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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택시

루마니아의 브라쇼브

by 카렌

루마니아 사람들은 친절하다

택시 기사만 빼고

불가리아 사람들은 친절하다

택시 기사만 빼고

세르비아 사람들은 친절하다

택시 기사만 빼고


시를 읊듯 제이가 그렇게 말했다. 택시 기사를 특별히 비하할 뜻은 없었다. 이스탄불에서 만난 택시 기사로부터의 공포에서 생긴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그 택시 기사는 한적한 골목에 차를 세운 후 내 지갑에서 200유로를 뺏어갔다. 제이는 슬러시 같은 눈을 맞으며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25만 원이 넘는 돈인데 한국에서도 우리는 그 요금만큼의 택시를 타 본 적이 없었다. 다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돈을 잃는 게 낫다고 나를 위로했지만 스스로는 잘 위로가 안 된 모양이었다.


덕분에 물 한 병을 사기 위해 3킬로미터 이상을 걸었다.

밤이 되면 문을 연 가게를 찾기 힘들었다. 택시를 타고 가자고 내가 제안했지만 택시를 타고 있는 동안의 불안함을 생각하면 차라리 걷는 게 마음 편하다고 했다.

제이의 불안을 가중시킨 것은 나였다. 이스탄불의 사건 이후 몇 번 택시를 탄 적이 있다. 그때마다 제이는 뒤에 앉았고 나는 운전기사 옆에 앉았다. 제이는 핸드폰으로 구글 지도를 보며 기사가 돌아가지는 않는지, 이상한 곳으로 가는 건 아닌지 확인했다. 앞에 앉은 나는 잘 가고 있어? 그렇게 수시로 물었는데 그게 제이의 마음을 더 불안하게 했다.


덕분에 구시가지에서 브라쇼브 역 부근의 호텔까지 이어지는 밤거리를 실컷 즐겼다.


사실 즐길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거리가 어디든 캄캄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동유럽답다고 생각했다. 인상적인 공동묘지가 하나 있긴 했다. 언덕에 자리 잡은 그것은 유럽의 다른 공동묘지처럼 집 사이에 위치했다. 하지만 한쪽 면은 도로 쪽으로 트여 있었는데 언덕이 무너지지 않도록 벽이 잘 받치고 있었다. 그 벽에 그려진 큰 그림은 가운데 손가락만을 크게 펼쳐 죽은 이들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 몰래 그려 놓은 낙서로 보이진 않았다. 시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깔끔하고 당당한 그림이 거기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밤거리에서 택시 기사 이야기를 또 하나 들었다.


한 남자가 루마니아 공항에서 택시 기사에게 호텔까지 요금이 얼마냐고 물었다. 기사는 15유로라고 말했다. 택시에서 내리려고 했을 때 기사는 그 남자에게 30유로를 달라고 했다. 15유로라고 하지 않았냐고 따지자 1인당 15유로라고 기사가 말했다. 그에겐 한 명의 일행이 있었다. 일을 다 보고 돌아가려던 그는 호텔에 택시를 부탁했다. 공항에 도착하자 택시 기사는 5유로를 달라고 했다. 그는 처음 만났던 택시 기사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물어 보았다.


- 그렇다면 둘이 타면 10유로인가요?

- 아니요. 개인당 받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제이다. 제이는 여행에서의 불행했던 이야기를 마치 수집하는 사람 같았다. 이후로도 내게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여행에서 사기를 당한 사람들은 제이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그러면 나만 당한 건 아니구나 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타인의 불행을 통해 내 불행을 상쇄하려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사람들에게 그게 위로가 된다.

가끔은 그런 불행이 내게 일어났으면 하는 일도 있었다.


제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왜,라고 물었다.

- 그 정도라면 추억으로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사기 당하는 재미로 인도에 간다는 말도 있어.

우리는 마침내 가게 앞에 도착했다.


그때의 기쁨을 나는 잊지 못한다. 몇 명의 사람들이 오래 전 공산주의 국가에서 배급을 받는 것처럼 줄을 서 있었다. 가게는 금방 물건이 동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침착했다. 유리벽에 뚫려 있는 작은 구멍으로 주문을 하고 물건을 받았다. 나는 겨우 알고 있는 단어 몇 개를 미리 준비했고 그것을 몸짓에 섞어 말했다. 물, 가스가 핵심이었다. 주인은 정확하게 가스가 들어가 있는 물을 나에게 주었다. 나는 2리터짜리 그것을 제이의 품에 안겨 주었다. 우리는 함께 야호, 하고 함성을 질렀다. 그것을 품고 다시 어둔 거리를 걸었다.


여행은 아무렇게나 해도 좋았다.


택시를 타든 걷던, 나의 방식이든 제이의 방식이든 어떤 식으로든 뭔가 남았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뭔가, 말이다.