로 캐럴을 속여왔고 캐럴의 막강한 힘을 이용해서 외모만 악당 같을 뿐 죄 없이 고향을 잃어버리고 행성들을 떠돌아다니는 스크럴을 죽이게 만든 자이다. ‘니 몸에 흐르는 피는 내 것이다’라고 항변하는 그가 ‘무기 없이 싸워 나만큼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보라’고 도발하지만 캐럴은 불주먹을 날리며, ‘너에게 입증해야 할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남성 중심의 서사에, 아니 역사 자체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여러모로 다른 지점을 보여준다. 여성과 유색인종과 소녀, 그리고 아마도 대다수의 영화에서는 절멸시켜 마땅한 악당의 외모를 가진 외계 난민 스크롤이 오해를 딛고 서로에게 구원이 되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지난해 11월에 세상을 떠난 마블의 아버지 스탠 리가 캡틴 마블을 데뷔시킨 것은 1967년 마블 슈퍼히어로 #12에서였다. 등장 이후 캡틴 마블은 중요 캐릭터로 활약해왔지만 주인공이 되는 데에는 오십여 년이 걸린 셈이다. 캡틴 마블이 탄 지하철에서 시나리오를 읽는 본인 역으로 등장한 스탠 리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뭉클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스탠 리의 부고가 뜨자 전 세계의 마블 팬들은 다양한 형식으로 애도를 전했다. 그중에서도 스탠 리는 자기가 창조한 히어로들이 운구하는 관에 누워 마블 유니버스로 이주했다는 부고가 가장 눈에 띄었다.
캡틴 마블의 스크롤에 보이는 두 명의 연출자 가운데 한 사람은 여성이고 감독 외에도 여러 명의 여성들이 주요 스텝으로 참여했다. 그들은 앞으로 마블 유니버스에는 성소수자 히어로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분단과 비민주성이라는 현실의 반영 때문이었겠지만 남성 중심의 서사가 넘치다 못해 자기 복제를 거듭하던 한국 영화에 언제쯤 한국식 캡틴 마블이 등장할 수 있을까? ‘여기는 마블의 나라입니까?’라고 한국의 가파른 흥행 스코어에 놀란 기사 제목이 보여주는 것은 한국 관객의 목마름이다. 세대를 막론한 한국의 여성 관객이 이 영화에 보내주는 지지는 우리의 딸들이 이런 히어로물을 보면서, 여성 히어로를 꿈으로 삼아 자라길 바라기 때문이다. 여성 히어로들이 보여주는 용감한 결단(영화 속에는 소녀가 엄마의 등을 떠민다!)과 우주 난민을 비롯한 소수자들에 대한 연대를 배우기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고마워요! 스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